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청년·기타

청년예배

2026-05-17 · 누가복음 15:11~24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자, 오늘 이렇게 청년 예배에 모이게 되어서 다들 너무 기쁘시죠? 저도 너무 기쁜데요. 자, 우리 오늘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찬양을 드리는만큼 오늘 설교 말씀도 기억하시죠? 그렇죠? 기억하시죠? 어떤 설교였었죠? 우리가 다시 첫째 아들과 같이 살진 않았는지 그런 거에 대해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었잖아요. 저희가 오늘 드릴 찬양도 우리가 어떤 주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우리가 누구를 주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되는지 그것에 대해서 고백을 하려고

합니다. 네. 네. 우리 첫 번째 찬양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이곳에 이곳에 생명샘솟사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머자나 열매 맺치고 웃음 소리 넘쳐나리라 이곳에 이곳에 생명샘솟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뭐자나 열매 맺치고 웃음소리 넘쳐나리라 꽃대도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그날에 그날에 하늘이 열리고 모든이가 보게 되리라. 마침내 꽃들이 피고 영광의 주가 오시리라. 꽃들도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울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 은혜의 주 꽃들도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흘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 은혜의 주 한 번 더 고백하겠습니다. 꽃들도 구름도 바람도 넓은 바다도 찬양하라. 찬양하라 예수를 하늘을 물리며 노래해 나의 영혼아 은혜의 주 은혜의 주 은혜의 주네 이렇게 꽃들도는 찬양을 하였고요. 우리 그다음으로 찬양할 곡은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이라는 찬양입니다.이 이 찬양을

부를 때만큼은 우리가 앞으로 주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사를 묵상하면서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자녀로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불가운 대로 걸어가는 것 그 속에서 신실하게 날 지키시는 그 손길을 경험하는 주의 자녀로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바다 위로 걸어가는 것 내 온몸을 덮쳐오는 폭풍 속에서 잠잠히 주 바라 보는 것 때론 때론 불 가운데 휩싸일 때도 복풍 가운데 무너질 때도 주님 내 곁에 함께하시네.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시네. 자, 우리 여러분

다 같이 눈을 감고 한번 가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희의 중심이 과연 정말 하나님 아버지로서 우리가 잘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가 정말 주의 자녀로서 일요일뿐만 아니라 월바스모 금토일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지 그런 가사를 다시 한번 묵상하면서 찬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자녀로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나도 그들을 용납하는 것 나를 위해 달리신 십자가 사랑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주의 자녀로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 주께서 지신 십자가 기꺼이시고 주와 함께 걸어가 가는 자론 때론 불 가운데 휩싸일 때도 폭풍 가운데 무너질 때도 주님 내 곁에 함께하시네.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시네. 때론 때론 그 가운데 휩싸일 때도 폭풍 가운데 무너질 때도 주님 내 곁에 함께하시네. 가장 가까이에 함께 다시 한번 더 찬양하겠습니다. 때론 불 가운데 휩싸일 때도 폭풍 가운데 무너질 때도 주님 내 곁에 함께하시네.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시네. 가장 가까이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시네. 가장 가까이에

함께하시네. 다 같이 주님을 위해 박수 한번 쳐 드리겠습니다. 네. 자, 그러면 우리 다 같이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어 하나님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다시 한번 모여서 또 청년 공동책 함께 예배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게 도와주시고 또 우리 청년 공동체가 또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며 어 더 깊은 나눔과 교재를 누릴 수 있는이 시간 될 수 있도록 지금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맛있게 하셨나요? 네. 어, 이렇게 제가 사실 여러분이 이제 조금 많이 어려졌잖아요. 그래서 어, 과연 작년처럼 예배를 할 수 있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어, 너무 잘하네요. 그래서 제가 괜난 걱정을 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우리 한서진 오늘 너무 수고했습니다. 잘했 잘했죠, 친구들? 예, 잘했죠, 여러분? 우리 서진 팬도 수고했습니다. 우리 금요일에 막 모여서 연습하고 막 했거든요. 우리 수고한 우리 서진 팬에게

다시 한번 박수 쳐 주도록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 우리 오랜만에 준수도 오고 이렇게 반가운 얼굴들 많이 봐서 좋은데요. 자 오늘은 두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우리의 특별한 청년 예배 날입니다. 우리 미소가 굉장히 스마일하고 있는데 기분이 좋은가요?네 네, 저도 좋네요. 자, 우리 설교를 듣기 전에 먼저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어 볼 텐데요. 어, 제가 굉장히 싫어하는 건데 자꾸 목사님과 본문이 겹쳐 가지고 오늘 읽었던 말씀이에요. 그래서 제가 아, 오늘

