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하나님의 얼굴을 읽는 자

2026-07-21 (올린 날짜) · 이사야 5장 1~17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제가 뭐 거듭 말씀 제 안에는 이번 사경을 앞두고 왠지 모를 기대감과 왠지 모를 긴장감이 있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긴장감을 점점 기대감으로 바꿔 주고 계셔서 하나님이 이번에 많은 일들을 또 하실 것 같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많이 회복과 체험과 전환을 주실 것 같다라는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기도에 나왔습니다. 우리가이 사경의 기간의 준비 기도에서 이사야서를 보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내용을 우리가 오늘 다룰 내용은 내일 아침에 우리가 묵상분을

만나게 될 본문인데 흐름을 잠깐 쭉 그래도 어 살펴보면 이사야서 1장은 피자마자 강력한 고발을 만나요.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표현이 여기 많이 등장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예배가 싫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그들은 예배를 드리지만 자신을 자신을 메어드리는 예배를 하지 않아요. 예배 행동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그것이 종교적 행위임을 하나님 뻔히 아시는 거예요.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전혀들을 마음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삶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그 뻔뻔한 예배가 싫다라고 말씀하신 장면이죠. 이사야서 2장에서는 외적인 성공에 취하여서 교만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향해서 심판 예언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심판 예언을 보면 여러분 어때서 기분이 좋으신가요? 아니죠. 무거워요. 두렵습니다. 근데 여러분, 어, 저는 요즘에 이런 본문을 볼 때마다 예정과 달리 조금 관점이 달라진 거 같아요. 왜냐면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나를 방치하지 않으신 하나님 사실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청소년들의 비행을 생각해 보세요. 아마도 가장 슬픈 것은 내가 어떤 짓을해도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을 때가 아니겠습니까? 나를 꾸짖어 줄 사람이 없는 거. 저는 제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저를 반드시 꾸짖어 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안전함이에요. 이어진 3장에서도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 계속됩니다. 사람을 붙들고 답을

구하고 얻고자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주신게 아니고 그냥 내가 의지하고 있는 다른 사람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고 다른 것의 마음을 뺏기고 살아가는 유다 백성들 모습을 사치에 빠진 여인의 모습에 빚되어 고발하고 있습니다.이 이 심판의 경고 속에서도 4장은 짧은 말씀이지만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여호와의 싹에 대한 예언입니다.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마음을 아는 거예요. 궁극적인

의지는 그분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애초에 하나님의 목적이 심판에 있으면 경고하지 않으셔도 되잖아요.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것은 심판하시고자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 이렇게 하면 내가 심판할 거야.라고 말하는 거 자체가 구원 의지죠. 그리고 이어지는 5장이 오늘 본문입니다.이 본문은 포도원의 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번 그 시작부를 한번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성전이니 모든게 될 것이며 모든 죄송합니다.

본문이 안 바뀐 거 같아요. 한동하자 한번 체크해 주십시오. 네. 5장 1절 2절. 네. 됐습니까? 네. 한번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시작. 내가 사랑하는게 노래를 그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에서 내 땅을 보고를 하지고 그를 고기에 고기를네 시작은 굉장히 사랑의 노래 같은 분위기로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쓰여진 건데요. 포도원의 주인으로 나타나는이 하나님이이 포도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하셨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기름진 언덕에다가 포도원을

꾸몄고 거기서 돌을 골라내고 아주 품질이 좋은 극상품 포도를 심었습니다. 또한이 포도가 잘 자랄 수 있고 열매 맺게 하기 위해서 망대를 세워서 지키고 포도주를 짜는 것도 만드는 등 하나님께서 포도원 주인으로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주인이 그 열매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어떤 열매가 열렸다고 나와 있습니까? 들포도예요. 근데 여러분이 들포도라는게 확 와닿지 않잖아요. 우린 들포도가 나쁘다는 거를 잘 인식하지 못하니까. 근데 이것은 히브리어

