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오늘은 사사기 7장의 말씀을 가지고 함께 나누려고 하는데요. 아마 여러분이 그래도 비교적 사사기라는 그 책 안에서 어 내가 그래도이 이야기는 조금 안다라고 어 생각하셨을 그런 좀 익숙한 이야기가이 7장에 나옵니다. 어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꽤 자주 많은 순간에 다수에서 또 적은 소수를 어 가리는 추리는 그런 일들이 생기곤 하죠. 저는 청년 공동체를 맡고 있으니까 청년들과 대화를 자주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
전도사님 이번에 제가 자격증 시험을 보는데 몇백명 중에서 몇 명 뽑는데요. 경쟁률이 몇대 며칠래요? 이런 이야기들을 참 많이 듣는 거 같아요. 또 우리가 자주 즐겨보는 어떤 오디션 프로나 또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죠. 수천 명 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 지원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 많은 다수 중에 그 많은 군중들 중에서 우리가 뽑는 것은 고작 소수의 몇 명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는 뛰어난 사람들,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을
남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떨어뜨리는 일이 익숙하죠. 게다가 그 일이 만약 중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더더욱 출중한 사람들을 어 찾아서 뽑으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오디션 프로그램 요즘 상금이 많이 올랐는데 막 1억씩 걸려 있으면 어떤가요? 그냥 아무나 뽑지 않죠. 아주 디테일한 요소까지 평가하고 뭐 탈락시키고 이렇게 해서 뭐 최후의 3인, 최후의 1인 이렇게 가려내지 않습니까? 마치 이런 것과 비슷한 거 같습니다. 어 그런데 여러분 만약 상금이 1억 정도가
아니라 나의 생사가 달렸다면 어떨까요? 내 가족들의 안이와 목숨이 달린 일이라면 우리는 어떨까요? 만약 그런 일이라면 우리는 더도 몇밀리 재고 따져서 가장 뛰어난 소수 정에 가장 뛰어난 어떤 한 가지를 남기려고 노력을 할 것입니다. 평범하거나 가능성이 그다지 보이지 않거나 또는 내 기준이 약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이라면 가차 없이 탈락을 시키겠죠. 여러분, 그런데 오늘 사사기 7장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 다른 것 같습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망하다 내가 한 사람들을 에지 않겠다 자이 나를 고서 내가 이기지 말고 살아가라 우리가 방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똑같이 다수해서 소수를 뽑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전략적으로 탁월한 것을 선발하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그런 방법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은 힘을 빼기 위한 비움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힘을 의도적으로 빼기 위해서 소수를 굳이 선택하셨다는 거예요. 그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혹시나 아 우리들이 잘 싸워서 그래. 우리가 힘이 강해서 그래라고 교만할까 봐. 그렇게 자랑할까 봐 하나님은 일부러 그들의 술을 줄여야겠다라고 말씀하시죠. 성경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군대의 수는 약 32,명이었을 것이라고 어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정말 이게 너무 많은 수였을까요? 우리는 32,명이고 상대는 한 3,명 정도 되었을까요? 지금 이들이 상대해야 되는 상대는 미디안 연합군이었어요. 사사기 6장에 보면 그 미디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그들의 수가 셀 수 없을만큼 많았다라고 기록합니다. 미디안이라고 하는 그 사람들만 보더라도 이미 수가해야되기 어려운데 여기에 아말렉 사람들, 사막의 부족들까지 연합한 그런 연합군의 상황이었어요. 성경은 이들의 수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요. 이후에 나오는 8장의 말씀을 어 근거로 추측해 볼 때 이들이 최소 13만 5,명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13만5,000인데 32 어떠신가요? 이스레 수가 너무 많죠? 너무
많나요? 아니에요. 너무 많지 않아요. 여러분, 우리의 편보다 지금 상대의 편이 적어도 10만 명 이상이 더 많은 상황인데 어느 누가 이걸 보고 아, 우리 편아, 힘이 너무 세라고 생각하겠어요. 오히려 너무 많다면 그것은 상대가 너무 많은 거죠. 상대 힘이 너무 세다고 말해야죠.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우리가 너무 많지 않아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딱 한 분 하나님만 반대로 말씀하시는 거야. 아니야. 너희 수가 지금 너무 많아. 그래서 너희가
강해 이겼다고 자랑할까 봐 나는 그게 걱정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하나를 깨달을 수 있죠. 사사기를 포함해서 성경에서 만난 하나님의 계산법이 적어도 우리의 방식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말합니다. 주님 너무 적습니다. 이건 너무 약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 하나님은 말씀하세요. 아니야. 충분해. 이미 크고 강해. 우린 또 말하죠. 주님 이만큼은 되어야겠습니다.이 정도는 있어야 해 볼 만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럴 때 말씀하시는
거예요. 오늘의 말씀처럼 아니야. 너무 많아. 덜어내야 돼. 비워야 돼. 내려놔야 돼. 힘을 빼야 돼라고 말씀을 하시죠. 그렇다면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왜 주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에 늘 이만큼의 차이가 존재하는 걸까요? 이것은 누구를 보고 있느냐의 차이에서 옵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꾸 나를 보는 거 같아요. 나의 문제, 나의 상황, 나의 여건, 나의 능력을 봅니다. 그러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다른 것을 말씀하세요. 제발 너를 보지 말라는 거예요. 눈을