설교 딱 보면서 큰일 났는데라는 생각을 좀 하긴 했는데 자, 우리 그래도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이 길기 때문에 우리 팬별로 돌아가면서 읽을 거예요. 서 우리 성종이 먼저 읽고 그다음에 서진 팸, 서연 순서로 돌아가면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성종님 성종이 파란색 그다음에 우리 서진 뱀이 핑크색 우리 서연이 녹색 읽어 주면 되겠습니다.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아버지 가운데서 내게을 내게 주시고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나눠주었다.에서을 에서에 그래서 그 지의 주 가운데 한 사람을 찾아가서 을다 그 사람은 그라 그는 지을 먹고을 내게 먹을 것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이 아버지에게 들어가서 이렇게 말씀들어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나는 너희가 아버지 아버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치근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아버지 내가 사과 아버지

앞에를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의 아려고 들게 하나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에 나의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이 죽었다가 살아 내가 그래서 그다 아멘 아멘 여기 친구는 지금 안 보여서 이렇게 확대한 거죠. 안경을 왜 둘 다 안 쓰고 왔어요? 네. 네. 이렇게 오늘 어 본문 말씀 읽어 봤는데요. 어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은 제가 이제 손절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짧게 나눌테니까 집중해서 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졸지 마시고 화품을 너무 크게 하시네요. 자,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정의라고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여러분께 이야기하는이 정의는요. 뭐 정의를 구현하다, 정의를 실현하다 할 때 그 정의가 아니고요. 어떤 개념을 정의하다라고 할 때 그 정의를 이야기하려고 해요. 어,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에게 왜 무언가를 정의하는 거는 왜 중요할까요? 지우야, 정의하는게 왜 중요하죠? 우리 삶에서 알기 위해서. 자, 그럼 우리 오랜만에 온 준성이한테

물어볼게요. 어떤 아, 준성이한테 물어. 준수한테 물어볼게요. 죄송해. 헷갈려 가지고 준수야.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 어떤 개념을 정의하다라고 하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왜 중요할까요? 오, 정확하게 말해 줬어요. 자, 박수. 자, 우리가 살아가는 어떤 사회 또는 어떤 공동체에서 어떤 개념에 대해서 그것을 방금 말해 준 것처럼 어떤 의미로 정의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면 나 혼자 엉뚱한 것으로 이해를 하거나 혼자 다른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정의하고 있는가, 또 그 같은 정의 안에서 우리는 어떤 개념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제가 예를 들어 볼게요. 제가 우리 옆에 있는 우리 성종이 대표 리더에게 이렇게 엄지척을 했어요. 우리 대표 리더 지금 표정 보세 밝아졌죠? 자, 어떻게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네. 너무 행복하고 어, 나 뭐 잘했나? 오늘 기타 좀 잘 쳤나? 약간 이런 마음이 지금 들고 있겠죠? 아마 좋아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만약에 이란에 사는 어떤 누군가에게 똑같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까요? 그 사람이 저한테 쌍욕을 할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이게 이란에서는 굉장히 심한 욕이기 때문이에요. 진짜 쌍욕과 같은 의미래요. 자, 그렇다면 어, 이란에서의 제스처는 마치 우리가 그 왜 영업권에 가면 가운데 손가락 드는 거 같은 그 정도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일한 사람은 굉장히 기분이 나쁘겠죠. 우리 성종에는 같은 제스처를 받지만 기분이 좋았지만 일러한 사람은 매우 분노할 것입니다. 제가 하나만 더 예시를 들어 볼게요.

자, 만약에 우리 저기 오늘 인도를 한 우리 서진 자매에게 우리 서진 자매가 저한테 아, 전도사님 이거 어떻게 할까요? 이거 할까요? 이렇게 물어봤어요. 근데 제가 그 질문을 듣고 이렇게 했습니다. 그럼 서진는 뭐라고 이해하겠어요? 어, 그렇지. 진행시켜. 그거 좋아. 아이디어 괜찮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거예요. 어, 왜냐면 우리는 우리 사회 안에서는이 제스처를 그렇게 이해하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제가 이거를 프랑스에 가서 이렇게 하면 어떤 의미가 되냐면

예를 들어서 서진이가 프랑스이라고 해 봅시다. 전호사님 이거 할까요라 물어봤었는데 서진이한테 이렇게 하면 한국인 한서진은 아 이거 하라는 건가 보다라고 이해하겠지만 프랑스인 한서진은 내 의견이 쓸모 없나 보다. 가치 없나 보다라고 느낄 거예요. 왜냐면 프랑스에서는 그건 빵점짜리야. 그거 진짜 볼품 없어. 이런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죠. 왜냐하면이 의미가 그 프랑스라고 하는 그 나라의 문화권 안에서는 이런 의미로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자, 이런 것처럼 우리가 어떤 개념에

