설교 · 깊은예배

신앙 특강

2025-12-05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샬롬. 사랑하는 사김의 가족 여러분. 이렇게 영상으로 또 만나뵙게 되어서 너무너무 반갑습니다. 어, 이번 한 주간도 평안하게 잘 보내셨나요? 어, 영상을 찍고 있는 지금 밖에는 첫눈이 펑펑 예쁘게 내리고 있는데요. 이렇게 또 눈이 내리기도 하다 보니까 아, 이제 정말 연말이 다 되었구나. 한해가 점으로 가는구나라는 것들이 더 실감 나는 거 같아요. 어 지난 한해를 돌아보면서 저도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또 돌아보게 되는데요. 어 특별히 저는 이번 학기에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다음 주 또 종강을 앞두고 그동안 배운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들을 또 갖고 있습니다. 어 제가 이번 학기에 참 여러 권의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고린도 전서와 고린도 후서를 다뤘던 그 수업을 가장 재밌게 들었어요. 어 그래서 아 이번 신앙 특강 영상으로 어떤 걸 나누면 좋을까 좀 고민을 하다가 제가 지난 학기 동안 즐겁게 배웠던이 고린도전서의 내용을 우리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 그래서 이번 영상에서는 고린도전서

말씀에 담겨 있는 어 것들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어, 먼저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 세웠던 교회입니다. 여러분 심파 기억하시죠? 2차 전도 여행. 자, 그때 세웠던 교회 중 하나인데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난 다음 에베소로 3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어, 그곳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여러 가지 소식들을 듣게 돼요. 들려온 이야기는 대부분 고린도 교회 안에 있었던 여러 문제들과 또 오해들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 보니까 그 안에서 미쳐 다 쌓이지 못했던 정립되지 못했던 진리와 또이 말씀에 대한 오해들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어 그래서 바울은 그 문제들과 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오해들 고민들을 해결하고 돕기 위해서 편지를 쓰게 됩니다. 바로 그 편지가 고린도전서라고 할 수 있죠. 어,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바울은 정말 여러 가지 주제에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어, 그중에서도 특별히 유난히 많은 분량을 하려하여 어, 다뤘던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것이었을까요? 네. 바로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도 아직까지도 가장 유명한 바울의 가르침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바울이이 내용을 특별히 더 강조하면서 가르쳤던 이유는 이것이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당시 그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밀접하고 현실적인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어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우상의 재물은 단순히 종교적인 영역을 넘어서 매우 일상적인 영역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다라고 말이죠. 이때 우상의 집을 생각했을 때 우리는 단순히 어떤 신전 정도를 생각할 수 있는데요. 바울이 이야기했던 우상의 집은 신전만 의미하는 건 아니었어요. 당시 우상의 집이라고 사용되었던이 단어 안에는 신전은 물론이고요. 당시 고린도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많은 사회적 축제, 행사 등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생계를 유지하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길드라고 하는 네트워크망이 매우 중요했는데요. 어,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농사 길드에 속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사 길드 속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그 길드라고 하는 네트워크막 안에서 거의 모든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그 안에서 주고받기도 하고요. 또는 그것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시스템들이 모두이 길드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길드에 속하지 않고 길드에 거치지

않고서는 어떤 직업을 갖거나 일을 하기에 매우 어려웠던 상황이었죠. 그래서 길드는 일을 하고 또 돈을 벌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매우 필수적인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이 길드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우상의 집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또한이 외에도 생일 잔치, 뭐 결혼, 집들이와 같은 매우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잔치, 어, 파티 이런 것들까지도이 우상의 집이라고 하는 단어에 모두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러니까이 고린도 지역에서 우상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그들의 삶의 전반에 깔려 있었던 시스템이자 곧 문화였다는 것이죠. 제가 이것을 여러분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끼실 수 있도록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 지금부터 저를 고린도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 A라고 한번 생각해 보시는 거예요. 월요일이 되면 저는 회사에 출근을 합니다. 오전 내내 열심히 일을 하고 점심 시간이 되면 동료들과 함께 어 산내 식당에서 밥을 먹어요. 그런데 그 산내 식당에서 제공하는 그 점심 식사가 우상에게 받쳐졌던 재물입니다.

