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고린도전서의 핵심 메시지

2026-06-03 (올린 날짜) · 고린도전서 1장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반갑습니다. 올해부터 우리 교회 수요일에 묵상 기도회와 깊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작년에 있는 우리가 금요 기도를 격주로 드렸다면 이번에 기본적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월 1회는 깊은 예배라고 해서 조금 더 깊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다른 주간에는 묵상 기도회로 우리 메인 성경 말씀에 따라서 비교에서 짧은 말씀 묵상 설교와 또한 기도의 형식으로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서는 묵상 기도는 이렇게 영상 예배로

대체될 수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공사 관련된 공지는 다른 채널을 통해서 말씀해 드렸으니 이제 묵상 설교에 대해서 함께이 시간에 집중해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저희가 6월에 만나게 된 본문은 고린도전서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교회는 어 개척후 9년 정도 사이에 그중 7년을 매일 성경으로 설교를 하면서 성경 66권을 모두 본문으로 설교를 다뤘습니다. 고래도 전서는 2020년 6월에 네편의 시리즈 설교로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물론 설교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늘 성장을 합니다. 아, 그래서 2020년보다 아마 2026년에 제가 다루게 되는 것이 조금 더 아, 저의 깊어진 부분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020년에 다뤘던 본문 해석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기회 되시면 그네 편의 설교를 만약에 한번 참고하시면 고린도전서를 묵상해 나갈 때 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본격적인 말씀 묵상에 앞서서 우리가 앞으로 함께 묵상해 나가는 혹은 이미 하고 있지만 남겨지기 많이 있으니까이 고린도전서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고 바울이 왜이 편지를 썼는지 그 맥락을 한번 먼저 짚어 보고 싶습니다. 우선 고린도전서는 바울 서신이죠. 바울이 쓴 편지라 얘긴데 바울이 쓴이 편지들에는 한 가지 명확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 그것은 그냥 심심해서 쓴 편지는 단 한 통도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먼 거리로 편지를 쓰고 그것 사람을 통해 전단한 것은 엄청난 시간과 재정 그리고 목숨을 건 헌신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한 교회에 정착한 목회자가 아니라 교회를 개척하면 거기서 목양을

한 이후에 이제 때가 되며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순해 그런 개척자였습니다. 자신이 몸은 떠나 있지만 자신이 세웠던 교회, 개척했던 교회, 그곳의 영적인 자녀의 성도인 그들을 먼곳에서도 목양적으로 돕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최고의 방식이 바로 편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즉 서신 목회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러분과도 마주할 수 없지만 영상으로 이렇게 함께하고 있는 것처럼 그 당시에 시대의 상활 맞는 방식을 취했던 거죠.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내가 로마 지국에 복음을 전할까 할 때 그냥 느낌대로 가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굉장히 전략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무데나 교회를 개척한게 아니었고요.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지역을 타게팅해서 도시를 선정하고 그곳에 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왜냐면 고린도는 일단 거대한 한구 도시였어요. 상업이 극도로 발달했고 재정이 풍부했습니다. 또한 문화가 어 굉장히 이런 많은 교류가 있는 곳이죠. 한국 도시니까

종교도 다양했습니다. 온갖 문화와 그리스 로마의 신전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유흥과 향락에 있던 그런 도시였습니다.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매우 타락해 있던 그런 도시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찌 보면 복음이 가장 뿌리내리기 힘든 적한 토양이지만 반대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복음이 제대로 들어가게 한다면이 여기 통해서 복음이 사방으로 흩어서 흘러갈 수 있는 교통의 허부와 같은 곳이 고린도였습니다.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리스 지역에 복음을 전했고 3차 선교 여행 때는 터키 지역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희가 내년에 이쪽 지역을 선교 탐방을 하려고 하는데 그때 이제 그리스터키를 함께 가거나 둘 중에 한 지역을 갈 예정이에요. 2차 선교 여행이었던 그리스 지역에 복음을 전할 때이 지역에 전할 때도 가장 중심이 될 도시를 하나 정했는데 그게 고린도였고요. 3차는 터키의 지역에서 에베소였습니다. 그니까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 교회가 바울의 이방

