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서 2장의 내용입니다. 어 2장의 내용은요. 어 구체적인 어떤 상황들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1장과 연결해 볼 때 우시아 요담 시대의 그 남유다가 여전히 배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현우 가사님께서이 시기에 대해서 말씀할 때 어이시기 어땠다고 말했죠? 외적으로는 굉장히 좋았다. 쉽게 말해서 전성기였습니다. 전성기. 어, 제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전성기는 언제였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의 삶의 전성기는 언제지? 만약에 지금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굉장히 좋은 것이겠죠. 근데이 질문을 다 받는 순간 느낄 거예요. 내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냐에 따라서 내 전성이가 다르게 익힐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내 신체적 능력의 전성기가 있을 거고 내가 사회적으로 좀 가장 어떻게 보면 성공한 거 같은 전성기가 있을 것이고 혹은 정말 때묻지 않은 즐거움이 가득했던 그런 기준의 전성기가 있을 것이고 혹은 신앙의 풍성함이 어 그 풍성함에
따른 전성기가 있을 겁니다. 어떤 것을 기준에 두고 있냐에 따라서 내 전성기가 다르게 읽히는 것을 경험하실 겁니다.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앞서 말 앞서 말한 이스라엘이 전성기였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그들의 신앙의 전성기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지금 세상의 어떤 성곡이라는 관점에서 지금이 전성기에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성공이라는 관점이 뭐 성공이라는 시절을 보내고 있는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니까이 시절에도 신앙에도 함께 그러한 풍성함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어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본성은 내가 스스로 강해질수록 하나님과 연결이 약해지는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2장의 예언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있어요. 한번 그 말씀을 먼저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전이서 있는 자이 모든 마음 가운데가 될 것이며 다 것이니 모든로 릴 것이다 오는 너희를 다하자라 하나님께서 라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님의을 가르 것 주님께서를 하다 거기 시 나오며 주님의
말씀이 사라 주님께서 사이에 하시고 백성 사이에 발을 해결하신 것이니 그들이 팔서 고서 말할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발을 들고을 하는 것이며 다시는 할 것이다. 네. 아멘. 성경에서 지금이 보여주는 비전은 마지막 날에 대한 비전이에요. 마지막 날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을 성경에서 의미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온전하게 임하여 이제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가득한 나를 의미합니다. 근데 이것을 이제 성경이 보여주는 방식은 우리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야 되니까
그림 언어로 표현합니다. 예서 하나님의 산이 다른 모든 산보다 높아진다. 이런 표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모든 민족이 온 열방에서 하나님께로 몰려든다. 이런 표현을 보여 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자,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통치하시고 그의 통치권으로 모든 사람들이 들어올 것을 보여주는 표현들이죠. 열방이 하나님 옆에 나오는 모습은 여기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마지막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이 너를
통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마지막 날에 대한 성경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또한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통치가 그곳 온 세계를 향해서 펼쳐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온 땅에 충만하다. 온 세계를 다스린다라는 표현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준과 모든 가르침은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이 마지막에 대한이 어 예언 가운데 주목할 것은 칼을 보습으로 만들고 창을
낫으로 만든다는 부분이에요.이 무기와 농기구의 대비인데요. 무기가 농기으로 바뀐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겠습니까? 전쟁이 사라지고 생명을 키우는 세계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치 이사야 다른 부분에서 마지막 날의 그 모습을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평화롭게 지낼 수 있다는 표현처럼 하나님 나라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경쟁과 야육 강식의 어떤 그런 세계가 아니라 그것과 다른 흔히 우리 말하는 평화의 나라 샬롬의 나라고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사야의 2장의
앞부분에 있는이 예언들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줘요. 주님께서 그리고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이거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이 나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이거 최선 다 안 하지 않으면이 나라가 완성되지 않고 이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나님이 이걸 하시겠다고 하면 하시는 겁니다. 저이 나라가 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여러분 믿으십니까? 저 하나님께서 언젠가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하게이 땅에
드러내시는 그 날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 제가 그것을 살아서 볼지 죽었다 부활해서 볼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나라가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루시는 그 나라를 믿고 그 사실을 알고 그래서 그 진리에 입각하여서 살아가고 또 그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인 것이죠. 근데 이게 2장의 앞부분에 있는 내용이라면 6절부터 나오는 이제 이야기들은 이러한 꿈을 가진 하나님의 비전과 역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님은 이런 나라를 꿈꾸시고
이런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데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것과 완전히 반대 있다라는 내용이 6절부터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번 6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주님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습니다. 그들에게는 동방의 미신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블레 사람들처럼 점을 치며 이방 사람의 자손과 손을 잡고 언약을 맺습니다. 네. 세상의 종교,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문화에 빠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여기서 하나님보다 점수를 의지한다라고 말하는데 다른 어떤 미래에
