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2026-09-06 | [마리아 예배] | 맡은 자 (요한복음 19장 26~27절) | 박예진 전도사 | 양주시 옥정동 사귐의교회 주일설교

2026-09-06 · 요한복음 19장 26~27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어, 성경에는 참 다양한 인물들이 나옵니다. 혹시 여러분은 그중에서 조금 더 좋아하는 그런 인물이 있으신가요? 있으신가요? 요셉을 좋아하시는군요. 네. 뭐 아브라함, 다윗, 모세, 베드로 정말 많은 인물들이 있죠. 어, 참 좋은 믿음의 선배들이 많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유난이 사도 요한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부에 초등부 교사로 섬겼던 적이 있는데 그때 저희반 이름이 요한만이었어요. 제가 그만큼 요한을 참 좋아합니다. 어, 제가 이렇게 요한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삶의 모습 때문입니다. 어, 여러분은 요한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어,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두 가지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는 거 같아요. 하나는 보완계라고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랑의 사도라는 것입니다. 먼저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보안개라는 별명을 붙여 주세요. 보안의 뜻이 무엇일까요? 천둥의 아들, 벼락의 아들, 뭐 우의 아들 뭐 이런 뜻이 어 뜻입니다.이 별명을 통해서 우리가 유추해 본다면 아마도 요한은 좀 이렇게

얌전하고 조용하고 상냥한 그런 인물은 아니었을 것 같죠. 어 어쩌면 조금 불같기도 하고 뭔가 이렇게 목소리도 이제 클 것 같고 막 그런 이미지가 떠올립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저에게 그럼 보완하기에는 나쁜 겁니까라고 묻는다면 어 저는 꼭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어쩌면 조금의 낡것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그래서 조금은 야생마 같기도 하고 때로는 불 같기도 하고 그런 어 별명이 바로 보완계였던 거 같아요.

요한의 별명을 조금 더 잘 이해해 보기 위해서 그의 일화를 함께 하나 살펴볼 텐데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인박했을 때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려고 어디로 가셔야 되죠? 네, 맞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이제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님이 사마리아의 한 마을을 지나가시게 되었어요. 그때 그 마을을 지나가실 때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쁘게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라고 성경이 나옵니다. 뭐 좀 이상하죠? 당시 그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는 그 예수님이 그래서 어디를 가든 막 사람들이 구름대처럼 막 몰려들고 사람들이 막 두 팔 벌려 환영했던 그 예수님을 이들은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냐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기 때문이었다라고 성경이 기록합니다. 당시에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아주 오랫동안 어 깊은 갈등의 골이 있었어요. 그중에서 대표되는 갈등 중 하나가 바로 예배 어 장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예배야 하는가?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옳은가?이 문제가이 두 집단 사이에 아주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죠. 그때 그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는이 산에서 예배하는데 유대인인 당신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우리는 어디서 예배해야 합니까라고 묻죠. 이걸 물었던 이유도 이것이 그들에게 당시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이라고 하는 곳에서 예배를 드렸었는데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었죠. 사마리아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그 유대인들도 싫고 또 그들이 모여서 이곳에서 예배하는게 진짜 예배야라고 말하는 그 예루살렘도 싫었던 거예요. 그런데 유대인 예수님이 그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신다고 하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이 썩 달하지 않았던 거죠.이 이 모습을 제자들이 함께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중에 요한의 반응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제가 어 안내드린 그 안내문에 보면

누가복음 9장 54절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5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네. 보안게라는 이름 답게 천둥의 아들은 참지 않죠. 그 모습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해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할까요? 물론이 말을 해서 예수님한테 혼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앞에서 말씀드렸죠. 요한이 나쁜 사람이라서 보안하기가 아니라 아직 조금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고요. 요한도 아마 사마리아에 대한 감정이 쏙 좋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면이 질문 안에는 예수님을 향한 애정도 포함되어 있었겠죠. 아니 감히 우리 선생님을 마다해. 너희가 예수님을 거절한다고. 아마 이런 마음도 요한 마음 안에는 있었던 거 같아요. 우리는 보통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누구를 가장 먼저 떠올리나요? 네. 베드로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 제자 공동찬에서 예수님과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그 세 사람 중에는 베드로도 있었지만 요한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마도 베드로 못지 않게 요한도 예수님과 그렇게 돈독한 관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요한의 마음이 그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한 그 불편함이든 아니면 내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그 선생님을 거절한 그것에 대한 분노, 어쩌면 그 애정을 참지 못한 그 마음이든 그게 무엇이든간에 오늘의 일화를 보면 아직 그는 그의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천둥처럼 벼락처럼 반응하죠. 불로 다 태워 버릴까요? 그런데 이런 천둥 같던 사람 요한이 다듬어지고 변화에 갑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떠오르는 두 번째 이미지 사랑의 사도가 어 되어가죠.