평일 내내 저는 회사에서 근무하며 그 밥을 먹습니다. 그렇게 평일을 열심히 열일을 하고 보낸 다음에 드디어 주말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요. 친구를 축하하고 연애장으로 가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신나게 또 뷔페를 먹겠죠. 그런데 그 음식들도 모두 우상의 재물입니다. 그렇게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되었어요. 오늘은 가족들끼리 단풍 축제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아, 축제에 갔던 여러분 축제에 가면 막 푸드 트럭도 있고

포장모차도 있잖아요. 저도 거기서 닭고치도 사 먹고 핫도그도 가족들과 신나게 사 먹었습니다. 물론 그것들 모두 우상에게 받쳐졌던 음식들입니다. 어, 여러분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어떠세요? 사실 우상의 재물이다라는 것만 빼면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죠. 이게 바로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마주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종교적 의미를 빼고 보더라도 그저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너무 평범한 사회의 시스템이나 일상의 문화 속에 우상의 재물은 너무나 당연한 거였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바울은요 굉장히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상의 재물을 먹지 마십시오. 이건 뭐 거의 굶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딜 가나 우상의 재물을 먹고 마시는 사회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이 우상의 재물을 먹지 않는 문제를 조금은 회피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불가능해 보이고 만약에 정말 먹지 않으려고 결단한다면 굉장히 삶이 불편해지거든요. 그래서 그들은 어떤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그들이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내세웠던

슬로고는 바로 이거였어요. 그런데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는 일을 두고 말하면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는 신이 없습니다. 대체이 말이 어떤 의미일까요? 여러분, 당시 고린도 지역은요.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다실론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제 그것이 틀렸다라는 걸 안다는 거예요. 우리가 알기로는 그 우상들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것들은 신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죠. 세상은 많은 신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 않게 되었으며 이제는 오직 하나님만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고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이 고백이 어 씨앗이 되어서 그들이 내세웠던 슬로건 그 이유가 문제였어요. 성도들은 아, 그러니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에게 받쳐진이 음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러니 우상의 재물을 먹어도 상관없다라는 것이 그들이

내세웠던 슬로건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 주장이 아예 틀렸다고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그 주장이 맞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이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상의 재물을 먹는 행동은 당장 멈춰야 한다라고 경고하고 있죠.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한 데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공동체를 위한 거였어요. 어, 고린도 교회는요.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 자체가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인식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자신들의이 믿음 하나님만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진리를 따르는 그 중심이 진실하기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에게 받쳐졌던 음식을 먹는 것은 그들의 구원을 어쩌지 못한다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러나 바울은요. 그들과 달리 이것은 충분히 본질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 음식을 먹는 것 자체는 비본질일 수 있지만 그 비본질을 행하는 그 행동으로 인해서 본질을 위협당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라고 본 거죠.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이렇게 말해요.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는 것은 음식이 아닙니다.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먹는다고 해서 이루올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있는이 자유가 약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지식이 있는 당신이 우상의 신당에 앉아서 먹고 있는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그가 약한 사람일지라도 그 양심에 용기가 생겨서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그 약한 사람은 당신의 지식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우상에게 받쳐졌던 재물 그 음식을 먹는 것 자체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비본질적인 영역에 해당할지도 몰라요. 여기서도 말하고 있거든요. 어떤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손해 볼 것도 없고 먹지 않는다고 해서 이럴 것도 없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고린도의 성도들은이 문제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바울은 그들의 그 생각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론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넘어뜨릴 수 있는 걸림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당신들이, 신앙이 좋다고 말하는 당신들이 우상의 재물을 너무 편히 먹고 있는 것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누군가는 어 저 음식 먹어도 괜찮은가 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라는 거죠. 그리고 바울은 그것 때문에 누군가는 망하게 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보기에 하나님 안에서 이건 단순히 어떤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여러분, 바울이 걱정했던 건요. 그 음식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진짜 걱정했던 건 이런 거였어요. 예를 들어 그 당시에 이제 막 회심한 A가 있습니다. A는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부단이 애쓰고 있어요. 그가 믿었던 다신론의 가치를 부인하고 그가 따랐던 그 많은 우상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만 섬기겠다라고 부단히 애으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가 따랐던 우상의 가치관 즐겼던 문화들을 따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선택들도 이전과는 다르게 하나님 나라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선택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보게 됐어요. 교회 안에서 성경 지식도 많이 알고 있고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는 어떤 형제가 어 신앙에 앉아서 우상 재물 아무렇지 않게 먹는 걸 본 거예요. 그걸 본이가 생각하게 되었죠. 아, 이것 자체가 본질은 아니니까 먹어도 괜찮구나. 내가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이 마음만 있으면 괜찮은 거구나. 그리고 그도 우상의 재물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상의 재물을 먹기 시작하니까요. 슬금슬금 옛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무래도 그 음식을 먹게 되는 것들이 신전이나 아니면 어떤 사회 축제나 길드나 이런 곳이다 보니까 그것을 먹을 때마다 신전에서 생했던 제사들, 길드에서 들었던 유용한 정보들, 축제에서 즐겼던 그 화려한 문화들 이런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상의 재물은 그 모든 곳들에

