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솔로몬 이후 분열왕국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분열왕국이라는 시대를 가장 쉽게 정의하는 것은 이스라엘 12지파가 하나의 나라를 이루던 시대가 통일왕국이고, 12지파가 나눠진 시대가 분열왕국 시대입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자손들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12지파 가운데 2개 지파가 남 왕국을 이뤘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인데, 이 중에 유다지파가 중심이 되었기에 ‘남유다’라고 부릅니다. 북이스라엘은 10개 지파가 연합한 국가로서, 여로보암이 쿠데타를 통해서 시작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북이스라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북이스라엘 왕은 여로보암과 아합 정도를 다뤘습니다. 그리고 남유다 왕들은 가급적 한명씩 모두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다룬 남유다 왕은 4명인데 그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르호보암 – 아비야 – 아사 – 여호사밧입니다.
우리가 다뤘던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7번째 왕입니다. 그만큼 북 왕국은 정권이 빨리 바뀌었습니다. 쿠데타도 많았구요. 남유다의 왕들 4명은 모두 다윗 성의 왕실 묘지에 매장됩니다. 왕실 묘지에 매장되느냐, 되지 않느냐도 역대기를 읽는 포인트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은 당시의 유다백성들이 이 왕을 인정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다섯 왕의 이야기>입니다. 즉, 남유다의 5대 왕부터 9대 왕까지 다루려는 것입니다. 원래 6명을 다룰까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이야기가 길어지고 10번째 왕인 웃시야는 할 얘기가 많아서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여호람부터 아마샤까지입니다. 한번 시작해보시죠.
5대왕 여호람
다섯 번째 왕은 여호람인데, 성경에서 ‘요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열왕기의 기록과 역대기의 기록의 차이 때문에 왕들마다 이름이 2개씩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여호사밧과 아합이 결혼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과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흔들거렸으나 그래도 신앙을 지키며 어쨌든 삶을 마무리 합니다. 그는 죽기 전에 자녀들이 후계자 분쟁을 없애기 위해 미리 정리를 해둡니다. 맏아들인 여호람에게는 왕권을 물려주고, 나머지 아들들에게는 금과 은과 성읍을 물려주었던 것이죠. 그러나 여호람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대하 21:4) 여호람이 그의 아버지의 왕국을 다스리게 되어 세력을 얻은 후에 그의 모든 아우들과 이스라엘 방백들 중 몇 사람을 칼로 죽였더라
왕권 강화를 위해 자신의 모든 아우들과 다수의 방백들을 숙청한 것이죠. 그리고 놀랄 정도로 악한 길을 서슴없이 걸어갑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그가 아달랴와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달랴가 누구입니까? 바알 제사장의 딸인 이세벨의 딸이죠.
(대하 21:6) 그는 아합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에, 아합 가문이 한 대로 곧 이스라엘 왕들이 간 길을 갔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대하 2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윗 왕가를 멸망시키려고 하지 않으셨다. 일찍이 주님께서 그의 종 다윗과 언약을 맺으시고, 다윗과 그 자손에게서 왕조의 등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호람의 죄를 보시면서 바로 심판하고 싶으실 정도였지만, 그러나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신 것이죠. 여호람을 바로 심판하실 수는 없는 것이죠. 우리가 역대기를 보면 깨닫지만, 하나님은 어떠한 악인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여호람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냅니다.
(대하 21:14) 이제 나 주가 네 백성과 네 자식들과 네 아내들과 네 모든 재산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
(대하 21:15) 또 너는 창자에 중병이 들고, 그 병이 날로 더 악화되어, 마침내 창자가 빠져 나올 것이다.
우리가 역대기에 나오는 왕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면서 반복되는 패턴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지자가 등장했다는 것은 돌이키라는 주님의 싸인(sign)인 것이죠. 돌이키면 됩니다. 돌이키는 방법은 이미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어요. 역대기의 치트키(Cheat key)입니다.