요한이 시간이 흘러서 똑같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대하는 에피소드가 사도행전에 등장하는데요. 사도행전 8장 14절부터 15절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8장 14절부터 15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두 사람은 내려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해서 저들을 불로 태워버릴까요라고 물었던 그렇게 화를 내고 감정을 참지 못해서 사마리아 떠나갔던 그 요한이 사도행전에

가서는요. 예루살렘에서 기꺼이 그들을 위해 사마리아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성령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위해서 기도해요. 요한의 모습이 조금 달라 보이죠. 그의 온도가 바뀌고 그의 행동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뿐 아니라 요한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제자들과 다투던 그 모습에서 내가 형제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내어 줄 수 있다라고 말하는 사랑의 사도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가 기록한이 사랑의 사도 요한이 기록한 그의 서신을 보면 정말 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나와요. 또 성경 외에도 초대교회 문헌이나 전승에 보면 요한의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 제가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하나만 소개를 하자면 이런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굉장히 나이가 많아서 어 죽었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근데 그가 노년에 너무 나이가 많이 드니까 이제 스스로 거동조차

어려운 그런 상황이 되었다고 해요. 근데 그럴 때조차 그가 제자들에게 부축을 받으면서 설교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가 했던 설교가 되게 유명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말했대요. 어린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이 말을 계속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이것이 주님의 계명이고 서로 사랑하는 것 하나만 온전히 지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천둥 같던 요한은 이렇게 그의 노년에 이르서는 사랑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을까요? 이런 모습이 되기까지 어떻게 다듬어지고 어떻게 빚어져 갈 수 있었을까요? 어, 우리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한번 읽어 볼 텐데요. 요한복음 19장 26절부터 27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내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아멘. 어, 요한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의 인생에서 매우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을 거예요. 방금 우리가 읽은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로 요한을 내려다보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떠나서 도망가고 없죠. 그런데 그때 유일하게 그 십자가 곁을 지킨 사람이 바로 요한이었어요. 아마도 요한은 어 만신창의 모습을 하고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을 보면서 또 옆에는 울고 있는 마리아와 함께

그 예수님을 올려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 중에서요. 십자가를 정면으로 목격한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주님께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는 그 정말 말이 안 되는 그 사랑의 현장을 정면으로 마주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요한이 그것을 바라보자마자 그 현장에서 그 모든 것 그 주님의 섭리와 그 사랑을 이해하고 깨달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신 요한도 그 자리 있긴 하지만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스승님이 저렇게 죽다니 충격과 어쩌면

절망적인 마음이 요한의 내면을 가득 채워서 흔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면서 그 과정을 통해서 요한에게이 사건이 재해석되기 시작했을 거라는 거예요. 단순히 충격적이고 단순히 너무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 사건이 아니라 무언가 그 사건이 재해석돼서 요한의 삶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여러분 앞에서 봤듯이 요한은요 갈등 앞에서 그들을 물리치자고 말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십자가에서 목격한 주님의 사랑은

무엇이었습니까? 갈등을 품는 사랑이었죠. 예수님을 욕하던 예수님을 죽이자고 선동했던 그 사람들 그 적대자들마저도 품고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요한은 다른 제자들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었던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한 자리 차지하고 싶었습니다. 왠지 그것이 성공한 삶 같고 나에게 유익한 거 같고 가치가 있다고 여겼겠죠. 그러나 여러분, 요한이 목격한 주님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천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을 섬겨요.