선교 사역에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이 2차 선교행 중에 2차 선교행이 3년 정도 되나 보는데 그 중에 고린도에서만 1년 반 이상을 머물렀습니다. 그렇게 고린도교를 세우는데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바울은 이제 그곳에 회심만 자들이 나오고 목양에서 어느 정도 성도를 돌볼 수 있는 리더들이 세워지니까 이제 그들에게 목양을 맡기고 다른 도시로 교회를 또 개척하러 떠난 것입니다. 그렇게 이제 목회자가 자리를 비우고 특별히 개척 목회자가

자리를 비우고 이제 그 리더십이 전환되는 그 공백의시기 이때가 위기죠. 고린도교회 안에 골만 있던 온갖 문제와 갈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이것은 고린도 교회 문제가 아니라 사실상 초대교회가 모든 교회들이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 왜냐면 초대교회는 대부분 어떤 목회자가 개척한 다음에 어느 정도 시간이 떠나고 리더십이 교체되는 그런 상황을 많이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또한이 고린도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또한 부자와 가난한 자 노예와 자유인이

한대 섞여 있어요. 그러니까 문화적 계층적으로 조금만 어떤 이슈가 생기면 갈라지기 쉬운 것입니다. 분파 싸움 또이 안에 근친 상관 성도 간의 세상 법종 소송 또한 성적인 방족의 문제 우상 재물에 대한 문제 예배 안에서의 무죄에 있어 심지어 부활을 의심하는 신학적 논쟁까지 그야말로 교회가 만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종합 선물 세트처럼 터진 것이 고린도교회의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에베소에 있으면서이 기가 막힌 소식을 듣게 된 바울은 본인이 당장 달려갈 수 없는이 상황에서

그냥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 팬을 들어서 아주 적극적으로 일을 도와주기 위해서 목양하기 위해서 편지를 씁니다. 고린도서 5장 9절을 보면이 고린도서 쓰기 전에 이미 먼저 쓴 편지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아, 그리고 두 번째 편지가이 고린도전서였던 것입니다. 실질적인 대안과 또한 자기의 목회적 어떤 어 그런 권면을 담아서 이것을 또한 자기가 가장 아끼는 아들인 영적 아들인 디모데의 손에 들려 보내게 됩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말로 주목해야 할 제가 봤을 때 여러분이 고린도서를 읽으면서 꼭 놓치지 말아야 돼 위대한 목회적 지혜가 여기 하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 터진 수많은 문제들을 마주할 때 이것에 대해서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렇게지 않았어요. 하나하나를 야 이거 이렇게 풀어야 돼. 이거 이렇게 풀어야 돼. 야 너희 싸우지 말고 중간에서 타협해. 예배 시간에 대해서 이거 이렇게 해. 이런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목양은

그러한 하나하나에 대한 해결책을 말해 주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바울은이 문제를 꿰뚫어봐요.이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이 하나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에 대한 성도들의 오해 때문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도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보다 앞서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을 너희 모두가 다시 한번 새기면서 그 안에서 복음의 은혜를 입은 너희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서는 다섯 가지 정도의

주제를 다루게 되는데 모두 문제 제기 너희 안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거에 대한 해답을 주는데 복음 중심의 해답을 줍니다. 여러분, 이것이 굉장히 중요할 거예요. 여러분들도 나의 문제나 앞으로 누군가의 문제를 다룰 때 그것에 대해 집중하면 해결 못 할 겁니다. 해결하지만 또 다른 갈등이 번져 나가고요. 결국은 어려움에 봉착할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먼저이 다섯 가지 문제가 뭔지를 설명해

보면 1장부터 4장은 교회 분열 문제예요. 이거는 흔히 말해서 난 누구의 라인이다 이런 라인을 타는 문제입니다. 5장부터 7장은 성적인 타락과 몸의 가치에 대한 거예요. 몸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니까 이거에 대해서 사람들이 혼돈 속에 그것이 삶에 영향을 준다는 거죠. 어떻게 내 몸을 써야 될지. 8장부터 10장은 우상에게 받쳐진 고기의 문젠인데요. 이거는 즉 우리가 권리를 우선시켜 할 것인가? 공동체적 사랑을 우선시 할 것인가? 어쩌면 권리와 이웃의 사랑에 대한