들어 누구를 보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을 봐라. 나를 봐라라고 말씀하세요. 너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좀 봐라. 여러분, 우리가 지난주에도 제가 어이 사사기를 통해서 나눴지만 우리의 신앙은 무엇을 보는가, 누구를 보는가를 계속 점검해야 되는 거 같아요.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요.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었다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같은 상황이지만 다르게 봐요. 다른 걸 본다는 거예요. 제가 누가 있을까 생각을 해
봤는데이 사사기 이전에 나왔던 여호수아와 갈리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린 너무 작습니다. 약해서 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에 비하면 우린 너무 메뚜기 같고 그들의 밥입니다라고 말할 때 여러분 갈렙과 요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보죠. 그랬더니요. 하나님과 같은 말을 해요. 우리는 작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우리는 크고 강하다. 우리는 메뚜기 같지만 이길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전쟁은 주님께 속했으니 우리는 주를 의지하면 이길 수 있다라고 말해요. 믿음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다른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들은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똑같이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우리와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와 보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다른 태도, 다른 마음, 다른 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셨어요. 그들의 시야에 주님이 가득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같은 말씀을 하신다고 생각해요. 나를 제쳐 놓지 마라고 말씀하시죠. 하나님께서 말씀하. 너희가 나를 제쳐 놓을까 봐 걱정하신대요.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제쳐 놓습니다. 여러분 진짜 웃긴 게요. 약하면 약해서 제쳐 놔요. 그리고 걱정하죠. 그런데 또 반대로 강하면 강해서 제쳐 놓습니다. 나는 이만큼 있으니까 괜찮아. 내가 이렇게 잘했으니까이기는 거야라고 스스로 교만하거나 자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제쳐 놓는 순간
우리 안에는 주님이 아닌 것들 나로 가득해지기 때문입니다. 어 사랑하는 예배자 여러분 하나님을 제쳐 놓지 마십시오. 믿음은 그분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처럼 32,000명이었던 그 이스라엘의 군대를 몇 명까지 줄이십니까? 네. 300명까지 줄이십니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 보내셨고 두 번째는 어떻게 물을 마시는지에 따라 사람들을 남기셨죠. 그때 하나님께서 기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번 읽어 볼게요. 시작. 너이 사람이 너와
함께 나갈 사람이라이며 너는 사람을 보하라. 내가도 너에게이 사람을 너와 함께 하자 사라가 이어지며 너는 사람을 구하지 말라. 하나님이 기도원에게 굉장히 단순하게 말씀하세요. 내가이 사람은 함께 가는 사람이야라고 하면 데리고 가고 얘는 아니야라고 하면 두고 가라는 거였어요. 여러분 앞에서도 우리가 어 이야기했지만 하나님은 지금 탁월한 소수 정애를 선발하는게 아니시죠.이 이 300명이 남들보다 더 용맹했다거나 더 특별하거나 탁월해서 뽑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능력이나 그 어떤 기술력도 이들을 뽑는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더 적은 수를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어쩌면 어 더 가망이 없어요. 이게 더 안 될 거 같아요라고 생각하는 그 적은 수를 남기시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다는 것이죠. 그래도 300명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싸워 볼 가능성이 있었던 그 32,000명일
때는 주님께서 미디안을 넘겨 주지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그런데 32,명이 그 13만을 이긴다는 건 여러분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때 넘겨 주셔도 아 이거 우리 힘으로 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법한데 주님은 그때도 너무 많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줄이고 줄이시더니 이제는 정말 누가 봐도 싸우러 가도 될까 싶을 만큼의 수가 남았을 때 턱없이 모자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그제서야 내가 이제 너희의 손에 미디안 사람들을 넘겨 주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여러분
그런데 어 묵상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온이 어떤 사람이죠? 네. 유난히 소극적이고 또 겁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도운이 어 앞에서도 몇 번인 하나님께 하나님 구원의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졸랐었잖아요. 이슬에만 양 어 이슬이 양털 뭉치에만 매치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주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 반대로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믿겠습니다라고 말하죠. 돌다리도 두 번씩이나 두드려보고 건너는 사람인데 300명만 남으니까 얼마나 심장이 콩다콩닭 했겠어요. 하나님이