대해서 그것이 어떠한 의미로 정의되고 있는가 이해하는 건 매우 중요한 거예요. 왜냐면 같은 단어, 같은 행동이라도 우리가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우리 사회와 우리 문화권 안에서 그 정의하고 있는 그 테두리 안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서로 다른 정의 그 개념 안에서 대화를 한다면 그 대화는 절대 올바르게 흘러갈 수가 없겠죠. 어, 여러분, 마치 이런 태도는요. 성경을 이해하는데도 똑같이 적용돼요. 내가 성경을

잘 이해하고 싶다 또는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정확하게 알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그 성경이 정의하고 있는 개념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야 올바르게 이해하고 내가 올바르게 믿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과 어 우리가 함께 흔히 많이 오해하고 있는 어떠한 개념에 대해서 한번이 의미를 바로잡아 보려고 하는데요. 그게 뭐냐면 바로 죄라고 하는 거예요. 자, 제가 몇 사람에게 질문을 해 볼게요. 자, 우리 민규 형제가

생각하는 죄는 뭔가요? 네. 네. 아, 저 정확하게 말해 주는데. 그럼 사회인이 아닌 민규가 정의하는 죄도 있나요? 어떤 민규가 정의하는 거죠? 아, 네. 종교인 민규는 뭘 정의하나요? 하나님과 어, 오 박수 한번 줄 거야. 아주 정확하게 말해 줬어요. 자, 우리 한 명한테만 더 해 보겠습니다. 우리 하늘 찬양. 우리 하늘 찬양 자매가 생각하는 죄는 뭘까요? 어 존재 자체가 죄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자, 제가 이제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아까 우리

사회인 우리 민규형제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흔히 죄라고 하면 우리가 물론 지금 좀 배워서 아, 자기 중심성 그거 죄 아니에요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우리한테 1차적으로 먼저 드는 생각은 어떤 범죄, 나쁜 행동들 또는 비도덕적인 그런 모습들을 우리가 죄라고 생각을 합니다. 또는 누군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워하는 마음이나 질투하는 마음이나 또는 음란한 마음과 같은 어떤 부정적인 그런 내면까지도 아 여기까지도 죄야라고 정의할 수도 있어요. 이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보통의 종교들이 정의하고 있는 죄의 범주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라오면서 습득한이 사회적 또는 종교적 죄라고 하는 그 선 이해가 있기 때문에 그 정의 안에서 성경을 어 볼 때 오해하기가 쉬워요. 자, 그런 왜냐하면 성경에서도 똑같이 죄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흔히 우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어떤 사회적 정의에서의 죄 또는 보편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그 죄의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성경이 정의하고 있는 죄의 개념이 그것들과 다르다는 거예요. 세상과 성경이 정의하는 죄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이 죄에 대해서 더 잘 알기 위해서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의 정의가 무엇인가? 성경에서 우리는 이것을 죄라고 말할 거야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개념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래야 내가 정말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 내가 정말 죄인이 맞는가? 정말이 기독교가 내 삶의 해답이

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왜 우리의 구원자라고 말하는가?이 다음 것들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그다음 것들은 아무리 설명하고 강조해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자, 우리가 오늘 읽었던이 길었던이 누가복음의 본문은이 죄에 대해서 잘 보여 주고 있는데요. 이게 오늘 설교도 나왔지만 어떤 비유예요? 그렇죠. 돌아온 탕자. 돌탕 비유잖아요.이 비유에서 우리가 오늘 주목해 볼 인물은 바로 작은 아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읽었을 때 작은 아들의 모습이

어때요? 네. 형편 없어요. 아주 쓸모 없습니다. 그렇죠? 네. 효자 같지 않아요. 불효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이 이야기의 시작은 바로이 어 뭐 형편 없어 보이는 그런 작은 아들의 모습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저한테 물려 줄 유산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지금 저에게 주십시오. 자, 여러분, 이거를 우리의 문화권만 생각했을 때 또 이렇게 애가 제대로 된 아들 같아요. 조금 정신

나간 아들 같아요. 정신 조금 나간 거 같죠? 예를 들어서 준성이가 은진자매님한테가 가지고 엄마 어차피 돌아가시면 저 유산 줄 거 아니에요. 그 미리 주세요라고 하면 준수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 그렇지.이 이렇게 멱살 끌고 가서 너 지금 재정신이야. 엄마한테 어떻게 그런 말씀 이렇게 하잖아요. 유대인 문화권도 똑같아요. 유대인 문화권에서 이게 어떤 의미냐면 나 이제 아버지한테 받을 거 받고 연 끊고 살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거든요. 굉장히 막나가는 아들이었다는 거예요.

