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기억하는 사람

2026-09-03 (올린 날짜) · 사사기 1장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어,이 사사기의 이야기는 여호수아의 죽음부터 시작을 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이어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지도자였죠. 그의 사명이 무엇이었을까요?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생전에 그는 이스라엘과 함께 가나안 땅에 많은 부분을 정복했고 또 각 지파들에게 땅을 준비한 어 분배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서를 잘 보면 아직 모든 땅을 다 정복한 거는 아니었어요. 아직 앞으로도 정복해야 할 땅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뭐 지금까지

글 왔듯이 뭐 앞으로도 정복해 가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면 리더인 여호수아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거였어요. 여호수아와 같은 좋은 지도자가 공동체를 떠나는 것도 문제가 되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그의 뒤를이어서 그 공동체를 이끌어갈 후계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기 전에요. 그 백성들을 모두 다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그들이 맺었던 언약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줍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중심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로 다시금 뭉칠 수 있도록 하죠. 백성들에게 너희 땀만 먹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겨야 해라고 아주 신부를 합니다. 어 그러한 여호수아 외침을 듣고 백성들도 반드시 우리가 반드시 그러하겠노라고 한 마음으로 약속을 하죠. 여호수아가 죽기 직전에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그 가나안 땅을 정복하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라는 것을 여호수아는 알고 있었어요. 그동안에 그가 모세를 따라서 광야 생활을 했을 때 그 무렵 가나안 땅을 정복해 가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여호수아는 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만 우리가 하나님과 한 편이 되어야만 이길 수 있구나라는 것을 정말 몸소 체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정복하고 그 땅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것처럼 정말 그들에게 복된 땅이 되려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땅을

차지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전심으로 주님을 따랐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마지막까지 끝까지이 한 가지를 계속해서 당부합니다.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이 가르침을 끝으로 여호수아는 죽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생전에 자신들에게 일러졌던 대로 남아 있는 땅을 다시 정복해 나아가기 시작해요. 우리 그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수기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열주었다.

가운데 어차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서야 합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더라. 가 땅을 유가지파의 손에 넘겨주었다. 유다가 지파가 싸고 올라갔을 때에 주님께서 가나한 사람과 세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고 그들은 그 명이나네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에게 그 땅을 넘겨 주었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어 제가 오늘 묵상방에도 남겼는데 넘겨 주겠다가 아니라 이미 넘겨 주었다라고 약속하세요. 전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그들에게 승리를 주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바라보에 그들의 승리는 이미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는 그 약속을 붙들고 전장으로 나아가죠. 그리고 그 약속대로 승리를 얻습니다. 유다 지파는이 약속을 붙들고 계속해서 많은 땅들을 점령하면서 나아가요. 그런데 그렇게 잘 나아가다가 중간에 삐끗하는 일이 생기죠. 우리 그 말씀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 사람들과 함께 지방을 찾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살고 있는 거 절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했다. 유다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면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들을 아무도 막을 수 없어 보였죠. 그런데 그들의 승리가 가로막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지금까지 그 땅에 사는 많은 거민들을 무찔렀고 그 땅에서 쫓아내 왔는데 쫓아내지 못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네.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들이 철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성경이 기록해요. 어, 여러분, 당시 사사기 1장이 어,이 1장의 배경은 청동기에서

철계 시대로 넘어가는 과독이었습니다. 그러니까이 당시 철제 무기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굉장히 튼튼하고 강력한 신무기죠. 그런데 그런 철 무기만 갖고 있어도 어 저 사람도 너무 센데라고 할 만한데 무려 철 병거를 가지고 있었대요. 매우 위협적인 군사력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것도 철병가 싸우기에 너무나도 유리한 어떤 지대 낮은 지대. 유리한 평지에 그 병거가 이렇게 쫙 서서 유다 지파를 막아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다가 느끼기에는 마치 그들의 눈에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철롱성 같은 강철 부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지금까지 전투와는 조금 다른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래도 그동안은 철병 없었어. 그래도 그동안은 싸워 볼만 했어. 그런데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어떻게 저들을 이기겠어라고 하는 그 생각이 싹을 티우는 순간 그들의 마음에는 두려움도 같이 싹트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싹 두려움 어느새 공동체 전체를 떨게 만들었죠. 결국 유다 지파는요 철 병거를 내쫓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말죠. 여러분, 두려움에 떠는 사람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에서에 보면요.이 이야기와 대조되는 참 재밌는 장면이 나와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도 철병거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들은 이때 그것을 처음 마주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도 두려워했고 걱정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말해요. 가나한 사람들에게는 다 철병거가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일까요? 그들에게는 무려 철 병거가