예전에 제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좋아했는데, 이 게임은 돈을 모아서 병력을 만들어 싸우는 게임입니다. 자원을 모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것이 치트키입니다. 물론 이것은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없기에 사람들끼리는 할 수 없어요. 여기서 유명했던 치트키가 ‘Show me the money’입니다. 이렇게 입력을 하면 갑자기 내 돈이 많아져서 바로 병력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죠. 바로 이런 절대적인 명령어가 치트키입니다. 역대기의 치트키는 바로 이것입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이것이 역대기에서 항상 작용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때로는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하나님 얼굴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듣고 죄를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약속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선지자가 와서 깨닫게 했을 때 돌이키면 되는 것입니다. 유턴! 하나님이 유턴하라고 싸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왕이었던 여호람은 엘리야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죠. 그는 돌이켜야 할 때 돌이키지 않았으므로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블레셋과 아랍이 쳐들어온 것이죠.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죽게 됩니다. 오직 막내 아들 아하시야만 생존합니다. 사실 이것도 하나님이 다윗 때문에 보호하신 것이겠죠. 씨를 보존해야 하니까요. 동생들을 모두 죽인 여호람은 가족을 잃는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여호람은 창자에 중병이 발생합니다. 2년 후에는 대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가 되어 32세의 젊은 나이에 죽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더 비참한 기록을 남기는데요. 바로 여호람의 죽음을 어느 누구도 슬프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평가인 것이죠.
6대왕 아히시야
그로인해 ‘아하시야’가 왕에 등극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여호아하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열왕기나 역대기를 읽을 때 헷갈리는 것은 당시에 왕들의 이름이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에게도 아달랴 외에 아들들의 이름이 아하시야, 요람입니다. 요람은 여호람과 같아요. 역대기에서는 남유다의 왕은 여호람으로, 북이스라엘의 왕은 요람으로 기록하여 구분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 아합의 최후를 보았죠. 전쟁에서 변장까지 했지만 결국 죽게 됩니다. 그로 인해 <아하시야>가 북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그러나 그는 2년 만에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사망합니다. 이 또한 심판이었어요. 그로 인해 동생인 <요람>이 왕위를 계승합니다.
남유다는 여호람 이후에 아하시야가 왕이 된 것이죠. 형들이 다 죽었기에 유일한 계승자입니다. 그러니까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람과 남유다의 왕인 아하시야는 조카와 외삼촌 사이입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가 <아달랴>였으니까요.
아버지 여호람은 부인으로 인해서 악영향을 받았는데, 아들은 어떠했을까요?
(대하 22:4)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
아합 가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고, 여호사밧의 결혼이 얼마나 잘못된 선택인지 또 알 수 있죠.
아히시야는 외삼촌인 요람과 함께 손을 잡고 아람 왕 하사엘과 전쟁을 벌입니다. 이 전쟁에서 북이스라엘의 요람이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그곳으로 아하시야가 문병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 그 때, 북 이스라엘에서 <예후>가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을 모두 진멸시킵니다. 그리고 위문을 온 유다의 위문단과 아하시야와 조카들까지 모두 죽입니다. 한 순간에 남북의 왕이 다 죽게 된 것입니다.
아달랴는 형제들도 잃고, 무엇보다 자기 아들을 잃게 된 것입니다. 아달랴는 자기 아들의 죽음을 보고, 유다 집의 왕조, 즉 다윗 가문을 다 몰살시킵니다. 자기가 정권을 잡기 위한 것일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만약 다윗 가문이 다 사라지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이 깨어지게 되는 것이죠. 예수님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야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들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바로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사브앗(여호세바)이 등장하는데요. 여호람의 딸인데, 아달랴와 다른 편에 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배다른 공주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제사장인 여호야다의 아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하시야의 아들 가운데 요아스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숨겨서 보호합니다.
다윗 가문을 모두 죽였다고 생각한 아달랴가 남유다의 7대 왕이 됩니다.
7대왕 아달랴
여호사브앗과 여호야다는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서 키웁니다. 무려 6년 동안 말입니다.
(대하 22:12) 요아스는 그들과 함께 여섯 해 동안을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 지냈으며, 그 동안에, 나라는 아달랴가 다스렸다.
그녀는 이제 다윗 가문은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녀 또한 아합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적어도 그녀 입장에서는 아합 가문이 다윗 가문을 끝장낸 것입니다. 마치 사탄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어떻게든 저지하려고 위협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귀환공동체는 다윗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소망을 얻지 않았을까요?
마침내 7년째, 제사장 여호야다는 행동에 나섭니다. 왕권 회복에 나선 것이죠. 아달랴의 폭정에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고, 여호야다는 조력자들과 함께 그 모든 힘을 합칩니다. 특별히 모든 성읍에서 각 가문의 족장과 레위인들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서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합니다.
아달랴는 소동 소리와 왕을 칭송하는 함성을 듣고 성전으로 갑니다. 어린 왕이 성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명령을 내립니다. “저 여자를 밖으로 끌어내서 죽이십시오.” 이유는 성전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왕궁 마구간 앞에서 죽입니다.
