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만에 여러분을 다시 만나게 돼서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어저는 몇 번 말씀지만 신교회를 저희 교회 형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늦게 많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만나서 함께 교재하고 예배할 수 없어 이젠 언어와 국경을 넘어서 이렇게 한 자리에서 함께 예배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오늘 나눌 하나님 나라의 신비자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때 저희 교회 소개는 드렸으니 오늘은 어 말씀을 좀 나누려고 합니다. 이거 이거 오늘과 내일의 말씀 본문이
요한복음 8장입니다. 내일 본문에는 예수님이 가르치는 두 가지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고 나는 위에서 너희는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아래 세상과 위상을 나누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은 세상이 아래 세상이고 예수님께 속한 세상이 위 세상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고 나누어 말하기이 세상은 예수님이 잃어버린 세상이고 다른 세상은 예수님께 속한 세상입니다.
정리하면 한쪽에는 아래 세상 혹은이 세상이라 불리는 세계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위세상 혹은 다른 세상이라고 표현된 세계가 있습니다.이 중에 어디에 속할 건지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세계를 성경은 다른 언어로 하나님 나라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하나님 나라가 죽어서 가는 미래의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부자 마가복음 1장 14절 15절인데요.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어마크포인트 2장한 자리카인 예수님이 공생을 시작하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해서 선포하신 때가 즉 하나님이 준비했던 그 시점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말씀말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이야기는 왔다는 겁니까? 안 왔다는 겁니까? 看一下已經了或者還沒什麼意思 감사하게도 마가복음의이 단어가 한번 더 사용됩니다.
이곳에 보면이 단어가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42절인데요.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12두 중에 하나의 유다가 왔는데 대상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체를 가지고 그와 함께하였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향하기 전 가른 유다가 사람을 데리고 잡으러온 상황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라 43절 보면 그 말씀을 하는 동안
유다가 도착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을 때도 그 선포가 끝나기도 전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한 것이라고 예수 공덕 자 예수화 어 나를 판에서 가까이 왔다라고 할 때 유다가 보였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할 때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과장면 당죠. 그래서 아래 세상만 있는 줄 아는데 거기에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그러고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대기표를 뽑고 갖고 있다가 죽어서 나중에 들어가세요가 아니라 지금 당장 그 나라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주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의 뜻은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이죠. 왜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의 삶을 바꿔주는 초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위세상이 지금이 땅에 찾아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이 아래 세상에 머무지 말고이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를 우리의 발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중심을 예수님께 둘 때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존재가 되어서 그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다시 요한복음으로 들어가서 생각해 봅시다. 요한복음은 그래서이 구분을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아세상 아래상 특징은 빛이 없습니다. 아상은 예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어둠이라고 표현했던 아은 생명이신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이 세상을 사망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빛과 생명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이 빛과 생명이 없어서 괴로운이 아래 세상에 예수님이 이것을 주기 위해서 오신 거해지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없는 삶이 어떠한가 잘보라고 이야기하고 내용도 예수님이 없던 사람들의 공함과 한계입니다. 리고데모가 그랬습니다. 그는이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채워지않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 아래 세상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 니고데모가 대단한 것은 그가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답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으러 갑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남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건 다 써야 정상 다 쓰지. 여러분 아시겠지만 거듭나미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는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종성에 있는 종신 수성 그런데 그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 의미가 중요합니다. 거듭남의 두 번째 미는 위로부터 태어나다니다. 정상 정상 더 상다 아래 세상에 속한 존재로 두 번이 아니라 세 번네 번 태어나도 의미가 없습니다. 투성 이철 양산 메요 중요한 것은 이제는
위세상에 속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야 띠상 정상 요한복음에는 그렇게 변화되어가는 니고 니고 모습이 점점 나타나더칭 위수지 모양 타도민 사마리아 여인도 그렇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영원한 생수에 대해서 말씀하습니다. 그 여인은 영원하지 않은이 땅의 물에 의지하며 살았습니다.이 이 땅의 관계에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위상 즉 예수님께 속한 세상으로 초청하십니다. 내가 영원한 생수다. 내가 너에게 그것을 줄 수 있다. 베스타에 있던 병자에게도 찾아갔습니다.