있는데 그들은 그렇게 강력한데 어떻게 우리가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 무시무시한 가나안 거인들 그 거구 같은 그 사람들 한 사람 상대해도 내가 될까 말까데 어떻게 그 병거를 타고 우리를 향해 진격해 오는 그들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이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철 병거를 만나는 거 같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왠지 우리 생각이 이전과는 다른 도저히 내가 싸워 볼 상대가 아닌 것만 같지. 그래서 낙심되고 두려들바들 떨게 만드는 그런

병거들이 우리 삶에도 존재하고 우리의 걸음을 가로막을 때가 있죠. 재정의 문제일 수 있고 건강의 문제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관계의 문제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어 주 어 주목해 볼 것은 유다 지파가 계속 패배하고 있다가 이들을 만난게 아니었다는 거예요. 계속 승리하다가 승승장구 치고 올라다가 만난 거였어요. 여러분 연인 승리가 계속되었다면 그 기세로 한번 싸움을 만도 하잖아요. 아, 우리가 지금까지 이겼는데 한번 부딪쳐 보자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그들에게 얼마나 크고 두려운 문제였으면 그 승리하던 기세가 다 꺾이고 물러났겠느냐 하는 것이죠. 저는 마치 우리 삶의 문제도 이와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마치 승장구하는 거 같을 때가 있죠. 뭐든지 내 믿음으로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내 마음이 부유한 것만 같은 넉넉한 것만 같은 그런 때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나가다가도 나의 한계를 넘어선 문제.

이건 도저히 내 상대가 안 돼라고 생각하는 그 문제를 만나면 한 순간에 꺾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의 사사기는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약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우리는 신앙이 참 좋았어 어 좋은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게 남이든 나이든 그럴 때가 있죠. 그럼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렇게 기도하던데. 그렇게 예배하던데. 저는

오늘 사사기 말씀을 보면서 생각해 봤어요. 그럴 수도 있구나. 믿음으로 걷다가 한 순간에도 굳그라질 수 있는게 우리의 연약함이구나. 주님께서 주시는 그 승리를 경험하다가도 두려워질 수 있고 주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던 그 기적을 경험하다가도 불안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약함이라는 것을 오늘의 사사기가 보여 주는 거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두려움에 빠질 수 있어요. 그래서 함부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교만할 수 없는 것이죠. 이스라엘이

이렇듯 걱정스럽게 말하니까 여호수아가 생전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들이 수 있 여호수아는 왜 그런 걸로 믿음이 흔들리느냐 왜 두려워하느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는 인정해요. 맞다. 철 병거는 강하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나요? 여호수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강하다 하더라도 당신들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어. 여호수아는 철병거가 강하지만 무찌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쫓아낼 수 있다고 말해요. 왜냐면 여호수아에게 그

승리는 하나님이 이미 그들에게 넘겨 주신 것이었기 때문이죠. 여호수아는 철병거의 강함보다 하나님의 강하심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거구의 그 가나한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 크고 강하다라는 것을 그는 진짜 믿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철병거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강철 병거가 그들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얼마든지 쫓아낼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어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두려워질까요? 왜 여호수아처럼

담대하지 못할까요? 여호수아 우리의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 철병거를 그 문제를 그 문제를 그 철롱성을 내가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여호수아는 그렇지 않았죠. 여호수아는이 땅 주님이 주셨으니 하나님이 싸우실 것이 우린 가서 정복하자라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은 과거에도 말했습니다.이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고 우린 너무 약하고 그래서 우리는 승산이 없다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유다 지파가 지금까지 강에서 승리했나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그