대한 예측에 더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이 점술이 뭐냐라고 이걸 오늘의 언어로 번역해 달라라고 하면 단순히 무속이나 운세만을 좀 가르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 대한 어떤 세상의 전망과 전문가의 예측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그것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내어 주는 태도와 태도도 여기에 해당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해하는 거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만 신뢰하고 하나님을 배제한 채 거기에
너무 얽매어서 불안해하고 무언가 내가 모든 걸 다 해야 될 것 같고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장 7절의 모습도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자는 같다고 네. 아까이 전성기였어요. 지금 돈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의지하는 이대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군사력을 만강 갖고 있습니다. 또한 군사력을 그만큼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를 이끌어가고 이런 것 위에 내가서 있는 신앙이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종종
엑세 사례가 되고 말기 때문에이 문제를 또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8절도이어서 보겠습니다. 시작. 했고이를 하는 것과 하는 것에 네.이 세계가 잘 나가고 있어요. 전성계예요. 근데 결국 이들은이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에 또한 자기들이 굴복해서 얽매어서 살아갑니다. 결국 모든 문제 핵심이 여기 있죠. 우상숭배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세계 안에 자신들이 만들어는 어떤 플랫폼과 자신들이 만드는 어떤 질서와 이런 거 안에서 오히려 그것을 의지하며 그 안에 무릎 꿇고 살아갑니다.이
우상숭배에는 너무 다양한 것이 다 포함되죠. 내 직업과 커리어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관계적으로 어떤 존재 누군가를 의지하는 것도 될 수 있습니다. 혹은 내가 나의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2장은 이런 쭉 보여주고 고발하면서 하나님은 이런 세계를 꿈꾸고 있는데 지금 너희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루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장에 가장 많이 나오는 개념은 높아짐과 낮아짐이에요. 하나님의 산은 높아집니다. 사람들은 자기 산을 높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것을 낮추실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진짜 다루고 싶은 것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고 하나님을 배제한 제사라고 하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여기 나오는 2장의 내용들 돈도 군대도 외교도 우상도 모두 내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믿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하나하나에 개입해서 낮추신다고 말하고 있어요.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면 심판할 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사랑한 너희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거야.
내가 개입할 거야. 여러분 하나님 이대로는 징계하고 심판하세요. 여러분이 자녀를 혼내듯이 그리고 여러분이 자녀 혼내는 것이 자녀가 미워서가 아니듯이 하나님도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징계하고 때로는 빼앗고 정신을 차리도록 일하십니다.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닫게 하고 싶은 것은 22절입니다. 한번 22절 마지막에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없 네. 결국은이 모든 얘기 마지막에 이렇게 끝납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마라.
세상의 것을 의지하지 마라. 여러분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 참 단순한데 어려운 이야기예요. 그런데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합니까? 우리의 인생은 매일 흔들립니다. 왜냐면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 자체가 불안전해요. 내 스스로도 불안전한데 누군가를 내가 품고 살아가기에는 더 없이 우리는 불안전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지하고 있을 때 그 대상도 흔들리고 의지하고 있는 내 삶도 흔들려요. 제가 얼마에 섰던 그 비유에 표현을 하면 사람의 인생이 종이 한
장 같다고 했습니다. 종이 두 장 합쳐 봐야 벽 앞에서 있는 것만큼 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만약에 우리의 인생에 그것 외에는 답이 없다면 모르겠습니다. 근데 우리에게 하나님이 알려주고 싶은 건 뭐냐면 하나님이 있다는 거예요. 너희의 세계에 내가 바꾸고 있다. 너희의 세계에 내가 그 세계 안에 이런 나라를 내가 이루어갈 것이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먼저이 장은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신앙은 뭡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높으시다라는이 사실에 하나님만이 의지하다는이
사실에 내 인생을 거는 거예요. 그러므로 내 눈앞에 있는 현실과 사람들에게 자꾸 빼앗기고 사람들에 의해서 흔들리던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거두어서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고 이장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 명확합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이것을 붙들고 기도할 겁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끝없이 함께 넘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하고 계신데 참여하는 복된 삶을 살겠노라고 우리가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이
말씀 앞에서 혹시 나의 스과 나의 마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무언가 말씀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번 사경을 기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좋은 강사님을 만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선을 다시 주님께로 돌이키시는 그 일에 우리의이 시간과 강사님과 우리 공동체 전체를 사용하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한만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일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번 상황을 통해서 우리가 그 하나님을 더욱 깊이 누리고 그 하나님께
내삶에 뿌리를 두는 수중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함께 축복하며 같이 기도하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