자 그런데이 작은 아들 행동은요. 단순히 불료자네 형편 없네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제가 방금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저는 이제 더 이상 아버지 보호 필요 없습니다. 나는 아버지 없이 혼자 잘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 아버지를 떠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작은 아들이 지금 아버지에게 보여이 태도가 바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정의예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죠.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없어도 나는

괜찮고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이런 태도가 성경에서는 죄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이것을 쉽게 표현할 때 가끔 손절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여러분 손절이 뭔지 다 아시죠? 미소야 손절이 뭘까요? 그렇지? 관계를 끊는 거잖아요. 인연을 끊는 거예요. 관계를 끊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죄라고 하는 건요. 성경 안에서는 이런 손절과 같은 거예요. 하나님과 손절하고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 지금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보이고 있는이 태도가 바로 이것과 같습니다.

아, 저 이제 아버지와 영 끊고 아버지 떠나서 나 혼자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태도가 죄라고 하는 거죠. 죄는 이런 마음, 이런 태도, 그리고 이런 마음과 태도에서 비롯한 모든 말과 행동을 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단절되어 있는 그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성경이 말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이제 조금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할 텐데요. 여러분 주위에 기독교인 아니지만 착한 사람 많죠. 기부도 하고

또는 내 친구지만 되게 나를 많이 배려주 이런 친구도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즉 하나님과 사김이 없는 연결되어 있지 않는 모든 사람은 성경이 정의하고 있는 그 범주 안에선 적어도 죄인이라는 거예요. 사회적 정의로 볼 때 그들은 결코 죄인이 아니죠. 죄를 범죄 활동하지도 않았고 피해를 주지도 않았고 선행을 오히려 더 베풀기도 해요. 그러나 적어도 성경이 정의하고 있는 죄의 개념 안에서는 그들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어 제가 어 23살 두 살 뭐 이쯤 무렵에 회심을 했는데요. 그 전에 저는 모태 신앙인이었거든요. 근데 제가 굉장히 교회를 분노가 가득찬 상태로 다녔어요. 제가 왜 분노하며 다녔는지 아세요?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하지 말라는 거를 한게 없어요. 하라는 대로 했고 교회에서 하라는 모든 사역에 참여했고 교회에서 드려야 한다는 모든 예배 심지어 새벽 예배까지 매일매일 참여하면서 드렸단 말이에요. 그런데 자꾸 교회에서 나한테 죄인이래. 회개해야 된대. 예수님이

나 때 와서 죽었대요. 나는 그게 이해되지 않는 거야. 왜냐면 나는 너무 착하게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내가 뭐 내가 지은 재봤자 뭐 고작 엄마한테 거짓말 조금 한 거, 동생이랑 좀 다툰 거요 정도인 거 같은데 그런 죄 때문에 예수님이란 사람이 저렇게 처참하게 죽어야 된다고 내가 그 정도로 큰 죄인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있어서 자꾸 회개해라. 예수님이 필요하다라고 할 때마다 화가 나는 거예요. 나한테 너의 삶은 형편없어라고 말하는 거 같아서 굉장히 화가 났어요.

그데 제가 회심하게 된 이유는 뭐였냐면이 죄의 정의가 아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그 사회적 정의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정의가 다르구나라는 것을 이해했을 때 제가 아 그렇다면 적어도 성경이 말하고 있는 정의의 안에서는 내가 죄인이 맞구나. 왜냐면 난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았으니까. 내가 주님을 어 내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아이 정의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좀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마치 예전에 저처럼 아 나 되게

착하게 살고 있는데 나 나름 성실하게 사는데 나 왜 죄인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성경이 말하고 그 죄의 범주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되 있지 않다면 우리는 죄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 이것을 이사야서라고 하는 책에서 더 직접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네. 여기서 죄를 말할 때 뭐라고 말하냐면 너희와 하나님 사이가 갈라진 거. 너희와 하나님 사이가 멀어진 거. 관계가 소홀해지고 끊어진 것이 죄악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어 지금 작은 아들이 범한 죄는 이거예요. 아버지한테 막말하고 뭔가 부류를 저지는 것 죄질적으로는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졌죠. 아버지와 관계가 소월해지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이 작은 아들이 그렇게 떠났으면 자신만만에 갔으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래 갔으면 잘 살기라도 해야지. 그런데 잘 살 수 없었어요. 그는 잘 살지 못합니다. 매우 처참하게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하죠. 가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방황하다가 나중에

어떤 지경까지 이르어요? 돼지가 먹는 그 지염 열매조차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여러분 돼지가 먹는 거 여러분 먹으라고 하면 먹겠어요? 나는 돼지가 먹으라고 먹 살 굶어 죽겠어요 그냥. 근데 애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그거라도 나한테 줬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그에게 그조차도 준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야 너한테 이것도 아까워. 돼지가 먹는 것도 아까워라고 하는 그 정도의 수준까지 나락에 가는 떨어지는 그런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버지를 떠난 모든