별것 없는 사람들을 섬겨요. 죄인이야. 더러운 사람들이야라고 손가락들 당하는 그들과 함께 먹습니다. 그리고는 끝끝내 고난받는 종으로 십자가를 지시죠. 요한은 시간이 갈수록 그 십자가의 가치가 무엇인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그 세상을 역행하는 거꾸로 된 섬김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갔을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이해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는 그 조건과 한계가 없는 사랑을 눈앞에서 목격한 목격자였어요. 어 요한복음에는 요한을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라고 많이

표현을 하는데요.이 이 표현은 예수님이 그 요한을 참 많이 아끼고 사랑했다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쩌면이 표현은 그 예수님의 사랑을 정면으로 목격했던 피부로 경험했던 그 요한 자신의 고백일지도 모르겠어요.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했지 않습니까? 그것을 스스로 기록하면서 자기를 기록하는데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라고 스스로 적는 거예요.이 표현 안에 요한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도 담겨 있지만 어쩌면 요한 자신의 고백도 함께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예수님께 사랑받은 사람이야. 나는 예수님이 끝까지 사랑했던 제자야. 여러분,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것처럼 사랑의 시작은 경험에서 시작을 합니다.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이 함께하셨구나.이 은혜가 멈춘 적이 없구나. 그런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회복되어 사랑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거죠. 십자가 밑에서 요한이 받았던 첫 번째 사랑은 바로 자기 자신을 향한 그 사랑이었어요. 그 사랑을 목격하고

경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제가 오늘 여러분께 더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바로이 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제 제법 사랑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다. 그 사랑을 깨닫는 것이 참 중요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경험하고 채워줘야 나도 흘려보낼 수 있다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요한은요 그가 받은 사랑이 이게 다가 아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내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 요한이 어 아 예수님이 요한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말해요. 어머니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지금 어머니 곁에서 있는 그 제자가 이제부터 어머니 아들입니다. 그런다음 요한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시죠. 자, 이제부터 이분이

너의 어머니야. 그리고 그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깁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자신의 사랑하는 어머니를 맡기는 장면이에요. 여러분, 저는 이게 사랑에 대해서 정말 중요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요. 때로 사랑을 이야기할 때 나의 경험하는 사랑에 너무 집중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내가 사랑받는 거, 내 상처가 치료되는 거, 내가 위로받는 거,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는 거. 여러분, 그런 경험들도 불로 중요해요. 나를 향한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있어야 사랑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먼저 주셨어요. 그런데 우리는 가끔 그것에 너무 치우쳐서 다른 쪽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를 향한 사랑도 주시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또한 사랑을 맡기시는 분입니다. 사랑은 사랑을 받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맡은 자로 살아갈 때 비로서 완성이 되죠. 사랑을 받는 신앙에서 이제는 사랑을 맡은 사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도 요한에게

그러셨듯이 맡기셨기 때문이에요.네 옆에 있는 그 사람이 이제 너의 가족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여러분, 어머, 마리아에게는 이제이가 그의 어,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하고 요한에게는 이제이가 너의 어머니다라고 말하는게 뭐예요? 그 둘을 가족으로 묶어 주신 거죠.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책임질 수 있게끔 주님께서 묶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 전에 가르치실 때 뭐라고 말하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나의 형제고 나의 어머다. 그런 사람이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 한 가족이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그거를 다시 한번 요한과 마리아에게 묶어 주고 계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십자가 현장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요한이 그 사랑을 위탁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만 사랑하시지 않았어요. 그에게 그가 사랑해야 할 사람을 같이 맡기셨죠.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 그가 돌봐야 할 사람도 같이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그를 채우셨지만 동시에 그 사랑을 흘려보낼 사람도 그의 삶에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어, 예수님은 그를 사랑의 수혜자로만 부르시지 않았어요. 예수님의 뒤를이어서 그 사랑의 바통을 들고 예수님처럼 뛰어갈 그 사랑의 위탁자로 부르셨다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은 그 사랑의 위탁자의 부르심을 부르고 계신 줄 믿습니다. 어, 요한이 어, 대단한 것은이 부르심을 받고요. 성경에 보니까 그때부터 바로 그때부터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라고 말해요. 정말 예수님 말씀처럼 이제 마리아는 나의 어머니야. 그리고 자기 집에 대문을 열어 그를 맞아들렸다는

거죠. 그 결단이 잠깐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요한은 그를 정말 어머니처럼 돌보고 사랑하며 업보셨습니다. 여러분, 요한이 마리아를 돌보는 것이 쉬웠을까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까 흠도 없고 완벽한 그런 어머니 상이었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거예요. 어때로는 둘이 부딪히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서로 삐지기도 하고 서운하다고 하기도 했겠죠. 여러분, 그런데 사랑의 신비는 바로 여기서 일어납니다. 내가 사랑을 해 봐야 사랑을 줘 봐야 내가