문제를 이걸 통해 다루고 있습니다. 즉 내가 이걸 할 때 어떤 의미에서 해도 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안 하는게 좋고 이런 얘기예요. 11장부터 14장은 예배에 대한 겁니다. 공동체 예배를 할 때 각자 예배 스타일이 있는데 그것에 막 이렇게 펼쳐 놓는게 꼭 지혜로운 것인가? 공동체 예배를 위한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15장은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들는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왜 부활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어요.이 다섯 가지 문제가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바울이 다루고 싶었던 문제다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도 교회 생활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를 만나게 되잖아요. 뭐 누가 누구와 다un고 요즘에 사이가 멀어졌고 누구는 지금 팀 사역하는데 어려움을 갖고 있고 누구는 자기의 뭐 영적 리더십 영적 목자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고 또 교회 안에서 이성 교재 문제 또 가정 안에 있는 여러 가지 각각의 개인적인 문제들 또 예배에 대한 서로의 의견 충돌 신학의 차이 등등 진짜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현실적인

고민을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직면하곤 합니다. 근데 그때마다 우리도 자칫 잘못하면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위한 인간적인 해결책에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이이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전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우리의 신앙 기초 즉 내가 진짜 복음을 통과했는가? 내가 진짜 회심한 그리스도인이 맞는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이 정말 복음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정말 회심한 그리스도인이라면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갈 것인가 이런 지문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왜냐 기초가 바로 서지 않으면 교회의 문제를 다룰 때도 우리는 세상의 방식과 같은 것으로 집중해서 다가서게 됩니다. 그러면 안 풀려요. 그리고 말 잘하는 이들에게 휘둘리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진짜 문제는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거예요. 말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실제 삶의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 시대에 그 세상에 어쩌면 타락한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면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우리도 나의 삶의 문제, 그리스도인로서 내가 이제 그 문제를 이전과 다르게 대할 수 있는 법을 배워 가야 됩니다. 그것이 교회가 할 수 있는 겁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바울은 그렇게 도전합니다. 너희가 입으로만 믿지 말고 너희가 믿고 있는 그 복음의 렌제를 끼고 너희가 너희의 돈을 어떻게 쓸지 너희 몸을 어떻게 쓸지 너희 시간을 어떻게 쓸지 너희 인간 관계를 어떻게 할지 너희가 예배를 공동체를

사역을 어떻게 할지를 바라봐야 한다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죽어서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한 미래의 어떤 티켓이 아니라고 말하잖아요. 오늘날 우리의 삶에 대한 거예요. 오늘 사는 우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나되게 할 수 있는지 또 나의 몸을 세상로부터 어떻게 거룩하게 지켜낼 수 있는지 내 권리보다 어떻게 더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 실제적인 답을 우리가 찾고 찾을 수도는 그 힘이 그 공급할 수 있는 그 힘의 근원이 복음과 성경에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를 바꿔주는 현적의 능력이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전 거기까지 가야지 우리가 그리스도인 다음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6월 달에이 고린도서 묵상하시면서 2,년 전 고린도교회 모습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고민을 다시 발견하고 바울이 선포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을 지금 나가 직면하고 있는 어떤 문제를 새롭게 해석하고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네.이어서

짜잔. 예.이어서 이어서 우리 오늘 고린전서 전체 내용을 살펴본으로 끝낼 수 없으니까 잠시만 1장에 대한 묵상 메시지를 전이어서 전하고 싶습니다. 바울이이 편지 통해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문제는 교회의 분열입니다. 이것이 편지다 보니까 앞에 1장 1절부터 9절까지는 인산말이에요. 근데 요게 중요합니다.이 인산말이 그냥 하는 말이나 여기서 이미 바울은이 모든 문제에 대한 근원을 얘기하고 있어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부르심 입은 교회와 성도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가 정체성 잊어버리면 너희는 똑같이 세상과 같이이 문제를 대할 거야.이 얘기 때문이에요. 바울 자신도 내가 사도가 된 근거 또한 우리가 교회가 된 근거를 여기서 말하고 있다는 말이죠. 왜냐면 우리가 다루 이야기가 앞으로 심각한 이야기예요. 고린전서 자체가. 그러나이 이야기를 우리가 다룰 수 있는 이유도 우리가이 정체성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다뤄야 돼요. 왜냐? 우리 교회니까. 우린 그리스도인이니까. 이것이 우리가 세상과 다른 이유입니다. 바울이이

