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가 건강하다라는 것을 떠올리며 어떤 것이 떠올리십니까? 한번 잠깐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교회가 건강하다. 어떤 교회가 건강하다. 우리 교회가 건강하다. 어떤 걸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 생각은 성도들이 건강한 거예요. 교회 건강한 거는 성도들이 건강한 거죠. [콧방귀] 한번 우리가 어 뭐 세계의 교회를 한번 예를 들어 봅시다. 50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가 있어요. 그리고 200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가 있고 네. 여기 1천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무엇이 큰 교회입니까? 네. 당연히 천명이 큰 교회입니다. 네. 그것 눈에 보이니까요. 근데 만약에 조금 다른 기준을 가지고 생각해 봅시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실제로 받아들이고 그 뜻에 자기를 맞추고 반응하고 순종하며 살아가려고 애쓰는 성도가 각각 여기는 40명, 여기는 100명, 여기는 한 200명 있다고 생각다. 여러명 중에이 교회는 40명. 여기는 200명 중에 100명. 여긴 1천명 중에 200명. 여전히 숫자로
보면 그 인원도이 세 번째 교회가 가장 많죠. 그러나 그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는 영적 건강성 측면에서는 전 이야기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이 교회가 가장 활발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장 역동성에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이 교회가 가장 끌고 가기 어려울 겁니다. 교회의 건강함은 어떤 눈에 보이는 크기나 어떤 프로그램의 숫자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세워져 있는가? 가정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고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 나가고 교회에서 자기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는 성도가 얼마나 그 교회에 세워져 가고 있는가. 저는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너무 중요한 모습임을 계속해서 배워가고 있습니다.이 이야기를 오늘 말씀의 본문인 이사야서이 시대의 남유다에 대입해 봅시다. 당시에이 세계의 교회와 가장 유사한 곳은 50명 교회였을 거예요. 남유다는 주변에 있는 나라들에 비해서 작고 초라한 나라였어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가뜩이나 남유다
북이스라 합해 봤자 면적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시나요? 강원도보다 조금 커요. 이렇게 또 나눠줬어요. 예. 나눠줬는데 위에가 열지파, 밑에가 두 지파예요. 두 지파가 모여 있는 곳이니까 얼마나이 남유다가 작겠습니까? 그러니까 어 아수르 같은 주변 나라들과 비교하면 유다는 한 50명짜리 공동체처럼 보였을 겁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물으시는 것은 뭐냐면 너희가 얼마나 큰 나라냐 이것이 아니라 너희가 얼마나 내 백성답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늘 중요하게 보는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이 이사야서를 통해서 당시 유다 백성에게 뼈 아프게 지적하는 문제가 어 여러 가지가 등장해요. 바로 그 중에 하나는 형태에 속아 버린 신앙이었어요. 즉 유다 백성에게 뭐가 있다는 거예요? 형태 형식은 있다는 겁니다. 네. 제가 지금이 얘기를 하면서 어 조심스럽게 말씀 싶은 것은 우리의 신앙의 형식이나 형태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사실 실제적으로 목회하다 보면 뭘 느끼냐면 교회 안에서 상당히 위험한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이거라고 생각해요. 마음 없는데 억지로 예배할 거면 예배하지 마. 그렇지 않아요. 실제 보면 아 진실하지 못할 바에는 나는 하지 않겠다라는 마음이 우리의 예배를 무너뜨리고 난 진실하게 사랑하지 못할 거면 사랑하지 않겠어라 하는 생각이 사랑할 기회조차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그렇게 선하지 않거든요. 우리는 마음대로 살다 보면 마음대로 내버려두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풍삼 추척기처럼 신앙의 훈련해 나갈 때 늘 강조하는