아들들은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들을 때 아 근데 이거는이 작은 아들이 어리석기 때문에 재산 탕진해서 그런 거잖아. 나는 이렇게 안 살아. 나는 이렇게 나라면 이렇게 탕진하지 않고 잘 살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은 아버지를 떠난 모든 아들들 즉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들은 결국 네가 가진 모든 것을 탕진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지금이 작은 아들이 탕진한 그 재산

원래 누구 거였어요? 아버지 거였어요. 아빠한테 받아서 나간 거예요. 그런데 그거 당진했죠. 다 쓰고 나니까 그걸 다시 채워줄 아빠가 있어요? 없어요? 지금 없어요.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면요. 처음에는 잘 사는 거 같이 보일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있는 우리는 계속 그것을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탕진되고 공허해지고 허무해지고 궁핍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거죠. 아버지가 내가 가질 수 있는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의

원천인데 그 아버지를 내가 떠났기 때문에 결국에는 부족해지고 매마르며 결핍이 채워지지 않는 그런 탕진하는 삶을 살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진한 사람들은 작은 아들처럼 세상을 방황하며 자신에게 뭐라도 져서 나를 좀 먹게 해 줄 뭐라도 나의 결핍을 좀 채워줄 무언가를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마치 작은 아들이 헤맸던 것처럼요. 돼지가 먹는 지염 열매라도 나에게 줄 존재를 찾아 헤매는 거예요. 누군가는 그것이 돈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것이 학벌이라 생각하고

누군가는 성공, 명예, 권력과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 여러분, 그것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그 결핍을 해결해 줄 수 없고 우리를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거를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이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 이것을 깨달은 작은 아들이 어떻게 합니까? 아, 나 여기 있으면 굶어 죽겠구나라고 깨달아 아들 어떻게 해요? 네. 다시 돌아가요. 나의 원천, 나를 채울 수 있는 그 근원인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죠.

나는 아버지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라는 것을 깨닫자 돌아가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내가 꿈꿨던 성공, 인정, 명예, 권력, 재산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도 그를 보호하지 않아요. 그 무엇도 그를 돌보지 않습니다. 그것을 그가 깨달았을 때 그가 자신의 진짜 보호자인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죠. 어, 이제 말씀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 오늘이 설교를 듣는 우리 청년들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과

잘 연결되어 있나요? 여러분, 너무 아련한게 아니요. 이래서 내가 할 말이 없어. 여러분 아버지의 집에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지금 이렇게 서진이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손절하고 떠난이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 없이 하나님 없이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 만약 그렇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그런 여러분의 삶은 조만간 곧 고갈될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어,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반드시 궁핍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아, 저는 궁핍하지

않은데요. 저는 결핍이 없는데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보다 몇 년이지만 조금 더 산 어 저의 경험상 그리고 적어도 제가 어 바라보고 겪어온이 세상의 사람들을 볼 때 어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부족함이 없는 사람 없는 거 같아요. 나는 정말 하나도 부족함 없이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저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아직 그 결핍을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아니면 어떤 누군가는 자신의 그 결핍, 그 아픔과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부정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는 배가 고파요. 허이 져요. 무언가 채워야 된다 걸 느껴요. 그런데 아, 내가 이걸 인정하는 순간 뭔가 내가 그동안 살아온게 너무 쓸모 없어지는 거 같고 내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 같아서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작은 아들에게 그 마음이 있었을 것 같아요.이 이 작은 아들 배고플 때 처음에는 참았겠죠. 내가 아버지한테 하고 나온 말이 있는데 내가 보인 태도가 있는데 작은 아들이 나가서 망하려고 나갔을까요?

그도 성공하려고 나갔을 거예요. 잘 살려고 나갔을 거예요. 그럼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어요? 성공하려고 더 많은 돈을 벌어보려고 더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버려 얼마나 많이 노력했겠어요. 그런데 그 끝이 실패이고 고갈이고 허무함이라고 했을 때 난 그래도 열심히 살았는데 나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라고 하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어서 때로는 외면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시간이 해를수록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죠. 여러분 핸드폰만

켜도 얼마나 볼게 많고들을게 많고 놀게 많아요. 많은 것을 갖게 하고 또 소비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결핍이 없는 것처럼 속일 때가 있어요.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군중 속에 고독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죠. 목표했던 대학에 들어가고 회사에 취직하고 또는 연애를 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목말음을 모두가 느끼며 살아갑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작은 아들처럼 아버지에게 돌아올 때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내가 고갈되고 궁핍해지기 시작했고 내 배가 고프고 허기해지기 시작했다면 아 나 혼자서는 채울 수 없구나.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가 되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을 신호라고 저는 생각해요. 어, 우리 어, 마지막으로 말씀을 함께 읽을 텐데요. 어디 부분 읽을 거냐면 네,이 부분 저 파란색 맨 마지막 파란색 글씨부터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치근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아버지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말하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의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래서 그들은 잔치를 버렸다. 아버지

