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새신자반을 나눕니다. 오늘부터 살펴볼 주제는 9과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입니다.
학생의 삶의 자리가 학교이고, 주부의 삶의 자리가 가정이듯, 신자의 삶의 자리는 교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은 바른 교회생활에서 시작됩니다. 만약 교회 속에서의 모습과 교회 밖 삶의 모습이 일치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아직까지 교회생활이 바르지 못한 까닭입니다.
교회생활에는 ‘말씀(성경)’, ‘기도’, ‘예배’ 등의 내용들이 당연히 포함됩니다만, 이미 그 주제들은 앞에서 다뤘기에 이번에 다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1. 주일성수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의 일차적인 구별은 주일을 어떻게 지내느냐로 판가름 납니다. 주일성수는 신자의 가장 기본기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의 바른 삶을 위해 주신 계명이죠. 그중 네 번째 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출 20: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 20: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너 자신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날인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첫째, 반드시 날을 지키라.
(출 31: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나님은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어기는 것, 다시 말해 안식일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날, 하나님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안식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죽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둘째, 반드시 거룩하게 지키라.
‘거룩’은 ‘구별’이라는 뜻입니다. 세상과 구별 없이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주일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날입니다. 그날에 구별된 우리의 삶이 수반되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구별된 예배가 있어야 하고, 구별된 봉사가 있어야 하며, 또 성도와의 구별된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가정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그날 배운 말씀을 서로 나누면서 평소와는 구별된 대화, 구별된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가족 안에 이러한 만남과 대화가 있을 때, 부부는 서로 믿음의 동역자가 될 수 있고, 자녀는 부모와 영적 교감을 누리게 됩니다.
이재철 목사님은 주일에 돈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과 관련하여, ‘주일에 돈을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중요한 것은 동기와 중심이다. 주일은 주님의 날이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사용되는 돈이라면 쓸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주님과 관련된 일을 위한 것이라면 무방하다. 예배가 끝난 후, 성도들의 구별된 친교를 위해 카페에 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가족이 구별된 만남을 위해 아내로 하여금 주일 저녁에 부엌 ‘일’을 하지 않게 하고, 온 가족이 정답게 외식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목적으로 사용되는 돈이 아니라, 주일 아침에 때우듯이 예배를 치르고 골프장으로 달려가느라 사용되는 것과 같은 돈이다. 그것은 철저히 ‘나’만을 위해 사용되는 돈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위한 주일에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되는 돈은 중지되어야 한다.”
셋째, 반드시 예배당에 나와서 지키라.
<새신자반> 책 자체가 코로나라는 변수가 있기 전 기록된 것이라서, 여기에는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은 예외적으로 적용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지가 있다면 나아올 수 있는 상황이면 예배당에 나와야 한다는 것으로 적용해야 합니다.
(출 20: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한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리스도인이 된 내 가족이 모여 있는 내 집 역시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주일 아침에 예배당에 가는 대신, 내 집 안방에서 내 가족끼리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없는가?
물론 드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는 가족들의 모임은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목사가 없어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는 것이 ‘만인제사장’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없어도 여러분이 예배를 주관하고 여러분이 설교해도 아름다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극단적으로 예를 드는 것처럼, 만약 우리가 전쟁 등의 사유로 다 흩어지게 되었고 주일을 맞이했다면... 여러분은 가족끼리 모인 사람들끼리 예배하셔야죠. 선교지에 나갔다면 그런 예배는 흔한 것입니다. 집에서, 가족끼리 예배할 수 있습니다. 저도 선교지에서 피치 못한 상황을 제외하면 늘 주일이면 예배당에서 예배했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 딱 2회 주일에 교회를 못 간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처음 자대배치를 받은 2주차입니다. 이등병인 저로서는 손쓸 방법이 없이 강제로 종교행사 인원을 0명으로 올린 것입니다. 그날 저는 내무반 구석에서 성경책을 펴놓고 혼자 예배했습니다. 목사님이 없이 예배한 저의 첫 에배였습니다. 그 후에는 부대가 파견을 나가서 교회에 갈 수가 없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빈 공간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예배했습니다. 예배 인도는 제가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활동을 가지 못한 천주교 군종도 우리의 예배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예배당에 갈 수 없고, 목사님이 오실 수도 없어도,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기에 저는 그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라고 할지라도 그 예배가 예배당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예배당이 아닌 여러분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집에서 드리는 예배가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만큼, 혹은 그보다 더 마음이 집중된 예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상세하게 다뤘듯이 예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일예배가 그 한 주간의 삶의 질과 수준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예배할 때도 가족 모두가 예배당에서처럼 주님께 집중하여, 최선의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함께 찬송을 드리며, 예배팀이 인도하는 가운데 드리는 예배당에서 우리 예배가 더욱 집중력 있게 드려지는 것은 유한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예배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 즉 예배당에서 공동예배로 드리는 것이 더 유익합니다. 또한 주일 아침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지정하신 곳’을 찾는 것 자체가 더없이 아름다운 훈련이요, 헌신입니다.
