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수요일 날 오신 분들과 함께 오늘 고린도전서 마지막 메시지를 함께 좀 나누려고 합니다. 어 고린도전서를 묵상하면서 또 유익이 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바라기는 어 우리가 묵상을 하다 보면 이렇게 어떤 거를 하다가 끝까지 완주하지 못해도 감사한 것은 묵상 본문이 바뀌잖아요. 네. 그러면 아 혹시 이렇게 지난 거에 대해서는 너무 연행하지 마시고 다시 또 그 안에서 새로 주어진 책과 함께 다 이번에 잘 동행해 보자. 그런 마음으로 나가면 좋을 텐데 그래도
여러분에게 내가 고린도전서를 최대한 이번에 많이 묵상했든 혹은 적게 묵상했던 혹은 이곳에 와서만 내가 고린도전서를 봤든지간에이 메시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마지막 함께 정리하면서 좀 되기고 싶습니다. 우선 고린도라는 지역은 바울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 곳입니다. 아마도 저희가 내년에 성지레 가게 되면 어 적어도 고린도나 에베소 둘 중에 한 곳은 가게 될 거예요. 운 좋으면 둘 다 갈 수도 있고. 예. 그렇습니다. 이곳은 로마 제국 안에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어요. 제가 지금 말한 고린도와 에베소는 각각 2차 선교행, 3차 선교행의 중심지였습니다. 바울이 품은 비전이 뭐냐면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거였어요. 근데 바울에게 있어 땅끝은 어디냐면 로마 제국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는 거였어.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사역은 로마 그 핵심. 어, 로마라는 도시에 가서 로마 제국의 그 중심부의 복음을 전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이스라엘부터 이렇게 바울이 전도하면서 갈 때 본다면 고린도라는 위치는 지금 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역과 그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중간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선교 비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거점으로 그렇게 활용될 수 있는 중간다리 역할한 지역이었습니다. 그까 바울에게는이 고린도 교회가 영적으로 중요한 교회로 잘 성장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1년 반 가량을 고린도에 머으면서이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집중합니다.이는 바울이 선교 여행했던 그 수많은 교회를 세워가는 과정을 보냈던 거예요. 아까 했던 에베소가 제일 많은 시간에 보냈던 곳이고
고린도가 두 번째로 많은 시간에 보냈던 곳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바울이 있는 동안은 좋았지만 바울이 떠난 이후에 고린도교회는 심각한 영적 혼란을 경험해야 돼요. 경험하게 돼요. 분파 싸움도 생기고 그 안에는 뭐 여러 가지 물란한 것들 뭐 성적인 문제 성도들에 간의 다툼 업정 소송 성적 방종 우상재물 예배 안에 무질서 어 부활에 대한 의심까지 굉장히 다양한 것이 터지게 됩니다. 그야말로 교회가 만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종합 선무시처럼 처진 곳이 고린도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이 모든 문제의 근무적 원인은 복음이 작동하지 않는 거라고 봤어요. 하나님의 중심 때문에 잃어버린 것이라고 봤습니다. 여러분 이거 정말 그렇거든요. 내 안에 복음이 작동되지 않고 내 안에 하나님 중심을 잃어버리면 우리도 그때부터는 아는 곳과 내가 살아가는 걸 따로 놓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크게 우리가이 다섯 가지 주제를 고린도교회가 다룬다. 고린도서가 다온다고 했는데 어 그 각각의 문제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 이후에 결국 바울이 얘기한 것은 복음의
중심 복음 중심의 해답을 어 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때 살펴봤지만이 다섯 가지 주제 정도 주제를 차례차례 다루면서이 문제는 어떻게 되는지이 문제 어떻게 되는지 이런 얘기를 바울이 권면합니다. 그리고 16장 오늘 보는 16장은이 편지의 최종 결론입니다. 15장에서 마장 마지막 핵심 주제인 부활에 관한이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으로 중요한 이야기가 다 끝났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 16장이 중요해요. 어 16장은 앞에서 다른 중요한
내용을 다시 우리의 삶으로 적용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진리는 앎에서 시작합니다. 근데 마무리는 어디서 돼야 됩니까? 삶에서 돼야 됩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복음은 나에게 잘 들려지고 이해된 다음에 가슴으로 내려와서 내 어 삶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거기까지 가야 됩니다. 15전까지의 논리적인 이해 바울의 설명 설득이 아무리 중요해도 결국 이것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삶이 되어야 되는 거죠. 그러므로 고린도서가 어 많은 부분에서 교회를
복음으로 교정해 가는 편지였다면 마지막에 있는 16장은 그 복음이 실제 공동체 안에서 각각의 삶 안에서 관계와 섬김, 희생, 사랑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결론입니다. 우리가 오늘 16장을 하나하나 다루면서 한번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번 맨 먼저 16장 앞부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를 보여고 모는 자리라 내가 하늘에 여러분의 지시하과 같이 여러분께 하십시오 첫날에 여러분 주에 따라을 따로게 주십시오 내가 갈 때에 그야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뒤로 가게 되면 그때에 여러분이 한 사람에게 내가 편지를 써주어서 내가 여러분의 성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게하겠습니다. 나도 가는 것이면 그들은 나와 함께 갈 것입니다. 네. 바울이 16장에 대해서 실제적인 얘기를 하면 있어서 가장 먼저 얘기하는게 헌금이에요. 이거 단순히 뭐 돈의 어떤 필요에 대한 얘기를 하는게 아니고 복음은 반드시 삶을 바꾸는데 그 삶의 변화가 가장 먼저 드러난 영역이 바로 물질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기서도
너희가 어 뭔가 수입이 생각되다면 첫날 바로 그것을 떼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사용하도록 하라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저도 헌금을 굉장히 중요시 여깁니다.이 말을 여러분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이 이야기를 아 교회를 운영하는 운영자의 운영을 위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죠. 근데 그렇다면 저는 그 또한 사탄의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적 성장을 간절히 소망하는 목회자로서 또한 저도 하나님 나라를 제가 삶으로 살아나기 위해서 애쓰는