가슴에 옷을 받고 떠났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해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돌아올 염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파서 먹고는 살아야겠어서 이렇게 염치 불구하고 왔습니다. 제가 참 아버지한테 한 말이 있으니까 저를 다시 아들이라고 받아 달라고 제가 말 못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그냥 종으로라도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고개를 푹 쓰기고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세하세요? 무슨 소리야? 너는 누가 뭘도 내 아들이지. 이제라도 돌아왔으면

그걸로 됐지.라고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아무리 방황하고 아무리 찾아헤매도 돼지가 먹는 그 열매조차 주지 않았던 그 냉혹한 세상과 달리 아버지는 가장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그 아들만을 위한 잔치를 버림 어버리기 시작하시죠. 여러분 이제이 아들은 굶주일까요? 굶주이지 않을까요? 굶줄이지 않을 거예요. 궁핍하지 않을 거고 불안해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그를 먹이시고 그를 지키시고 그를 앞으로 계속 키워 가실 아버지가 그의 곁에 계시기 때문이죠.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 돌아오십시오. 세상도 집 떠나면 뭐라고 말해요? 개고생이라고 말해요. 고생과 궁핍이 가득한 그 삶에서 돌이켜 이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십시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돌아오면 어떻게 될까요?이 작은 아들처럼 더 이상 굶주이지 않고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어 저는 믿습니다. 어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하는데요. 여러분 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잘 살고 있는 거 같나요? 불안하지

않게 잘 살고 있는 거 같나요? 민규가 절 잘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교회에선 이렇게 하지만 사실 저도 혼자 있을 때 굉장히 불안해요.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아 이렇게 사는게 맞나라고 약간 뭔가 공허한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때를 잘 생각해 보면 제가 언제 그런 마음이 드냐면 제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면 그런 마음이 들어요. 관계가 소홀해지면 저는 가장 먼저 티나하는게 있어. 뭐냐면 사역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싶어요. 내가 하나님과 가는게 괜찮고 내가 예배드리는게 충만하고 내가 기도 잘하고 묵상 잘하고 있고 이럴 때는 내가 사역한 거 누가 몰라줘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왜냐면 아버지가 아니까. 아버지를 통해서 내가 얻고 있는게 내가 누리고 있는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 관계가 정말 딱 소홀해지기 시작하면 제가 바쁘다는 이유로 묵상 소홀리하고 바빠지기 때문에 기도 소홀리하고 바쁘기 때문에 예배 대충드리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편하는 건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나 이렇게 했는데이

정도 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교회에서 이렇게 인정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누군가 이렇게 칭찬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마음 들기 시작하면 불안해져요. 나 이렇게 나 지금이 29인데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내 친구들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는 거 같은데 막 연봉이 얼마라고 하고 집이 어디라고 하고 차 뭘로 바꿨다고 하고 하는데 나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나? 내 친구들은 이제 주임 교사다, 원감이다, 뭐하고 뭔가 스펙스가 짱짱이 가는 거 같은데 나 정말 이렇게

살다가 죽어도 되는 건가? 내 인생 여기 걸어도 되는 건가? 불안해질 때가 있어요. 그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는요. 아무리 좋은 말 위로 듣고 누군가 너 잘하고 있어. 애진아. 이렇게 사는게 같이 있는 삶이 아무리 말해도 안 들려요. 그 불안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요. 근데 그때 가장 헤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뭐냐면 역설적에게도 제가 아무의 위로도 듣지 않고 그냥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는 거예요. 주님 제가 또 불안해지고 뭔가 공허해지고 뭔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 주님 보이지 않는 그런 상황입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그런 관계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면 진짜 거짓말처 그런 마음들이 사라지는 것을 저는 너무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저게 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여러분이 꼭 이걸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취업이 안 돼도 마음이 평안할 수 있습니다. 연애 못 해도 평안할 수 있어요. 내가 집에서 뭔가 관계가 어렵고 친구의 관계 어려워도 평안할 수 있어요. 전 여러분이 그 아버지 집에서만 누릴

수 있는 그 평안을 꼭 경험해 봤으면 좋겠습니다.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요. 오늘 우리가 어 우연히도 또 두 아들에 대해서 우리가 이야기를 들었잖아요. 아까는 첫째 아들에 대해서 들었고 지금 둘째 아들에 대해서 들었는데 어 여러분이 나는 어떤 지금 결핍이 있고 나는 지금 어떤 아들의 상태인가 혹시 여러분이 정말 어 둘째 아들 것처럼 아버지를 떠나 있는 또는 첫째 아들처럼 가까이 있지만 아버지를 떠나 있는 상태라면 여러분이 그 관계에서 돌아와서 주님과 연결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이 시간 이런 마음 가지고 잠시만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갈급함과 결핍을 채우실 수 있는 주님을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것으로 채울 수 없네. 내 갈급함. 상한 나의 심령에 내가 알급함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내 갈급함 주의 음성 들리네. 내게로 나오라. 내게로 나오라. 영원이 영원히 목마음 전혀 없으리 내게로 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가까이 생수의 근원되신 주께내로나오라 영원히 영원히 목마음 전혀 없으리 내게로