그런 기도을 아셨죠. 그래서 그에게 승리를 확증시켜 주십니다. 미디안 사람이 자신의 꾼 꿈을 이제 막 친구에게 설명을 하죠.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 꿈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도원에게 미대안을 넘겨 주신다는 꿈이라고 해몽을 해 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도원이 확신을 얻어요. 여러분, 근데 참 아이러니한 장면 아닙니까? 아니 미디한 사람이 스스로를 야 왠지 그 꿈은 하나님이 우리를 기돈에게 넘겨 주시는 꿈인 거 같아라고 말하는게 참 아이러니하잖아요. 그런데 기도이
그 해몽을 듣고 용기를 얻습니다. 그리고 승리를 확신하고 그 300명과 함께 적진으로 쳐들어가죠. 여러분, 그런데 전쟁에 나갈 때 행색도 조금 그렇습니다. 한 손엔 칼을 들고 다른 손엔 창을 들든 방패를 들든 그렇게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렇지 않았어요. 한 손엔 나팔을 들고 다른 손엔 횃불이든 빈 항아리를 들고 나아갑니다. 아니 숫자도 모자른데 무기라도 좀 짱짱해야 될 거 같잖아요. 그런데 무기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아니 나팔과 횃불이라뇨? 이것 가지고 어떻게
싸운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어떻게 합니까? 네. 승리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여러분, 7장을 잘 읽어 보면요.이 전쟁이 승리하기까지 사실 이스라엘이 한게 별로 없어요. 그냥 횃불을 들었고 나팔을 불었고 소리를 지른게 답니다. 주님이 승리하신다라고 외친게 다였어요. 그런데 2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 주님께서 모든 적들이 저희들끼리 칼로 치게 하셨다. 여러분, 이스라엘에겐 칼이 없었지만 하나님에겐 칼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도
칼이 있었죠. 그들을 서로 싸우게 하셔서 이기게 하셨다는 거예요. 주님께서 이번에도 행하시고 이루신 완벽한 승리였죠. 어,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비유심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13만 5,명에 비하면 처음 수도 겨우 고작 32,명이었어요. 그런데 그 수를 줄이고 또 줄여서 겨우 300명만 남기게 하셨죠. 여러분,이 수만 남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그들이 특별해서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명이라도 더 출전시켜야 할 것 같은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을 줄이시고 힘을 비우게 하신 이유가 단 하나였어요. 너희가 나를 제쳐놓고 스스로 승리했다. 자랑할까 봐 돌려보내는 거야라고 말씀하시죠. 여러분, 하나님의이 말씀은 조금만 의역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 나를 제쳐놓지 말아라. 너희가 싸우지만 이것은 나의 싸움이다. 내가 어떻게 행하는지,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너희는 봐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여러분,이 말씀은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니에요. 여러분, 이스라엘도 고작 300명이었지만
나가서 그래도 싸웠어요. 그들이 횃불을 들고 나갔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주님께서 경계하시는게 무엇일까요? 너희의 힘으로, 너희의 방법으로 너희의 생각으로 그것들을 행할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주님의 방법과 주님의 선택을 의지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애초에 가진 것도 별로 없었지만 그 몇 안 되는 것마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어요. 내려놓고 비우고 힘을 빼게끔
하실 때가 있습니다. 대체 주님은 왜 그러실까요? 오늘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과 저는 같은 마음이시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를 제쳐 놓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놓아라. 힘을 빼라. 너의 방법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분께서 내가 이제 일할 테니 내가 이제 싸울 테니 나를 의지하고 나를 바라보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뭐 매번 그러진 않겠지만 어느 날에는 왠지 주님께서 나를 자꾸 코너로 몰아넣으시는 거
같이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막 줄이시는 거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우리는 무력해지고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되나 앞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그런 삶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붙들 수 있는 것은 그때 좌절할 수 없다는 거예요.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힘을 빼시는 것은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그분은
이제 나를 봐. 내가 이제 어떻게 일하는지를 봐라고 하시는 말씀인 줄 믿습니다. 믿음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나를 제쳐두고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대하는 것이죠. 그분께서 어떻게 행하시는지 내가 내 뜻을 꺾고 내 뜻을 제쳐 놓고 그분의 일하심 그분을 의지하며 날아갈 때 그분께서 내 삶에 어떤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지이 싸움에서 그분께서 정말 상상치 못할 그 주님의 방법으로 어떻게 승리하실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보는 것인 줄을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비운다. 힘을 뺀다라는 것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제부터 주님의 방법을 기대합니다.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나를 제쳐놓고 주님을 봅니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믿음의 고백인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