원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이거예요.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형태를 갖추고 내용을 채우. 네. 형태를 먼저 갖추고 그리고 내용을 채우는 거예요. 우선은 훈련이란 자리에 나와서 훈련이란 자리에 서서이 훈련 안에 넣어 놓고 그 안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거지. 형태가 없는 그릇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앙도 기초를 세워가는 것도 그렇고 우리의 신앙의 어떤 기본기 세워가는 것도 그렇고 마찬가지예요. 때로는 억지로라도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할 때가 있어요. 여러분 억지로도 책상에 앉아야지 뭐 할 가능성이 생겨요? 공부할 가능성이 생겨요. 야, 너 공부할 마음이 들 때 그때 책상에 앉아. 그러면 얘는 평생 안 앉을 거예요. 여러분, 운동화를 신고 밖에 운동장에 나가야지. 운동할 가능성이라도 생깁니다. 억지로 와도 성경을 펴고 억지로 와도 묵상집을 펴야 합니다. 그것이 형태를 만드는 거예요.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으면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콩나물 어떻게해요? 자라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물이 뿌려지는 자리. 무언가 맛볼을 수 있는 자리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가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생각보다 연약하고 요동치입니다. 아침에 운동 한번 해 보십시오. 오늘 아 운동할까? 내 마음에 이런 마음이 오면 아 오늘은 너무 피곤하니까 아 내일부터 하자. 네. 다음날이 되면 또 다른 이유가 생깁니다. 마음이 몸을 끌고 오게 하려면 매일 협상해야 돼요. 이게 너무 힘들어요. 근데 일단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면 몸이 마음을
끌고 가요. 신앙에도 그런 면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신앙을 생각하다 보면 어 우리 세상에서 하는 얘기처럼 이걸 정말 많이 경험해요. 한번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신앙도 제가 봤을 때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수요일 저녁에 여러분들 각자의 삶이 어땠지 잘 모르겠지만 어 때로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그래도이 자리에 내 몸을 어 가게 하겠다라고
한 거 자체가 전 굉장히 귀한 순종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 마음이 아직 따라오지 않은 분들도이 안에 있을 수 있어요. 근데 몸을 내가 예배 안에 먼저 드리는 거죠. 문제는 이게 1단계라면 이게 건물의 1층을 세우는 거라면 문제는 이게 우리의 신앙의 끝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사야서는 적어도 여기까지 여기까진 되고 있는 사람들한테 하는 얘기예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몸은 하나님 앞에 두었는데 끝끝내 몸만 하나님 앞에 있는 상태에 있는 그런 모습이에요. 형태는
갖추었는데 끝까지 그 형태로만 남아 있는 것이 남유다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한번 어 읽어 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이르시되이 백성이는 나를 가까이 하며는 나를 공경하다. 그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니 그의 나를 사랑의 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라. 네.이 이 말씀이 말하는 것죠. 이들은 예배하지 않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어떤 태도도 있는 거 같습니다. 성전에도 나와서
뭔가 합니다. 몸은 분명히 들여졌어요. 그런데 지금 이사야서가 말하고 있는이 남유된 상태는 이들에게 마음은 아직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아직인지 변질된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네 마음은 어디 있냐? 몸은 예배당에 와 있고 입술로는 찬양을 부르는데 마음은 지금 하나님 앞에 드려지고 있지 않은 것이 대체로 이사서가 고발하는 남유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까 이게 중요해요. 이게 1단계예요. 이거 안 되면 아예 안 됩니다.