있었기 때문이죠. 다시 그곳에 사람들과 앉아서 먹고 마시다 보니까 어느새 그가 예전의 삶으로 그가 따랐던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 속으로 점점 다시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그게 더 편하고 익숙하니까요. 그래서 A는 결국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여러분 바울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게 두려웠던 거예요. 단순히 그 음식 먹어야 돼, 먹지 말아야 돼가 아니라 혹 그것 때문에 그가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그것이 무서웠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을

금지합니다. 우상의 재물을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를 넘어서 세상의 가치와 문화 속으로 다시금 스며들게 하는 장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음식을 먹는 것 자체는 비본질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비본질을 가볍게 여겼을 때 그것이 본질 자체를 흔들 수 있는도 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던 것이죠. 그래서 바울은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약한 신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형제 자매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걸어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그가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나는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말하는 것처럼 비본질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일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정말 그것이 비본질이라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내가 선택하여 피할 수도 있는 문제라면 바울은 우리의 구원,이

공동체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포기하는 것이 진짜 성숙한 신앙인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은 목숨까지 바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얼마든지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때문에 그 구원을 잃어버리게 만든다면 그것은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죠.이어서 또 바울이 우상의 재물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어요.이어서 고린도전서 10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통배하는

일을 피하라.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바울은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이 곧 우상 숭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많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우리가 회심하고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이 마음은 진실하지만 세상의 어떤 가치를

말하는 자리에 자꾸 찾아가다 보면 우리도 흔들리기 쉽잖아요. 그니까 바울은 우상의 재물을 먹으려 자꾸 그런 자리에 참석하고 그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다시 우상숭배하던 그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경고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의 말처럼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상과 관련되어 그 배후에서 성도들을 유혹하고 걸려 넘어뜨리게 하는 귀신은 그 악한 세력은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죠. 여러분,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든

우리를 다시이 구원에서 탈락하게 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악의 세력은 실제하는 어 일인 거죠. 저는 바울이 하나님을 향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마음과 그 믿음 자체를 의심하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런 그들의 마음보다 그들을 노리고 있는 사단의 힘이 어쩌면 훨씬 더 지요하고 치밀하며 강력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흔들리고 넘어져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게 될까 봐 경계한 것이죠. 바울은 말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겸하여 따를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사람은 둘 중 하나를 따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은 세상의 가치 속으로 성도들을 자주 노출시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단은이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죠. 그래서 바울은요.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경고합니다. 공동체를 위해서도 그것은 절제하는 거지만 너희 자신들의 믿음과 그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경계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지 말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우상의 재물을 먹는이 문제를 가지고 지금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어요. 하나는 공동체를 위한 절제. 그리고 또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신앙의 경계입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겠죠. 우리도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신앙의 영역 안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그 비본질적인 문제들이 우리의 본질을 충분히 흐릴 수도 있음을 또한 가르쳐 주고 있어요. 그래서 조심하고 경계하며 주의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 얼마 전에 한 청년이 저에게 물었어요. 전도사님, 그런데 술을 마시면 정말 안 되나요? 여러분,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어,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술은 어, 가능한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이 질문을 저 개인에게만 적용해 본다면 적어도 저는 마시지 않아야 한다라고 전 생각하고 있어요. 바울은 타인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들의 신앙을 더 잘 세워 주기 위해서라면 내게 주어진 자유라 할지라도