편지를 받는 대상을 2절에 뭐라 표현하냐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지금 너희라고 말하는 거예요. 너희가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이 문제를 대해야지 아 그냥 세상과 똑같이 문제를 대하면 풀리지 않는다는 거죠. 지금의 이들의 모습은 사실 바울 입장 보면 지적할 것 투성입니다. 너무 답답해요. 그런데 바울은 사실은이 편지 쓰면서 기대합니다. 왜냐면 이들을 바꾸는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이것이 바울이 바라보이는 성도의 정책성입니다. 이게 여러분의 정체성이에요. 복음을 만났다는 것이이 사람이 지금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바로 말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보면 상처받아요. 그런데 사실 상처받을 것도 없는 말 없죠. 왜냐면 우리가 자꾸 그렇게 상처받는 이유는 나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기 때문이에요. 뭐냐면 다른 사람 볼 때

야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사람은 왜 저래? 근데이 이야기가 사실 자기에게 적용하면 더 잘하요. 나는 그리스도라면서 왜 이럴까? 근데 나는 너무 내가 잘 이해해요. 나는 아직 약해. 근데 다른 사람은 안 돼. 저러면 우리가 그래 상처받는 거예요. 나도 상대방도 똑같습니다. 변화되어 가는 과정에 초대받은 거예요. 바울이 뭐라고 말하는 거냐면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고자 그런 이유 갖고 부르신 것이 교회라는 것이라. 거룩하게 다 되었기 때문에 너인 교회가 아니라 거룩하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교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붙잡은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도들을 바라볼 때 모든 근원은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잘 붙들고 있는지 여기에 달려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붙잡았는데이 사람도 하나님 붙잡고 있으면 하나님이 인도하신 방향으로 갈 겁니다. 우리는 이게 끊어져 있으면 이것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내가이 사람을 붙들어서이 사람을

착하게 만들 수 없어요. 내가 누구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린 뭘 할 수 있는 거냐면 누군가 예수님을 놓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다시 예수님 붙잡을 수 있도록 이걸 도와줄 수 있어요. 이게 우리가 해야 될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할 수 있는게 있어요. 그 뭐냐면이 사람이 예수님을 붙들었어요. 예수님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근데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 모를 수 있어요. 그 방식을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를 모르고는 사람에게 우리가

먼저 그렇게 살아가 살아가기 시작한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거죠. 저 그게 우리 역할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 붙들지 않은 사람을 붙들릴 수 있 도와주는 것과 붙들려서 예수님을 따라 살고 싶은 사람에게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공동체 그게 교회입니다. 다른 거 우리 못 합니다. 1장 9절 이렇게 말하죠.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혹시 지금 성경이 관 있으면 찾아보세요. 1장 9절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바울이 바라보는 기대의 명확한 주체가 여기 나와요. 누굽니까? 하나님이죠. 사람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좀 더 쉽게 말하면 야 우리 같이 모자한 사람들도 부르셔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 참 위대하다. 이런 이야기예요. 그리고 다루는 본론이 교회 안에 있는네 개의 파벌입니다. 고린도교회는네 개의 파벌이 있었대요. 하나는 바울파, 하나는 아볼로파, 하나는 베드로파,

하나는 그리스도파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아직 우리가 옛사람의 모습 못 보였잖아요. 사람들은 세상에 살아갈 때 본능적으로 누가 유력한 자식을 따지고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려고 해요. 그게 세상에 살아가는 방식이니까요. 바울이 교회 안에서도 그러고 있는 모습 보면서 한탄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람 중심의 모임으로 똑같이 대하고 풀어가려는 것에 대해서 격분합니다. 이것은 여기 나오는 바울과 아볼로와 베드로가 그렇게 사람들을 모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꾸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지고 편을 만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행하고 있다는 거예요. 고린서 3장 5절 한번 펴보시겠어요? 3장 5절 6절 7절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말씀인데 그런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라. 그냥 사역자라는 거예요. 나는 사역자 중에 한 사람 바울이죠.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을 때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내가 복음을 전했고 아브로가

그 사람이 자라갈 수장할 수 도았다. 그데 자하게 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런즉 심는이나 물 주는이니 나나 아불로는 아무것도 아니데 잘하게 하신이는 하나님뿐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얘기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교회가 우리 교회도 에클레이처로 모이잖아요. 이걸 분열 말하고 있는게 아니에요. 왜냐면 초대 교회들도 누구의 가정에서 모였다는 흔적이 가득해요. 고린도 교회도 여러 가정 교회들, 우리 에클레시아들이 모여 있는 연합체의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우선 고린도 교회 안에 나오는 인원들을 상상해 보면 한 가정에서 모일 수 없습니다. 14장에 보면 그래서 온 교회가 함께 모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그러니까이 가정 교회로 평상시에 있다가 거기는 큰 예배당계 없으니까 어떤 일는 온 교회가 모여 있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이 하나가 있다고 해서 고린도 교회들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존재 방식이 나눠져 있을뿐 하나기 때문에 모두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한 사임의 교회 안에 에클레시아의 모임이 있는