경쟁이 가득한이 세계에서 버림받은 그 한 사람 그 소망없는 삶에 예수님이 찾아갔습니다. 그의 삶을 바꿔주시고 죄에 빠져 있는 가음한 여인조차 해방시키고자 그녀에게 다른 삶을 살라고 말씀하 예수 다하나 자다 타야 요한복음은 온통 그런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없던 힘겨운 삶에 예수님이 찾아가서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 너희에게 새로운 삶이 가능하다. 내가 너희에게 그것을 주어왔다. 아시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빛이고 생명의 근원인데 그분과
단절되었으니 이제 사람들은 빛과 생명이 없는 어둠과 사망에 그래서 우리는 할 수밖에 없어충을잃어버렸 그래 자꾸 그것을 해결하려고 발버치야 그런데이 세상의 것들로 그것이 채워지지 않더만주신 니고데모가 추구했던 종교적 열심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어서 뭐 쫑자 사마리아인이 추구했던 관계적 열심으로도 채워지 주님은 답이 거기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 얘기를 좀 해봅시다.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비교적 작은 나라임에도 나름의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정말 많은
부분이 발전하고 편리해. 그런데 정말 우리가 더 행복해졌습니까? 한국에는 부자동일수록 담장이 더 높습니다. 루츠야지나 이거 허기랑해 다 장비 왜까 그 외도 다 장비 뭐야 왜까워 그 높은 담장 속에 담겨 있는 마음은 무엇이겠습자 너가 허기하라 너도 황즈 까우지다 황즈 나 창피도 왜까 써 있어 너면들라 써 있어야 불안함과 외로움입니다 저는 제가 항상 그게 감옥이라고 뿌안나 뭐스 뿌아나 꼬다나 좋은 도시일수록 공부를 열심히 하기를 바라면서 그 일에 부모님들이 헌신합니다.
주자 딱 다서 다야 후무도 판서 하 런전도 수피 그렇게 실제로 아이들 달달 볶으면 어느 정도 성적을 냅니다. 그런데 그들의 내면이 얼마나 망가져가고 있는지 한국에서는 가장 부자동네에 가장 마음이 아픈 청소년들이 많다고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아이들이 치열한 경쟁 사고립되고 아파합니다. 우리나 오늘도 세상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 인생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야기들에 진짜 답이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거기에 영원한 생수가 있을까? 그곳이 진짜
빛에 속한 삶까? 학벌과 재산으로 나의 존재같증하는 세상이 하나님이 진짜 우리에게 주고 싶은 세상이었을까? 이것은 쉐리 이것은 차이 나춘 자마 여기에 제 아들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자녀들이 저보다 더 발전 세상에 살아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더 행복한 세상에 살아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점점은 공하고 고립되고 아픈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계가 이렇게 공허하고 망가진 세계라면 하나님의 세계는 충만한 세계입니다. 죄왕 텐도 서너 총만한
왕 총만한 왕 총만성 그 세계를이 땅에 연결시켜주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이 땅에 살아가는 괴로운 삶에 그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8장 31절과 32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장산예수必得自 아멘.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 그래서 거듭난 사람 위에 속한 그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가 참 자유를 누린다고 말씀하수요. 아멘. 아멘. 그때 비로서
우리는이 세상의 기준들이 세상의 거짓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고자 소 세상의 기준에 얽매어 살아가는 삶은 어쩌면 가장 자유가 없는 삶입니다. 늘 세상의 기준에 평가받고 늘 경쟁하고 늘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입증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삶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경쟁과 증명의 세상 속에서 우리 일심 교회와 사임의 교회가 세상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대한적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징정민 차이는 거 존자 난신자 공통공양시상
세상은 우리에게 증명을 구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그가 우리의 충만함이 되기 때문에 예수도 번선지 않어 뭐 총만 아멘 또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라고 내 옆에 함께 뭐냐 내게 만약에 부족함이 있다면 그 부족함만큼 주님께서 일하실 공간이 넓은 것입니다. 말씀에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직이 땅 아래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진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이제는 위 세상에 속한 삶을 살아갑니다. 양상도 아멘 그것이
우리가 우리 우리의 전과 우리를 다르게 살게 하는 근거입니다. 우리는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삶을 살아갑니다. 요한계시록은 말합니다. 요한계시록만 언젠가 두 세상이 만나게 될 것이다. 종이상 위 세상이 아래 상을 완전하게 덮 것이다. 땅에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완성입니다. 저는 그날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그때 하나님께 속한 모든 열방에 각기 다른 민족이 나와서 한분 하나님 안에서 함께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我們的 아멘. 아멘. 그런데 어쩌면
그 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저거이 카이셀라.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서 주님 때문에 만나서 서로를 형제의 자매라고 부르며 각기 다른 언어로 함께 예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인 예수지도이 삶을 끝까지 함께 살아냅시다. 아멘. 이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이 삶을 예수님께서 그것을 오셨고 우리에게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신자 공동 하나님의 축복에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변상 상태 상치 주후 위 장위이 신자후의 동꽁디션 개명 동자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