의미나 당시의 문화에 비춰보면 들포도는 어떤 의미냐면 썩은 열매, 악친나는 열매, 기형적인 열매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좋은 포도를 심고 그렇게 다 갖고 불구하고 나온 것은 악취나서 아무 쓸없는 그런 열매를 맺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어서 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와 내가 와이 비유의 상징이 말해주는 것은 지금 포도원 주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배신당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이 포도원 주인이 한 것을 살펴보면 들포도가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만약 결과만 우리가 딱 본다면 아 들포도가 나왔다는 것만 보면 포도원 주인이 뭐 잘못했겠네 뭘 빠뜨렸겠네라고 여길 수 있지만이 비유는 설명하는 이유가 그 가능성을 차단하는 거예요. 정성을 수고 해야 될 걸 다 했지만 결과가 뭐냐면 악치가 나는 열매가 가득해진 포도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이 비율 중에 말하고 싶은 뭐냐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백성되도록 그 모든 과정 우리가 주의 봤듯이 성령께서 그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그의 상응하는 열매가 아니라 악치가 나는 모습으로 응답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포도원 주인은이 포도원을 이제는 해체합니다. 포도원을 외부로부터 지켜주는 보 그 보호하던 울타리를 걷둬 치웁니다. 포도원을 위해서 하던 일을 멈춥니다. 그러자 그곳은 찔레와 가시가 자랍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우리의 삶에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모습을 어 마주하게 하는 것이죠. 7절 말씀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스라엘의에고께서

그 하시다 주님께서는 하 근데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의 핵심이 적어도이 본문에서 뭐냐면 단순히 종교 생활 잘하는 것을 말하지 않아요. 그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은 하나님을 닮은 삶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열매는 하나님을 닮은 삶이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나오는 거예요. 하나님은 정의를 기대해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정의를 행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도 함께 하시고 도우셨으니까요. 근데 우리게 나온 건 뭐냐면 피흘림이에요. 의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억울한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들의 을부지게 들려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배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전혀 담고 드러내지 않는 삶 그것이이 본문이 지적하는 들포도였습니다.이 말씀의 중요한 점은 전제는 뭐냐면 우리에게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셨다 주셨다라는 거예요. 이것이 이들이 단순히 방치되어 있고 단절된 관계 안에 있는 상태라면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돌봄 가운데 있는 포도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그 모습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나님이 더 아픈 건 뭐냐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말씀으로 돌봄 받은 백성이 하나님을 닮아가지 않는 거예요. 이게 더 심각한 일입니다. 남유다가 하나님이 갖꾸시는 포도의 말입니다. 그럼 오늘날 교회가 포도원이 여러분 하나하나가 뭡니까? 하나님이 갖꾸시는 포도나무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열매가 나오고 있습니까?이 말씀은

우리에게이 질문 앞에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은 최고예요.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극상품 포도입니다. 근데 우리에게 맺어지는 것은 제일 포도가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 주님을 의지하며 내가 세상 가운데서 아 이게 하나님 원하시는 거니까 그래 내가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 나 함께 하실 거 믿습니다 하고 믿음으로 믿음으로 한걸음을 걸어갈 때 어두움 가운데서 그 구별된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아 드디어 내가

너희에게 준 그것이 너희 삶을 통과해서 나오고 있구나. 그런데 반대로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지만 나는 여전히 내 삶에서는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은 나에게이 길을 가라고 이렇게 살아보자고 말씀하시지만 무시하고 살아갈 때 하나님은 슬퍼하세요.이 하나님의 얼굴을 느낄 수 있고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영적인 민감성이 있는 거예요. 저는 우리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거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하지

않은 삶의 시작이에요. 내가 나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하나님의 얼굴을 읽을 수 있어야 그로 인해서 하나님이 의식하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보겠다는 변화가 시작될 수 있는 거지 하나님의 얼굴이 의식되지 않는 삶은 변하지 않어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존재감이 있습니까? 그냥 내가 뭘 해도 하나님은 괜찮으실 거야. 괜찮은지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비로운 하나님이 아니라 내게 너무 가벼운 존재입니다. 내게 영향력이 없는 거예요. 5장 8절은 이렇게 이들의 문제를 고발하며