내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진짜 지혜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죠. 여러분, 아무리 술이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하더라도요. 만약 전도사인 제가 술을 마시는 걸 여러분이 보시게 된다면 어떨까요? 제가 평범한 다른 직장인들처럼 주말 내내 사역을 하고 시초에는 저를 달리고자 저녁에 간단히 침액을 했다라는 이야기를 여러분이 들으신다면 여러분 어떠실 것 같으세요? 아버드 그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저는 120% 이상

확신합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면서 자신도 아 전도사님도 마시는데 괜찮은가 보지 술을 한두 잔씩 다시 마시게 될지도 모르죠. 어쩌면 술 자체가 우리의 구원과 직접적인 연결성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여기엔 어느 정도 동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경고했던 것처럼 내가 선택한 비본질 때문에 누군가의 본질을 흔들 또는 공동체의 어떤 믿음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흔들 가능성이 있다면 저는 그것을 과감하게 절제하고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성숙한 그리스도인 되기 위해서 저의 개인에게는 나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쩌면 고린도 지역에서의 우상의 재물처럼 우리에게 술이란 문제도 굉장히 밀접한 문제일 수 있어요. 잔치에서나 어떤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또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지만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분들을 정지하고자

하는 정말 조금도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있어요.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할 때 그 지역에서 생계와 아주 밀접하게 직결되어 있는 그 길드에서조차 우상의 재물을 먹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이 동일한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과연 술이이 일에 꼭 필요한 것일까? 술 왜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것은 나의 유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상대 유익을 위한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우리에게도

필요할 것입니다. 어, 또 저는 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굳이 술을 마시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어, 적어도 저에게는 어,이 술을 마시는 것이 저의 신앙과 어, 하나님과 관계를 흔들 가능성은 있어 보이지만 더욱 단단하게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에요. 저의 신앙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도 또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굳이 술을 마시진 않을 것 같아요. 술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이 저에게도 그다지 유익하지 않고 또 누군가에게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기꺼이 마시지 않는 것이 바울이 오늘 저에게 가르치는 신앙이라고 믿으며 또 성경이 저에게 가르치는 가르침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어 그러나 여러분 또 여러분의 상황에서는 제가 미쳐 모르는 또 고민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의 경험과 또 저의 나이와 제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저의 어떤 위치에서 미쳐다 헤아릴 수 없는 그리고 헤아리지 못한 어떤 어려움들과

고민들이 여러분에게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런 고민과 어려운 앞에 어 계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어떤 선택이 우리의 믿음을 더 세워 줄지 함께 기도하며 고민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의 공동체가 어 그런 것 어떠함을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그 애음을 격려해 주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 이제 오늘의 내용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진 않다. 여러분 우리 삶의 비본질의

영역에 포함된게 과연 술만 있을까요? 훨씬 더 많이 있죠.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그 수많은 비본질 앞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먹을 것인가 먹지 않을 것인가?이 행동을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그곳에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 물론 선택의 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있고 우리는 함부로 그 선택을 정제하거나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해요. 말씀 앞에서 내 삶을 점검하고 고민해 보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수의 영역, 본질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나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유익과 영적 안전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신앙과 안전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에게 이런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이걸 꼭 해야 할까? 또는 이것 말고 더 좋은 방법, 더 지혜로운 방법은 없을까? 하나님은 무엇을 더 기뻐하실까? 여러분, 나와 공동체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서 비본질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하지 않을 수 있는 절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본질을 위해 비본질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그 용기, 그 지혜로움이 우리 공동체를 더욱더 단단하게 지켜주고 더욱 더 본질에 가까운 그렇게 세워져 가는 공동체로 어 이끌어 줄 것이라는 거를 저는 믿습니다. 어, 오늘 함께 나눈이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묵상해 보시고 여러분의 삶과 여러분이 고민하고 있는 그 고민들 가운데서 한번 곰곰히 어 묵상해

보시고 또 적용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질을 더 추구하고 그래서 때로는 비본질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그런 지혜롭고 성숙한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