그러나 예배당에서 드릴지라도 그 예배가 단지 형식과 의무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차라리 집에서 드리는 예배만도 못할지도 모릅니다.
주일성수를 한다는 의미가 1) 반드시 날을 지키는 것이요, 2) 반드시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요, 3) 반드시 예배당에 나와서 지키는 것을 의미함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 모든 것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 정신을 상실하면 문자의 노예가 되어, 철저하게 주일성수를 하는 것 같으나 실은 알맹이를 잃어버린 형식적 종교인으로 전락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대상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붙잡아야 할 것은 정신입니다.
여러분, 주일성수를 위해서 예배당으로 오는 길에 쓰러진 사람을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배 시간에 조금 늦을지라도 신고를 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물론 교회에 늦게 들어오면 사람들은 오해할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물속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발견했다면 예배당에 가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사람 구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것이 더 중요한 주일성수의 정신입니다.
직업적으로 주일에 출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영역들이 있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내가 아니면 그곳에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이 임할 수 없는 경우들이죠. 이를테면 경찰로서 주일에 당직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주일 근무를 바꾸면 그것이 최선이겠으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수 있죠. 그렇다면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자리를 지키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손과 발이 되어,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가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거쳐왔던 교회에는 간호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간호사를 하면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안타깝지만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직업을 이유로 예배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져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간호사라도 다른 모습으로 신앙을 지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밤새 근무하고 아침 7시에 퇴근을 하더라도 교회에 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때로는 와서 졸다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형제자매들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새신자반>에는 여러분도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문제를 다룹니다. 한 자매가 오빠를 원망하면서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까닭인즉 거룩한 주일에 결혼식을, 그것도 지방에서 하기 때문에, 자신은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 맡겨진 봉사 직무를 감당키 위해 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재철 목사님은 그 오빠가 주님을 믿는지를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교회에서 맡겨진 봉사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친오빠의 결혼식마저 참석하지 않겠다는 그 자매의 태도는 언뜻 매우 아름다운 신앙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오히려 믿는 오빠라면 혹 모르되, 믿지 않기에 하나님의 법칙을 알지 못하는 오빠가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빠에게는 주일이 주님의 날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휴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오빠를 정죄하여 친동생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 오빠는 그런 동생이 믿는 하나님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사촌 오빠도 아닌, 친오빠의 결혼식에도 참석지 못 하게 한다면 그것은 ‘죽은 종교’이지 ‘살아있는 사랑’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재철 목사님은 그 자매에게, 교회에서 맡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결혼식에 참여하길 권했다고 합니다. 주일 아침 일찍 결혼식장 근처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결혼식에 참여하여,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오빠의 결혼식 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권유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일성수의 마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리고 너무 무분별하게 나의 일을 핑계 삼아서 앞세우는 일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주일성수의 정신이 무엇일까 우리는 생각해보고, 깨어있는 정신으로 주일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또한 주일을 거룩하다고 하여, 우리 안에 혹 주일만 거룩한 날로 여기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날들이 거룩합니다. 주일은 그것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죠. 그러므로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주일에서 비롯된 그 거룩함을 나머지 엿새 속에서 반드시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주일성수를 명하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구약의 안식일은 본래 ‘토요일’에 해당합니다. 달력을 보시면 알겠지만, 일요일부터 달력은 시작하고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죠.
그런데 교회가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께서 주일 새벽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의 의미가 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것입니다.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사도 요한의 글에도 나온 것처럼 초대교회는 더이상 안식일이 아닌 주일에 예배하며 그날을 우리에게 주어진 날을 대표하는 날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전히 몇몇 이단들은 예배는 안식일에 드려야 한다며 토요일에 예배합니다. 그 주장은 성경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실은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처럼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만 한다면, 예배 역시 구약의 가르침대로 짐승을 잡아 제사의 형태로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안식일은 구약시대를 따라 지키면서 예배 형태는 신약의 모습으로 드리겠다면 그것은 모순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근거하여, 신앙의 고백 안에서 한 주간의 첫날을 하나님께 주님의 날로써 고백하면서 예배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한 주간의 첫째 날은 더이상 ‘일요일’이 아닙니다. 그날은 주님의 날, 곧 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의 기본기 첫째. 주일성수에 대해서 우리는 살펴봤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일주일에 하루를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주일에 예배하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의 삶에 하루의 시간을 더 하나님께 내어드릴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이 금요일 밤을 함께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2시간이면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더욱 의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홀로 찬양하고 홀로 기도하기에 너무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신 것이 24시간이라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어떤 의미에서 시간의 십일조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그 시간들이, 내게 불필요한 시간이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소중한 가운데 주님께 기쁨으로 내어드리는 그런 진심이 있다면, 우리의 모든 예배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