한 명의 성도로서 저는 물질의 주권을 하나님 앞에 두는 그 고백과 그 행위가 매우 중요한 것임을 먼저 제 삶을 통해 느끼고 있고 제가 양육하는 성도를 보면서도 많이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 저의 영원한 스승님이 양용희 교수님이 어 저에게 하나님 나라 혀주시고 또 회심에 대해 밝혀주시면서 회심은 실질적으로 지갑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던 얘기를 저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구름미를 사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깨워진 세상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이 부분이 당연히 믿음의 도전인 걸 알고 있어요. 헌금은 믿음의 도전이에요. 헌금이 쉬운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한번 옆에 물어보세요. 당신은 헌금이 쉽습니까? 물어보세요. 헌금이 쉬운 사람 아무도 없어요. 예. 헌금은 믿음이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은 더 모으라고 말합니다. 그럼 하나님 나라는 나누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헌금은 세상의 가치간에 저항하는 거 저항 운동이에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선택하는 믿음의 행동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럼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내가 세상에 가치가는 그 다스림 아래 살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거죠. 하나님이 나의 공격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한 다음에 그 공동체에게 항상 보면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삶을 갈 때 헌금을 꼭 가르쳐요. 당시 교회는 가정 교회 형태였잖아요. 그러면 교회 운영비가 있을까요? 교회 운영비가 발생할까요? 운영비가 발생한 일이 별로 없어요. 지금처럼 뭐 월세를 내고 뭐 대추 이자를 이런 일 없어요. 근데도 헌금을 가르쳐요.
그래서 바울이 가르쳐 헌금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됐어요. 하나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삶을 드린 사역자들을 지원하라. 이런 목적으로 헌금을 하라고 했고 두 번째는 더 어려운 상황이 있는 교회를 돕는 목적으로 헌금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서 나오지만 어 첫 번째 초대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였잖아요.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에 3,명 5천명 모여서 구제 활동도 하고 이러는 교회였어요. 근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밖에 때문에 다 흩어지고 그러니까 사람 떠나고 그러니까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는 흉년도 들고 사람도 떠나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모교회였는데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되는 교회가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방 교회들 예루살렘 교회에서 흩어진 그 민들레오씨 같은 복음을 받아서 그 복음을 알게 된 너희가 이제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야지라고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방 교회들에게이 일에 동참할 것을 강력하게 가르칩니다. 그래서 실제로 바울이 모금에서 그 모음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요.이를 통해 바울이 말하고 싶은 뭐냐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내어 주는 삶에 실제적으로 동참하는 시적을 행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자기 중적이지 않게 살려면 그걸 나누는 것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듣고 나면 우리는 받는 삶에서 나누는 삶으로 우리의 관점을 전환하기 위한 표대를 갖게 됩니다. 그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바울이 전하는 16장의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부분 좀 긴데요. 한번 두 페이지입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나는 바를서 여러분에게 하겠습니다. 내가 바아를 지나서 여러분에게 하면 함께 지낼 것이고 어쩌면 더 올라가게 될지 수도 모르겠습니다. 그다음에 여러분은 내가 딸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는 지나에 어서를 만나고 합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며 얼마나 여러분과 함께 억을 습니다. 그러나 50절까지는 예절에 겠습니다. 나에게 활짝 열려져서를 많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방해라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를 어려됩니다. 그리고 그다 내게로 돌아올 때에 그를 평안한 마음을 주님께서 보게 해 주십시오. 나는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제와 로에 대하여 말하겠습니다. 내가 그에게 다른 여러분에게 바라고 여러는 승은 한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할 것입니다. 네.이 이 부분은 어 바울이 사역자로서 자신의 삶, 자신의 여정이 공적인 삶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계획과 자기의 동선을 성도들에게 알립니다. 저도 가끔 주보를 보시면 저의 사역 동선을 공유할 때가 이렇게 있잖아요. 그래서 월화는 제가 이번 주에 저는 예성교단 목회자 세미나 갔다 왔고 오늘은 한봉 목회자 모의모 저기도 했고 이런 걸 알리는 이유는 이게 강정규 개인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공적 사역을 감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알아야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 바울도 이렇게 자기의 상황을 공유하고 함께이 여정을
기억해 주고 동참해 주고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거예요. 근데 앞에 보면 9절에 보면 마지막 장에 9절에 보면 바울의 어려움도 느껴지죠.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늘 방해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 백성 답게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에도 방해가 있을 거예요. 오늘 내가 아침에 묵상을 하고 아 나 오늘 정말 이렇게 살아야지라고 했을 때 방해를 만났을 확률이 꽤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가 살아가는 것을 세상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이제 여기