받았던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일 깨닫죠. 사랑하는 것이 어려울 때 그 어려움 앞에서 내가 씨름할 때 아 내가 받은 그 사랑과 은혜가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비로서 체감할 수 있습니다. 어 제가 참 아끼는 어 동생이 있는데요. 그 동생이 올해 초에 어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언니 내가 우리 교회에서 처음으로 올해 첫 리더를 받게 됐어.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기대감이 부소리로 저한테 막 이야기를 하길래 어 응원한다. 기도하겠다 한번 잘

해 봐라 이렇게 말을 했죠. 그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어떻게 연락이 왔을까요? 울고 불고 연락이 왔어요. 너무 힘들다. 난 리더가 이런 건줄 몰랐다. 대체 어떻게 한 거냐? 그러면서 저한테 고백하기를 내가 그때 언니한테 그렇게 한 거 너무 미안하다. 나는 그때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지 몰랐다. 나는 그때 그게 이렇게 힘들게 참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근데 내가 해 보니까 한 달 해 보니까 깨닫겠더래요. 저 너무 미안하더래요. 그래서 제가

그럼 그 마음으로 너의 너를 돌보고 있는 너의 리더들을 또 잘 이렇게 섬기고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연락을 했던 그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이런 경험이 있으실 것 같아요. 뭐 교회에서 리더가 아니더라도요. 엄마가 돼 보면 엄마의 마음을 가장 잘 안다고 하죠. 우린 내가 직접 그 삶을 살아볼 때 뭔가 추상적이었던 그것들이 내 삶에 확 와닿이 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랑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순간순간 사랑하려고 몸부림치다가 부데끼고 애쓰고 좌절하고 절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배웁니다. 아 사랑은 이런 것이었구나. 그리고 나는 이렇게 어려운 사랑을 받은 사람이었구나. 그 은혜가 당연하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여러분, 그 사람이 어떻게 할까요? 다시 사랑하러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돼요. 여러분, 성경이 요한의 모든 삶을 다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한 서신에 나타난 그의 가르침을 보면 그가 오랜 세월 동안 어떤 것을 깨달았고 어떻게 몸부림을 치며 그 사랑에 대해서 배웠는지를 아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요한일서 4장 11절부터 12절 말씀과 요한일서 3장 18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 하나님 요한이 어 노인이 되어서도 끝까지 가르쳤던 것은 서로 사랑하는 거였어요. 요한이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어.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어.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도 맡기셨어. 우리는 이제 그 맡은 사랑을 살아내야 해라고 말하죠. 그렇게 우리가 그 맡은 사랑을 책임지고 사랑하며 애쓰며

나아갈 때 비로소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완성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받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그 사랑을 맡을 때 완성되어 갑니다. 또 요한이 말합니다. 사랑은 말로 하는게 아니야.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하는 거 아니야. 또는 감정으로 내 감정이 동하면 하고 불편하면 피하고 그런게 아니야. 행동과 진실함으로 하는 거야. 이제 말씀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요한이 한 순간에 사랑의 사도가 되었을까요? 당연히 그러지 않았겠죠. 요한은 자신에게

맡기신 그 어머니 마리아와 또 더 나가 그가 맡아야 했던 그 초대교회 공동체와 자신에게 맡겨진 그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사랑하려고 애쓰면서 부단히 노력하면서이 사랑을 배웠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기신 이들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그 예수님의 마음을 아주 조금 더 알아갔을 것입니다. 아,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거구나.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섬겼던 것은 쉽지 않은 것이구나. 그것이 다 은혜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아