그리고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과 백성들 모두가 여호와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습니다. 백성들은 바알 신전으로 달려가 그 신전을 허물고 우상들을 깨부쉈습니다. 그리고 아달랴 시대에 무너진 모든 예배를 회복시킵니다. 그 결과입니다.
(대하 23:21) 그 땅의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아달랴가 살해된 뒤로, 도성은 평온을 되찾았다.
8대왕 요아스
요아스가 왕이 되었을 때 나이는 어떠했을까요? 7살입니다. 그에 대한 행적입니다.
(대하 24: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
요아스가 왕이 된 후, 평온합니다. 여호야다가 왕의 후견인 역할을 잘 한 것이죠. 그는 요야스의 아내도 골라주고, 요아스가 장성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장성하여 스스로 결정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성전 보수’였습니다. 그의 통치 23년이니, 30세 정도의 일입니다. 아달랴 시대에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 기물을 바알 숭배에 사용했기 때문에 요아스는 성전을 보수하고 새롭게 하고 싶었던 것이죠. 또 한편으로는 요아스가 6년 동안 숨어 지냈던 곳이니 그만큼 성전에 애착을 가진 사람도 없었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여호야다가 멘토가 되어 통치를 하던 요아스의 시대는 모든 것이 회복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여호야다도 장수하다가 죽습니다.
(대하 24:14-16) 여호야다의 평생 동안, 하나님의 성전에서 번제가 정기적으로 드려졌다. 그는 130세까지 살다 죽었다! 그가 남달리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삶을 살았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왕실 묘지에 묻었다.
당시에도 130세는 엄청난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기록은 사람들이 그를 왕실 묘지에 묻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야다는 왕이 아닙니다. 굳이 따져보면 공주의 남편이니 왕의 사위였습니다. 그러나 요야스 시대의 백성들은 여호야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았고, 그를 왕실 묘지에 묻어줍니다.
왕실 묘지에 분열왕국 첫 4명의 왕은 모두 들어갑니다. 그러나 악했던 여호람은 못 들어가고, 북쪽에서 죽은 아하시야는 열왕기 기록을 보면 들어가는데, 역대기는 어디에 묻힌 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즉, 역대기의 기준으로는 인정해주기 싫은 것이죠. 아달랴는 당연히 못 들어갑니다. 그리고 여호야다는 왕이 아님에도 들어갑니다.
여호야다가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선하고 좋은 영향력을 미친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의 죽음 바로 다음 구절에 슬픈 한 문장을 기록해 놓습니다.“여호야다가 죽자 모든 것이 무너졌다.”
요아스는 여호야다의 사후 악한 길로 빠지기 시작합니다.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숭배하게 됩니다.
자, 이제 여러분. 우리는 알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요?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이것은 돌이키라는 싸인 입니다.
(대하 24: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왕이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것이죠.
그래도, 하나님이 힘써서 생명을 보존한 요아스였고, 오랜 세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행했던 요아스가 아닙니까? 또 여호야다가 그렇게 힘써서 다시 바로잡아 놓은 나라가 아닙니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무시한 요아스에게 가장 강력한 카드를 보냅니다. 바로 여호야다의 아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요아스의 마음을 가장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겠죠. 그러나
(대하 24: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없앨 음모를 꾸몄고, 드디어 왕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성전 뜰에서 그를 돌로 쳐죽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 메시지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요아스 왕은 자기를 왕으로 세워 준 충성된 제사장 여호야다의 은혜를 그렇게 갚았다. 그는 여호야다의 아들을 살해했다.”
여기까지 갔으면 이제 선을 넘은 것입니다. 하나님도 참고 기다리고 돌이켜보고자 했지만, 이제 심판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셔야 합니다.