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생수의 근대신 주께 우리 다시 한번 더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내 갈급함 내가 갈급함 어느 것으로 채울 수 없네. 내가 갈급함 상한 나의 심령에 내급함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내가급함 주의 음성 들리네 내게로 나오라 내게로 나오라 영원히 영원히 목마음 전혀 없으리 내게로 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생수의 근원되신 주께네. 괴로나오라. 영원히 영원히 목마음 전혀 없으리 내게로 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생명의 근원되신 주께 우리 한 번 더 찬양합시다.

내게로 나오라. 내게로 나오라. 영원히 영원히 목말음 전혀 없으리. 내게로 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생수의 근원 되신 주께네. 괴로나오라. 영원히 영원히 목말음 전혀 없으리. 내 괴로나오라. 가까이 가까이 생수의 근원되신 주께. 네. 지금 함께 어 조용하게 기도하고 싶은데요. 어 오늘 작은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전에 보였던 그 반응들이 아마 여러분들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 내가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고 또는 내가 그동안 싸우고 노력했던

것이 뭔가 내가 죄인이라는 걸 인정하고 내가 주님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할 때 내 힘으로 노력하고 몸무림쳤던 그 모든 시간들이 왠지 물거품이 되는 거 같아서 불안하고 무언가 억울한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어 여러분이 정말 평안한 그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삶을 살고 싶다면 정말 안전한 그 보호자가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그 마음을 마주 주하고 직면하고이 시간 주님 앞에 주님 제가 작은 아들과 같이 주님이 필요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된 거 같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백하면서 기도하고 싶은 것은 혹시 누군가는 저는 이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데 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작은 아들처럼 어 뭔가 방황하고 있고 아직 주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그 친구들에게 그 청년들에게 우리가 우리의 삶으로 이것이 얼마나 평안하고 안전한 삶인지를 보여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직접 보는 것만큼 강력한 배움이 없다라고 말해요. 우리가 아무리

제가 설교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먼저 그것을 경험해서 그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불안할 수 있지만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안전하더라. 이것이 정말 행복한 삶이더라. 충만하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게 달라고 함께 조용하게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네. 이제 어 눈을 뜨시고요. 저희가 청년 예배에는 그가 저번 시간 하지 않았지만 원래는 그 마음을 드리는 예물이라는게 있어요. 우리 어 서연이가 저기

뒤에 제가 헌금함 옆에 그 종이랑 팬을 준비해 놨거든요. 그거를 같이 들고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여러분 마음을 들려오라는 아이유 노래 아시나요? 그 노래 가사가 이렇게 있거든요. 당신에게 드릴게 없어서 나의 마음을 드려요. 그대에게 받은게 많아서 표현을 다 할 수가 없어요. 나지막한 인사의 수많은 내 마음을 고의담아 그 대교로 건내면 내 마음 조금 알까요라는 가사가 있는데요. 이게 좀 저는 저희가 그 마음을 드리는 예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한테 뭘 바라실까요? 많은 황금을 바랄까요? 아니면 수고로운 헌신을 바랄까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어 가장 가장 가장 어 원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어 그래서이 시간 어 주님 제가 주님께 드릴 것이 별로 없지만 주님이 저의 마음을 가져 원하신다고 하니 저의 마음을 드리고 싶습니다.이 나지막한 인사이 낮지막한 고백에 저의 마음을 담아서 어 보내고 싶습니다라는 마음으로 함께 적어 보려고 하는데요. 어떤 걸 적는 거냐면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듣고 또 예배를 드리면서 드는 마음을 솔직하게 적어 주시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어떤 고백일 수 있고 아니면 아 내가 이제 이렇게 한번 살아봐야 되겠다라고 결단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들 한번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습니다. 자, 어느 정도 다 썼나요? 네. 자, 이걸 해본 청년들도 있고 아직 안 해본 청년들도 있는데 어, 저희는 이거 할 때 이렇게 합니다. 자기 종이를 들고 나와서요. 여기서 그것을 읽고 접어서 여기 넣을 거예요. 자, 그런데 누군가는 나는