나아갑니다. 이어 읽어 보겠습니다. 가옥에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어떠냐면 여러분 언제나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며 살아요. 이건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원래 다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고 살아요. 근데 우리가 이걸 이렇게 안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기 때문이에요. 얘나 지금이나 하나님 의식하지 않은 사람들은 집과 땅에 대한 욕심이 치열합니다. 여기도 가옥에 가오이 있는데 다 땅에 땅을이어서 빈틈 없이 내 걸 만들려고 해서

홀로 거주하려 한다. 욕심을 말하고 있어요. 여러분 이렇게 살아가는 밑바닥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시란 믿음보다 내가 더 많이 확보해야 안전하다는 불신이 있는 거예요. 11절부터 12절도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하시며를 시과를 그하며 그의를 하네 근데 그 하나님을 의식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 뭔가 자기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는데 요게 디테일은 뭐냐면 면 자기의 자기를 위한 곳에는 너무나 관심이 많습니다. 디테일해요. 나를 위한

잔치에는 수금도 필요하다. 비파도 필요하다. 피도 갖다 놓으려고 그러고 포도주도 갖다 놓으려고 그러고 뭐 하나 없으면 채우려고 하고 내 삶에 이거 없으면 이거 만들려고 하고 나를 위해서는 너무나 열정입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은 적극적이에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가 계신 일에는 관심이 없어요. 내 거는 어떻게든지 하나라도 안 빠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하심이 없어요. 자기의 삶만 보고 있고 온통 자기 생각,

자기 계획뿐입니다. 자신들의 연애를 위한 자기를 위한 모든 곳에는 민감하지만 이거 없으면 안 돼요. 저거 없으면 안 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는 둔감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읽지 못하니까 자기 욕망만 읽어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이게 이사야의 말씀이에요. 어 네가네 삶 챙기려고 그럼 그 네가 책임져. 나네 삶을 책임 안 짓게.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하는 그 삶은 무너지게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롭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의 삶이 정말 하나님 나라 안에, 하나님 통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은 결코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눈앞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무시하며 살아도 하나님은 살아 계심을 존재감을 스스로 나타내십니다.이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거 같지만 날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위한 삶을 선택하고 이렇게 살아왔던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존재감이 있다는 것이 강

강력한 위로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중적으로 살아가던 사람에게는 가장 강력한 경고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땠습니까? 오늘 여러분 상관운데 힘들어도 이게 하나님 원하시는 거니까 내가 내 몸을 쳐서라도 그래 이렇게 해야지 조금 더 그래도 하나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애쓰고 포기하고 살았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나의 보고 있다는 것이 위로일 거 근데 오늘 하루 하나님을 새감맣게 있고 살았던 사람에게는 경고일 겁니다. 여러분에게는이 말씀이 위로이십니까?

아니면 경고이십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에 물으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을 보이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자기 유익을 쫓습니다. 들포드는 여러분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삶이 계속될 때 결국 우리의 삶은 하나님이 기대하신 열매와 다른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 마무리하면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드려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얼굴은 무엇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부디 우리의 삶이 오늘까지 혹시 잘 안 돼도 내일부터이 순간부터 일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깨워진 소속에서 이렇게 한 명 한 명 들어보다가 안타까워다가 딱 시선을 멈추고 어 여기에 내 뜻을 위해서 이렇게 애쓰는 삶이 있네라고 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이 멈추고 미소짓게 하는 그런 삶이 여기 앉아 있는 모두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긴다는 건 뭐냐면 내 계획과 내가 원하는 것으로 우리 삶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내가 정말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하나님의 눈길이 머무는 그런 삶을 내가 살기 위해서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방치되고 포기되는 건 포도원이 아니라 주님이 돌보시고 우리를 통해서 믿음의 우리가 또한 주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그런 삶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