거죠.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분열은 이렇게 모임이 나눠져 있는 소그룹을 말하고 있는 것을 분열이라고 말한 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내가 누구랑 친한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면요. 그것에 자기 정체성으로 삼은 것입니다. 누구를 바라보고 있느냐.이 이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서로 다른 자랑과 기준을 가지고 경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리스도보다 사람을 더 앞세우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해석되고 내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되어야 되는데 난 누구의 제자야? 난 누구의 친구야? 난 누구의 뭐 동생이야? 난 누구의 아내야? 누구의 남편이야? 이렇게 뭔가 좀 유력한 사람을 통해서 내 정체성을 말하는 거야. 우리를 성도로 부른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 정치성을 다른 사람을 통해 확보하려는 것이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근데 이곳은 당시 그리스 문화의 영향입니다. 그리스 문화는 유력한 철학자나 정치가들을 추종하는 문화였어요. 그 기준을 그대로 교회로 가지고 들어와서 교회에서도

교회 안에 좀 유력한 사람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어 따라서 자기를 줄세우게 하고 그 서로의 영향력을 평가하고 야, 너는 바울에게 어, 양육 받았다면 나는 아볼로에게 받았어. 막 이렇게 이제 하고 그것을 자신의 정착성을 삼은 것입니다. 나는 예 우리 교회에서 야, 영양력이 있는 난 누구랑 친해? 난 누구의 애클이야? 난 누구에게 양육받았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예요. 이거 다 의미없고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정성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설명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변화의 중심,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뿐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고린도서 1장 18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가 멸망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꾸 다른 거 갖고 자랑하죠. 다른 거 갖고 자기를 설명하려고 해요. 그러나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십자가 아니면 우리가 성도가 될 수 없었는데요. 십자가 아니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없는데요. 고린도 1장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교회의 중심에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서 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에서 세상의 방식을 따라가려고 하는 나의 습성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또 은연 중에 그렇게 뭐 평가하고 그런 눈으로 다른 사람도 평가하고 이렇게 해서 본인스로 이상한 과치관을 갖고 교회를 바라볼 때도 있어요. 관계를 나누기도 합니다. 누구랑 친한 것을 자랑 삼을

때도 있습니다. 어 그런 모습 자체가 사실은 바울이 지금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그런 상태라는 것을 고린도전서는 고발하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한 사임을 통해서 나의 정체성을 내가 세워가고 그것 안에 집중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쓰는 거 필요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시간을 쓰는 것보다 우선되면 안 돼요. 내가 다른 사람 만나 데는 막 써요. 근데 예배하고

예배 나오는 거 등한시하고 뭐 묵상하고 이런 것 등시하고 난 오직 사람들과 관계성만을 위해서 막 애쓰고 있다면 그거 잘못하고 계신 겁니다. 그렇게 신앙상하면 망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먼저 내 우선 순위가 있어야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거예요. 내 우선 순위가 어디 있는지 점검해 보셔야 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아무 자격이 없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이 정체성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증면한 모든 문제를 우리는

올바르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이 고린도서 메시지고 1장의 메시지입니다. 오늘이 말씀을 이제 정리하고 함께 우리가 좀 기도할 제목을 제가 몇 가지 나눌 테니까요. 함께 예배하는 분들이 있다면 같이 좀 기도해 주시고 기도한 가져 주시고 혼자 예배하는 분도이 기도 제목을 갖고 한번 기도해십시오. 세 가지만 정리해 보면 첫 번째 우리 교회가 세상의 문화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는 단단한 기초 위에 세워지는 건강한 공도세가 되게 해 달라고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두 번째 내 삶의 모든 영역 물질 뭐 건강 인간관계 뭐 가정 등 이것을 내나 내가 내가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복음의 렌즈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나에게 영적인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필요합니다. 세 번째 우리가 수요일만에 드어지는 묵상 기도와 깊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말씀을 통해 말씀 앞에 늘 세워져 가고 말씀을 깨워 기도하는 그런 교회가 또 개개인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이 세 가지 교회를 위해서 나의 삶 분별려고 해서

또 예배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우리 각자 그 가정에서 예배를 마무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