갔겠죠. 그것은 그가 사랑을 맡은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깨달음입니다. 여러분, 요한은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들이 생길 때마다 그 부르심이 있을 때마다 그때부터 즉시 그때부터 즉시 자기의 마음을 열고 자기 집에 대문을 열고 자기 삶의 문을 열어서 그들을 맞아들이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그의 말처럼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 감정도 무시해야만 했겠죠. 자존심과 자존심이 뭉개지는 거 같은 그런 실름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요한은 보안의 천둥의 아들에서 서로 사랑하라.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라고 말하는 사랑의 사도로 다듬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내가 사랑받는구나. 그 받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맡은 사랑을 품고 살아갈 때 완성되어 갑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주님이 맡기신 그 사랑은 무엇입니까? 오늘 여러분에게 맡겨진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삶에 문을 열고 맞아야 할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오늘 먼저 여러분 옆에서 함께 예배하고 있는 그 사람이 어 바로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이라고 믿어요. 에클레시아라는 이름으로 또는 사김의 가족이란 이름으로 또 저에겐 청년 공동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이런 다양한 이름으로 우리에게 서로를 맡기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고 그들의 삶을 서로 돌봐주고 붙들어주고 끝까지 책임지며 살라고 맡기신 거예요. 여러분, 그렇다면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이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이 그를 여러분께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에게 말씀하셨듯이 성령께서 순간순간 여러분에게 사랑을 맡기실 겁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라. 그 형제에게 먼저 연락해라. 그 자매를 위해 너의 시간을 혹은 물질을 흘려보낼 수 없겠니라고 부르실 거예요. 저는 그럴 때 우리가 요한처럼 그때부터 그때부터 어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 제가 올해 청년 공동체를 맡았는데요. 누군가 저에게 성령 공동체를 맡으면서 전도사님에게 달라진 거 또는 그 공동체를 맡으면서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을 위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고 그들을 위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죠. 지금 없으니까 말하는 거예요. 재만 갖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붙잡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포기가 안 돼서 울면서 기도하고이 친구 좀 도와달라고 얘 좀 하나님의 깨닫게 달라고 붙들 때 제가 느끼는 거야. 누군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붙들고 기도했겠지. 나의 부모가 나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나의 목사님이 나를 그렇게 붙들고 기도했겠지. 그것을 제가 점차 깨달아 갑니다. 그 깨달아지면 다시 가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거죠. 여러분, 가끔 우리는 사랑은 동사다라고 말합니다. 제가 봤을 때 그런 면에서 요한이 보여준 사랑은 동사였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바로 행동하고 문을 열어서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지금 동사입니까? 아니면 내 생각 속에, 내 감정 속에 머물고

있습니까? 요한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던 이들을 향해 불을 내리자고 할만큼 예수님을 사랑했던 제자였어요. 열정이 있는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께서 맡기신 사랑을 감당하며 나아갈 때 그가 비로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의 열정의 방향이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모든 예배자 여러분, 사랑을 맡은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사랑을 받은 자에서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을 맡은 자로 나아가십시오.

그 사랑을 통해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시선으로 사랑하는 제자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한번 그 사랑을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받은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나? 또한 이제 나이가 맡은 사랑, 내게 맡겨진 사랑은 무엇인가? 한번 잠시 묵상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사랑을 맡은 자들이 모여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함께 그 주님의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져 가며 지어져 갈 줄 믿습니다. 이제 그런 고백을 담아

함께 찬양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하나님의 [노래] 자녀. 주 사랑하네. 우리거 [노래] 할 때 주님 나를 사랑하신 것 [노래] 같이 우리도 [노래] 서로 사랑할 수 있네. 우리는 [노래] 주의 몸된 우리는 주의 몸된 교회 모든 지체가 하나될 때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며 고통과 [노래] 즐거움 함께 나누네. 하나님 [노래] 안에서 우리 서로 이어져 주가 거하실 성전이 [노래] 되네. 모퉁이 [노래] 둘 되신 예수와 하나 되게 하신 성령

안에 함께 지어져가네. [노래] 우리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노래] 자녀. 주 사랑하네. 우리 거할 때 주님 나를 [노래]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노래] 사랑할 수 있네. 하나님 안에서 [노래] 하나님 안에서 우리 서로 [노래] 이어져 주가 거하신 성전이 [노래] 됐네. 모퉁이 [노래] 뚫되신 예수와 하나되게 하신 성령 안에 함께 [노래] 지어져가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노래] 안에서 우리 서로 이어져 주가 거하신 성전이 [노래]

되네. 모퉁이 뚫되신 예수와 [노래] 하나되게 하신 성령 안에 함께 지어져. 우리 한 번 더 고백합시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노래] 안에서 우리 서로 이어져 [노래] 주가 거하실 성전이 됐네. 고통이 뚫되신 [노래] 예수와 하나되게 하신 성령안에이 [노래] 시간 기도할 때 하나님이 시간 내가 사랑받은 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 맡은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고 사랑의 힘을 달라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