근데 이게 됐다고 하더라도이 상태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면 곧 영적 마비가 와요. 계속 거기에만 있다 보면 하나님의 일하심 자체를 기대하지도 못하거나 신뢰하지도 못하는 거예요. 경험하는 것이 없으니까. 그럼 마음이 굳어 버리는 겁니다. 잘못된 습관과 잘못된 태도가 고착화되기도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내 생각이 깨지지 않아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까. 예배를 드려도 내 삶의 계산법이 바뀌지 않습니다. 한 번도 내 삶의 계산을 벗어나 선택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설교를 들면서 그 앞에서 끄덕끄덕하고 말씀 나눔도 하는데 월요일이 되면 한 번도 그렇게 살아가 본 적이 없습니다. 월요일부터는 다시 내 삶의 주인은 나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드리고 듣고 예배를 들어 드려도 내가 말씀을들은 것이 아니고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서 29장 9절 이하에서는 이것을 아주 매섭게 표현 묘사하고 있어요. 말씀이 읽는데 읽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는데 깨닫지 못하고 말씀이 없는 것이 말씀의 자리에 그리 없는게 아니라 말씀 앞에서
무감각해진 모습이 남유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랬을 때 그들의 삶의 결과가 15절이에요. 이렇게 그들이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자기의 여호와이 자는 그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이를 우리를 보를 하니네 이사야 29장 30장의 문명을 따라가다 보면 당시 이제 유다는 아수르라는 거대한 위협 앞에서 있는데 유다의 지도자들이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다 보니까 항상 자신들의 계산으로 모든 것을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이어지는 30장에서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려는 그런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그런 모습이 등장합니다. 아까 얘 이들이 형식이 없는 건 아니에요. 예배하지 않는게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듯해요. 그러나 살길은 자기들이 찾습니다. 이런 거죠. 예배는 예배고 현실은 현실이지. 신앙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내가 판단해야지. 어쩌면 우리에게도이 말이 익숙한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내 자녀의 문제에서는 내가 주인입니다. 돈이나 관계의 문제에서는 내가
주인이에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설령 하나님께 물어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도 결국 내 뜻대로 합니다. 진로와 미래의 문제에서는 내가 주인입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형식도 갖 수 있어요. 그러나 이미 답이 정해진 기도를 하는 거죠. 하나님께 묻고 듣고 따르는 기도가 아니라 주님 제가 이렇게 할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은 도와주셔야 돼요. 내가 결정한 것을 하나님께 허락받는 허락받는다고 해야 될까요? 통보하는 네.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형식으로론 다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바로 그 모습을 꼬집는 것이 16절입니다.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너희의 깨함이 심하다가 어찌 어게 지을 받은 어찌 자기를 지에게 대하여이를 나다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받은 물건이 자기를 지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다음이 없다 하느냐네 지금이 말씀은 앞에 나왔던 토기장이 비를 다시 갖고 온 건데 토기장이와 진흙 아시잖아요 진흙을 비어서 통계장이가 그릇을 만들고 어떤이 진흙의 주권을 소개장 갖고 있는 겁니다. 근데 진흙이 토장 향해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만들지 않았어. 당신 날 잘 몰라. 내가 날 더 잘 알아.이 모습을 지금 기가 막힌 모습 보여주고 있는 거죠.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29장에 나오는이 새 구절의 흐름을 보면 이렇게 흘러가고 있죠. 몸은 하나님 앞에 있는데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멀어집니다. 마음이 멀어지니까 하나님 뜻보다 내 계획과 계산이 중요합니다. 마침내 그러다 보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그런
모습인 거예요. 이게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모습으로 나아갈 때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이 모든이 지금 무엇과 함께 벌어지고 있냐면 예배를 드리는 모습과 함께 이렇게 가고 있다는 거예요. 성전 뜰을 밟고 있는 삶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한번 다같이 우리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면 여러분 제가 처음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건강한 교회란 무엇입니까?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한 성도들이 그 교회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이 문제 핵심이 뭐냐면 나니다. 우리 교회에가 아, 건강한 교회가 돼야 되지이 얘기에 있어서 아, 우리게 건강한 사람이 몇 명이 있나라고 세기 전에 물어할 지문이 뭐냐면 나는 그런 사람인가? 나는 말씀을 들으면서 내 왕과의 생각이 내려놓아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과 내 마음, 내 의지가 충돌할 때 나는 어떤 것에 붙드는가? 누구의 생각을 수정하는가? 나는 정말 중요한 결정을 앞두었을 때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진짜 나아가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또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이미 나의 결정, 나의 계산 이것이 모든 것을 끝내놓고 있는가? 신앙생활은 아까 했듯이 몸을 드리는 데부터 시작합니다. 그럼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되죠. 몸이 드려졌다면 마음이 드여져야 됩니다. 마음이 드려졌다면 모두 드려지면 주도권이 드려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나아갈 때 사실 우리는 이거를 열심히 열심히 내가 따라가 볼 때 한 가지 깊은 절망을 만나게 될 거예요. 내 마음대로 이게 잘 안 된다는 겁니다. 신앙