이거 공개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그냥 어, 저는 오늘 패스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여기에 그냥 넣으면 됩니다. 할 수 있죠? 자, 그럼 우리 경험자들부터 하겠습니다. 자, 그럼 민규부터 올게요. 아, 네. 어, 주님의 채우심을 잘 보이나요? 예. 주님의 채우심을 최근 들어 삶에 와닿게 잘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주님께 제대로 드릴 수 있는 거는 제 감사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이끌어 주시며 받은 사랑 주변에 잘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의 도움으로 깨어진 세상을 지운 것 잘 살아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직은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평안을 찾지 못한 거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찾아 나가는 제가 되도록 도와주세요. 네. 주전 어 주님 요즘 주님과 연결되 있지 않아 너무나 공허했습니다. 어 너 너무 인정받고 싶은데 이제 잘 되지 않아서 화도 나고 안스럽고 그냥 다 진짜 막 다 부셔버리고 싶고 막 그래 가지고 제 뜻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주님 그냥

제 마음을 드리겠습니다. 바라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하겠습니다. 조금 더 애쓰겠습니다. 주님의 아하실 줄 믿습니다. 죄송합니다. 넣겠습니다. 내 보세요. 패스하겠습니다. 네. 저는 오늘 전자님 설교 들으면서 그 가지 비유가 더 생각이 났는데요. 그래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주님 제가 쓸모 있어 보이는 딸감으로 고갈되기보다는 생명의 근원 되신 주님께 붙은 가지처럼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주님의 공급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어 하나님의 나라의 정의대로

하나님을 붙잡으며 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어 사람을 대하는게 힘들고 감정 소비하는 것이 싫어서 현실 도피하듯이 몇 주간 교회를 나오지 않았었는데 오랜만에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또 교회 사람들을 보니 마음 한 켠에 있는 응어리가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어 쉽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또 오래 걸릴 것이란 것도 알겠지만 어 하나님께 더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야 나오니까 얼마나 조그만 편지를 썼는데요. 아버지. 어 안돼. 어 제가 요즘 좀 서울했죠. 교회도

잘 안 나오고 맨날 늙고. 아 이제 다시 마음을 잡아보려고요. 어 도와주세요 아버지. 야 귀엽다. 귀여워. 저 저 오늘 패스하겠습니다. 저도 패스요. 어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직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회심이 부족하고 저는 아직까지도 저의 자기 중심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과의 단계를 단절하지 않게 도와주세요. 좋아요. 어. 아. 아, 오늘 성종이 안 했네요. 했으니까. 알겠습니다. 어, 무슨 말인지 까먹었잖아요,

한서진이. 아 어 오늘 이제 여러분 패스한 친구도 있고 고백한 친구도 있지만 뭐 오늘이 예배를 한번 드렸다고 해서 마음이 막 바로 확확 바뀌고 막 오케이 나 이제 회심한 사람들께서 이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제가 오늘 여러분한테 좀 마지막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여러분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까 우리 준수가 말한 것처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뭐 그럴 수 있지만 그게 언제일지 모르지만 어느 때가 아 내가 뭔가 제 정말 제대로 한번 하나님과 어 관계를

맺어봐야 되겠다. 하나님과 뭔가 연결되는 그런 삶을 살아봐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들 때 그럼 두려워하지 마시 용기를 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왜냐면 오늘 우리가 말씀 읽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너 왜 왔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가 널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 문 앞에서 우리 애가 언제 올까 이렇게 보고 계시다가 달려가시기 그런 분이기 때문에 여러분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시겠죠? 자, 이제 마지막으로 광고 시간입니다. 굉장히

감성 넘치는 광고인데요. 자, 다음 주는 우리 팬별 아우팅이 있습니다. 그래서 팬별로 오늘처럼 이렇게 나가서 밥 먹고 각자 시간을 보낼 거니깐요. 우리 친구들이 아, 친구들이 아니라 청년들이 안 오면 우리 누가 슬퍼할까요? 그렇죠. 우리 청직기들이 슬퍼할 거예요. 막 울 거예. 우리 청직이 지금 막 맨날 전도산에 우리 지금 팬 세 명밖에 안 왔어요. 막 두 명밖에 지금 밥 먹고 갔어요. 막 이런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꼭 참여해 주시고요. 하늘차 아시겠죠? 꼭 참여해

주시고요. 자, 오늘 예배 후에는 청년 코어 그룹 모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리더들은 남아 주시면 될 거 같아요. 자, 오늘 마지막으로 제가 기도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어, 하나님, 오늘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 또 한 번에 예배를 드리면서 주 앞에 나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들었던 그 말씀처럼 하나님, 어, 성경이 정의하는 그 죄라고 하는 것 안에서 과연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가? 우리는 아버지 집에 거하고 있는 아들인가를 돌아보게 하시고 혹 그렇지 못한

순간들이 있다면 주님 우리가 용기를 내어서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마음들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시간 각자의 마음들 각자의 작은 고백과 결단들을 적어서 냈습니다. 주님이 마음을 그 누구보다 귀하게 보시고 가장 기다 계실 주님께 드리오니 주님이 마음대로이 고백대로 결단대로 살아갈 수 있는 한 주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