보면 디모데 얘기를 하죠. 고린도전서를 들고이 판지를 들고 가는 사람이 디모데예요. 그에 대한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디모데. 디모데는 연소했기 때문에 혹시 사람들이 디모데를 없신가 봐이 사람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임을 동영학자로서 환대해 주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볼로에 관한 이야기도 꺼냅니다. 왜냐면 앞에 보면 아볼로파에 대한 얘기 나왔잖아요. 누구는 바울파, 누구는 개바파, 베드로자 개바파, 누구는 아볼로파 이렇게 얘기했잖아요.
그러니까이 모든이 16장은 첫 번째 문제였던 분파 분쟁 문제를 회수하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은 자꾸 바울파, 아볼로파 나누지만 나와 아볼로가 경쟁자가 아니라 동영자로서 함께 하고 있다. 이곳에 모인 우리도 그래야 되겠죠. 내가 교회에서 동역하다가 누군가를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발견하면 즉시 회개하셔야 돼요. 분열은 사탄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동역하는 것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고 가장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3절
14절 이어 두 절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있으십시오 하십시오 힘내십시오를 사랑하십시오. 네.이 부분은이 편지 전체를 압축하는 핵심 메시지를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하는 거예요. 너희가 지금 해야 될 거는 깨워서 믿음에 서라는 것. 그리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믿음이 흔들렸어요. 우리가 복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아까도 믿음이 흔들렸기 때문이에요. 믿고 있는데 못 사는 거예요. 그럼 복음이 작동하지 않는 거죠. 진리를 알고 있지만 타협했습니다. 서로를
무너뜨렸습니다. 진리와 사랑 이것이 고린도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축이에요. 진리로 행하고 알았으면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고 사랑으로 행해라. 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두 축이 되어야 단어가 진리를 내가 지켜내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다시 압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원합니다. 여러분이 아는 거와 같이 세나의 가는 아가에서 창을들의 몸과 같이 하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도 사람들에게도
불과하며 함께 수도하는 각자에게 선포하십시오. 나는 세로나와 아가운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만나지 못해서 하시는이 사람들이 처졌기 때문입니다.이 사람들은 나의 마음과 여러분의 마음에기를 보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람들을 알아어야 합니다. 네. 바울은 여기서 스테바나라는 가정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믿음의 동역자이죠.이 이 사람이이 교회의 첫 번째 회심자였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도이 가정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섬기 일에 가장 본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근데 스테바나에게만 순종하라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라라고 말합니다. 스바나뿐 아니라 교회 안에 이런 성도 리더들이 있는 거예요. 왜냐면 바울은 복음 전하고 지금 떠나 있잖아요. 바울이 떠나 있다고 해서 바울이 없지만이 교회 안에서 이렇게 사랑의 수고를 다하고 섬기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자들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들 다 복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영혼의 소중함은 모두 같아요. 그러나 영적인 질서라 것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 안에서도 있습니다. 성도 안에서도 순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세훈형제님과 은진 자매님의 관계가 좀 재밌어요. 왜냐면 은진 자매님이 청소년부에서는 세운형제님의 영적 권위 아래 세훈영제에게 순종해야죠. 근데 에클레시아로 가면 네. 새운 형제가 은진 자매님에게 순종해야죠. 그렇죠? 네. 그런 어떻게 권위에 따라서 우리가 함께 성도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순종하고 따르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이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하죠. 우리는 직분 흔히만 우리에 있는 일반적인 권위 구조를 사용하지 않아요. 또한 목회자가 모든 걸 담당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어떤 부분에 책임 사역자가 되어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에게 그런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이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에 혹시 책임을 갖는 분들은 더욱 또한 섬겨 주십시오. 더욱더 본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우리 공동체 안에 교회 안에 내가 보고 따라갈 사람이 있는 교회예요. 아, 내가 저 사람 보니까 참