이듬해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공격합니다. 그들은 소수의 군대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해서 유다를 징계하십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 그들 조상의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받은 벌입니다. 아람 사람들은 요아스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요아스는 이 전쟁에서 중상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이 전쟁에서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 것을 복수하려는 성전 사람들에 의해 암살 됩니다. 그리고 요아스 또한 40년이나 통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실 묘지에 묻히지 못합니다. 요아스의 아들인 ‘아마샤’가 그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9대왕 아마샤
아마샤는 25세에 왕이 됩니다. 아마샤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역대하 25:2인데요. “그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아니하였다.” 메시지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고 옳은 일을 행했으나,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는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즉, 이 표현은 행동 자체는 흠이 없었으나, 그 중심은 하나님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성품과 도덕성은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도 바르고 착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크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왕권을 확고히 한 후, 아버지의 복수를 합니다. 요아스를 암살한 왕궁 경비대(성전 사람들)를 처형합니다. 이렇게 복수를 하면서도 또 율법은 잘 지켜서 자녀에게까지 복수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참 애매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구약의 파노라마를 할 때 이런 인물을 만났죠. 사울은 무심이요, 다윗은 전심이라면, 솔로몬은 반심이라. 그러니까 아마샤도 사울처럼 완전히 엇나간 것도 아니고, 다윗처럼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도 아니고, 솔로몬처럼 반반인 것이죠. 사람이 끝까지 반반 일수는 없거든요. 결국 어느 한쪽으로 기울 텐데, 이제 그것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아마샤 왕은 어느 정도 나라가 안정기 접어들자 세력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에돔 정벌입니다. 그는 남유다에서 군사 30만을 일으키고, 북 이스라엘의 용병 10만 명도 은 100달란트를 주고 고용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일컬어지는 선지자가 와서 북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우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때 북 이스라엘은 매우 우상숭배가 심한 상태였고, 하나님은 남유다가 그들과 힘을 합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이죠. 아마샤가 이 말을 듣습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 쪽으로 좀 기운 것 같습니까?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그런데 북에서 온 용병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나가서 전리품을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된 것에 분노하여 북으로 돌아가며 유다 성읍을 약탈하고 주민 3000명을 죽입니다. 신기하게도 삶에는 종종 이런 일이 있어요. 하나님을 위한 선택을 했는데, 오히려 내가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대기를 보고 있으면 인생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 에돔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 맡긴 전쟁인데, 승리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승리 이후에 터집니다.
(대하 25: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 승리했으나, 아마샤는 에돔인들이 숭배하는 세일의 신을 가져와 자신의 ‘신’을 삼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 일을 보고 어떻게 행하실까요? 네 그렇습니다.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죠. 선지자가 가서 말합니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그 신들은 왕에게서 자기 백성을 구하지도 못했는데, 어찌 왕께서는 그 열등한 신들, 왕보다 약한 신들에게 기도한단 말입니까?” 너무 맞는 이야기죠.
이제 아마샤의 선택이 중요합니다. 아마샤의 선택은 “닥쳐라, 그렇지 않으면 없애 버리겠다”는 협박이었습니다.
아마샤는 작은 성공에 도취하여 교만했고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긍휼로 돌이킬 기회를 주셨으나 아마샤는 들을 마음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반심은 ‘무심’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전에 북이스라엘 용병이 행한 일에 대해 복수하고자 북이스라엘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에돔과의 전쟁도 이겼으니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죠. 이 당시의 왕은 요아스였는데, 하나님은 그를 통해 아마샤를 심판하십니다. 북이스라엘 왕 요아스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여호아스’라고 부릅니다.
요아스의 북이스라엘 군대는 아마샤의 남유다 군대를 벳세메스에서 격퇴하고 아마샤를 인질로 잡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와 예루살렘까지 공격합니다. 왕궁과 성전을 약탈하고 인질들을 잡아갑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포로가 된 아마샤는 10년 동안 북이스라엘에 잡혀 있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남유다는 그의 아들인 웃시야가 즉위하게 됩니다. 아마샤가 10년 동안은 인질로 있었고, 다시 돌아와 통치를 15년간 하는데, 이 25년 동안에는 남유다의 왕이 2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굴곡 있는 인생을 경험했음에도 끝내 아마샤는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의 말년은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렸다’고 기록됩니다. 그는 반역자들의 손해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는 다윗 성에 묻히지만, 왕실의 묘지에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기까지가 역대하 25장까지 나오는 남유다 왕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마샤 다음으로는 웃시야(아사랴) 왕이 통치하게 됩니다.
그럼 <다섯 왕들의 이야기>의 결론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역사에 흔적을 남기신다.
- 역사는 그의 이야기 (His-story)이다.
- 다윗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 왕들의 평가처럼, 우리도 평가받을 것이다.
2.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신다(죄의 임계점)
- 그는 말씀(선지자)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 그는 사건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 경청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3.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서 계신다.
- 다섯 왕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먼저 얼굴을 돌리신 적은 없다.
- 귀환민들에게, 우리에게 가장 가르치고 싶은 것.
- 우리의 권리가 아니라 그분의 은혜(호의)
-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치트키!
찬양 : 나의 백성이 (역대하 7:14) _ 겸비하다 :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다.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나를 기다려주시는 주님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