생활에 내가 10년, 20년, 30년 자동적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아, 내가 진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에 참 부족하고 너무나 악하고 너무나 자기적이고 싫어하는구나. 이거를 깨닫게 될 거예. 머리로는 용서해야지. 근데 안 됩니다. 염려하지 말아야지. 또 염려합니다. 하나님께 맡겨야지.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언제나 기도하는 거 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릴 수 있는 유익은 여러분이 어긋나고 있을 때 그래도 말씀을 통해서
늘 같은 말씀이지만 거기서 내가 다시 깨닫고 다시 깨닫고 다시 깨닫고이 깨달음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내 힘으로 내가 나를 다 컨트롤할 수 있고 내 힘으로 내가 다 나를 이끌고 갈 수 있으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어요. 내 힘대로 다 된다면 기도할 이유도 없을지도 몰라요. 여러분 늘 경험하시잖아요. 내 힘대로 다 되고 있으면 우리 잘 기도하지 않아요. 내 힘대로 안 되는 것이 있을 때 우리 그때 이렇게 평소보다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이게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에요. 근데 오늘 이사야 29장은 바로 이런 얘기를 하다가 바로 뒷부분에 가면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기 시작해요. 앞에 9절부터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했어요. 눈이 감겨 있었습니다. 말씀을 읽어도 읽지 못하는 영적 맹인 거 같았어요. 근데 18절을 보면 이제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십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는 사람이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이 남유다에게 행하실 일이 있다라고 말씀하셔서 이런 일을 말씀하세요. 못
듣던 사람이 듣게 되고 못 보던 사람이 봅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이들이 정말 자훈련해서 이들이 정말 자해서 된 것만 아닙니다. 오히려이 말씀의 주권은 하나님이에요. 하나님께서 여신 것입니다. 27절에는 황폐해진 곳이 기름지밭을 변할 것이고 19절에서는 겸손한 자가 다시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타락한 백성을 향하여 단순히 정신 차려라. 제대로 해라. 말씀하시고 혼내시고 끝내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시 찾아오셔서 그들 안에 일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충 길을 여시고 감긴 눈을 밝히시고 멀어진 마음을 돌이키는 그런 일들을 하실 것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 또한 단순히 아 내가 이렇게 잘못하고 있구나 이게 잘 안 되는구나 주님 이제부터 제가 잘하겠습니다.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거보다 더 주님 제가 이렇게 가야 할 거 아는데 제가 잘 안 됩니다. 주님 저를 다시 한번 빚어 주십시오. 16절에 나왔던 토기 장애와 진흙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문제는 진흙이 토기장애의
자리로 올라가려고 했던 거예요. 어쩌면 신앙생활 또한 내 의지와 내 결단으로 다 하려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이미 교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회복은 무엇입니까? 내가 진흙의 자리로 돌아가서 정말로 정말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제가 다 알지 못합니다. 주님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주님 제 계획보다 당신의 계획이 옳습니다. 그러니 주님 제가 오늘도 저의 삶을 저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니 주님 저를 다시 한번 빚어 주십시오. 저를 다 붙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 붙들고 그 앞에 머무는 것이죠. 사랑 여러분 몸을 하나님 앞에 두십시오. 그리고 몸만 두시는게 아니라 뭘 해야 됩니까? 두 번째 마음을 드립시오. 근데 마음만 드리는게 아니라 내 삶의 운전대 주도권을 드리십시오. 그리고 그것조차 잘 되지 않을 때에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구하십시오. 붙드십시오. 그래서 오늘 우리 기도할 때 주님 제가 다시 주님께 듣게 하십시오.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 내 생각보다
주행을 신뢰하게십시오. 나의 토기장이 된 주님 지흙과 같은 절에 다시 한번 빚어 주십시오. 오늘 밤 우리가 드릴 기도가 이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가 저는 정말로 하나님께서이 시대에 사용하시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이 시대에 건강한 교회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교회로 하나님과 함께이 시대를 충만케 하는 그런 교회로 드려질 수 있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이 시간 누가 드려져야 됩니까? 내가 들어져야 됩니다. 내가 가정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한 사람이 되고 일터에서도 하나님 뜻을 드러내는 한 사람이 되고이 공동체 안에서도 내 생각보다 하나님 뜻을 앞세우는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한살하는 사람이 세워져 갈 때 그렇게 한 살하는 사람이 몸을 드는 거 넘어서 마음을 들린 거 넘어서 주도권 넘어서 내 좋은 존재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의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아갈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가 더 선명해지는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져 갈 것을 믿습니다.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