저 사람 담고 싶다. 저 사람이 저런 모습을 배우고 싶다. 아, 저 사람처럼 신앙생활하면 되겠구나라는 신뢰감을 가질 수 있는 존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 주님께서 나에게 맡기셨다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고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굴림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그리고 섬김은 여기 15절에 나오는 것처럼 몸을 바친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위해서 내 몸을 바친 그렇게 사용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또한 서로를 그런 자들을 힘써 격려하고 함께 세워져 가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 부분 이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이어서 읽겠습니다. 시작에 있는 교회들이 여러분에게 합니다. 아라와 모는 교회가 다 함께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합니다. 모든 문제 여러분에게 합니다. 더욱 인사하십시오. 바울로 인사하습니다 우리 주님을 상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바라다 우리 주님시오 주 예수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니다라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아멘네이 마지막 문화 인사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자신들의 문제 안에 갇혀 있지만 바울은 그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너희도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어요. 교회는 고립된 공동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에클레시아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에클레시아는 얘기를 사실은 한 명에게도 쓸 수 있어요. 상기령제도 에클레시아로 삶을 살아갑니다. 모여서 우리가 에클레시아 소그룹을 합니다. 교회도 조금 더 큰 우리 연합
에클레시아입니다. 끝입니까? 아니죠. 우린 더 우주적이고 더 큰 하나님의 교회들 안에 또 모여 있기 때문에 우리 형제 교회들 섬기고 우리 연약한 교회 이끌어주고 우리가 배울 점 있는 교회를 따라가고 그렇게 하면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19절에 있는 그 집에 모이는 교회라는 곳은 우리가 지금 클래 하는 것처럼 가정에서 모이는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다라는 것이 바울의 교회로인 거죠.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사랑으로 끝납니다. 바울도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때로는 마음 아프게 하고 아 이렇게 하지만 그래도 사랑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사기 교회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네. 함께 또 서로에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랑합니다라고 그 한번 옆에 있는 분들에게 한번 고백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이제 오늘 메시지를에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바울은 마지막 장에서 신학을 이야기하지 않죠. 오히려 헌금을 얘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왜냐면 복음은 결국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 뭐 이렇게 이게 뭐다 뭐다 뭐다라는 것 중요하지만 결국은 내가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여기 제일 많이 나온 것은 사람의 이름이었죠. 디모데, 아볼로, 스테바나, 브리스길라와 아골라 등 수많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읽으면 우리는 어 문제 있는 교회 분쟁만 기억합니다. 근데 바울은 마지막에 문제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어떤 특정한 건물이나
프로그램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 제가 다양한 교단에 많은 목회자들을 어, 만나게 되는 역할을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만나는 목회자들의 상당수는 사실 지금 성도들이 전혀 늘지 않은 채로 몇 년의 목회를 하고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 근데 제가 그분들과 만나서 같이 얘기 나누고 또 우리가 함께 고백하는 뭐냐면 어, 만약에 내가 목회하는 교회가 성도가 늘지 않으면 목회에 실패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왜냐면 사람을 세우는
것이 목회기 때문에 그래요. 어 우리가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서 이하는 사람이 복음을 변화되는 것도 필요하죠.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뭐냐면 지금 우리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성숙해지는 거예요. 사람이 아무리 늘어나고 있어도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복음으로 성숙해지고 성장하고 있지 못하면 그거 교회가 세워지는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 비대해지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우리에게 맡겨진 어이 시대의 교회들 안에 저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될 것이 정말 우리 안에 있는 한 영혼 한 영혼이이 교회 공동체와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섬김과 공동체의 어떤 사랑을 통해서 함께 세워져 가는가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또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 거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바라고 있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음이 작동되는 거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에 있습니다. 바울이 부활까지 15장 부활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를음
할 것인가? 우리 교회에는 감사하게도 이번 지난주에 세가족 환영에도 한 것처럼 영혼들을 하나님께서 보내 주셔서 계속해서 규모도 커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도 고백하는 것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는 여러분들이 복음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이 늘어나는게 아니에요. 사람이 성숙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숙함의 실적인 모습은 더욱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로 여기서도 밖에서도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이곳에 있는 우리 수요 기도회에도 이렇게 나와서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 저는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 고린전서가 우리에게 주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들었던 진리가 그냥 어떤 이론으로 남아 있는 것이나 우리 삶의 곳곳에 스며들고 적용되어서 어디서나 하나님의 나라를 정말 삶으로 드러내고 이곳에서도 밖에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