거인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이스라엘이 강했고 가나안 거미들이 약해서이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해불만 했기 때문에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넘겨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었습니다. 여러분 승리의 이유는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그 하나님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거였어요. 그런데 이거를 잊어버렸죠. 그 싸움이 하나님의 싸움이 아니라 나의 싸움이야. 우리의 싸움이야라고 생각하니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볼 때는 싸울 수 있었어요. 근데 눈앞에 철병거를 바라보니까 두려워집니다. 크고 강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내가 믿을 때는 믿음으로 나아갔어요. 그런데 나의 약함과 부족함을 계산하기 시작하니까 뒤로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승리해서 왔다는 것을 망각한 결과죠. 여러분, 은혜를 망각하면 두려움에 빠지고 두려움에 빠진 믿음은 힘을 잃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의 더 안타까운 이야기는이 유다 지파를 시작으로 뒤어서

다른 지파들도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거예요.이 뒤로도 계속해서 나오는 기록들은 각 지파들이 가나안 거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라는 것입니다. 나중에는요. 그들이 강해져도 어 이제는 그들을 충분히 내쫓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어도 그들을 쫓아내지 않아요. 오히려 그들을 부역군으로 부리며 살아가죠. 분명 처음에는 우리가 약해서 쫓아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더 나아져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왜냐면 믿음의 싸움은 처음부터 애초에 크고 강함의 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며 따르고 있느냐의 싸움이었기 때문이죠. 한번 주님에 대한 신뢰를 놓치니까 주님을 따르던 그 걸음에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하니까 나중에는 충분히 힘이 생겨도 쫓아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끝까지 따라가기보다 그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서로 좋은게 좋은 거 아니야. 이들을 부역꾼으로 부리는게 우리 삶의 훨씬 이득이야. 이런 생각들로 결국 합리화를 선택하는 길을 걸어가고 말죠. 어, 이제 오늘의 메시지를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물러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근데이 물러난 한걸음 때문에요. 결국 이들은 수없이 오랜 시간을 괴로움에 빠져 살아가게 됩니다. 쫓아내지 못했던 그 거미들과 함께 우상숭배가 물밀듯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고 심각한 죄에 빠지고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 고통 속에 방황하게 되죠. 사사기는 그들의 방황, 그들이 헤어나지 못하는 그 실패의 링반 대령을 기록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 오늘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의 철 병거는 무엇입니까? 나를 두려워 떨게 하는 그 가나안 거미는 대체 누구입니까? 만약 우리도 그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다면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과 염류로 내 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도 유다 지파처럼 그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합니다. 유다 지파가 철 병과 앞에서 잊어버린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의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오셨다. 그 하나님이 애굽에서 우리를

건져내셨고 그 하나님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게 하셨고 그 하나님이 가나안의 그 수많은 성읍을 무너뜨리게 하셨다라는 것을 그들이 잊어버렸죠.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순간 눈앞에 병거가 하나님보다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 삶에도 똑같이 작용해요. 약속을 잊어버리는 순간 현실이 믿음보다 커지죠. 하나님이 행하셨던 그 일을 망각하는 순간 두려움이 몸집을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내 눈앞에는 철병거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보다 크신 그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 제가 최근에 믿음이 넘어진 자리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그 책에서 읽었던 문장 중에 참 마음에 와닿던 문장이 있었어요. 바로 이것입니다. 함께 읽어 볼까요? 시작. 할 것을 기억하고 할 것을 많은 사람들의 가장 안타까운 문제는 기억해 할 것을 망각하고 도리어 망각해 할 것을 기억하며 사는 거래요. 그래서 괴롭고 그래서 두렵고 불안에 휩싸야 산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저는 그리스도인은 기억할 것을 기억하고 망각할 것을 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저도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의연한 믿음의 사람이고 싶어요. 여러분도 다 그러시죠? 그래서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서 그 땅의 약속의 기뻐을 깊힐고 꽂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해야 해요. 그분의 약속, 보이지 않지만 일하고 계시는 그분의 성실,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어,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떤 은혜를 망각하고 계십니까? 그 만각의 주머니에서 여러분에게 주어진 그 은혜를 그 신실한 약속을 그 소망을 다시 꺼내십시오. 내가 이미 너에게 주었어라고 말씀하신 그 성를 승리를 꺼내어 기억하십시오. 기억하는 사람만이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멘. Yea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