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2026-08-13 (올린 날짜) · 이사야 24장 14~23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어, 오늘 오랜만에 수요 묵상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이사야 24장 말씀. 어, 어제 오늘 본문인데 그중에 오늘 본문에 쫓아져 맞춰서 같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 제가 오늘 묵상방에도 그런 얘기 좀 전에 남겼지만 아, 묵상 공문이 좀 어렵습니다. 네. 어려워서 아 좀 잘 안 들어온다라는 얘기를 어 저랑 가까운 사람도 저에게 많이 할 때가 있습니다. 네. 그래서 어 본문이 어려워요. 이사야 본문이 어려울 때가 있고 어

제가 이제 이거를 언제 느꼈냐면 어 저희가 7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성경 66권을 쭉 설교하지 않았습니까? 제 기억에 몇 번 진짜 설교하기 어려웠던 본문이 있었어요. 근데 그중에서 물론 이사야도 어떤 분은 그랬지만 에스겔 같은 본문이 저 진짜 힘들었거든요. 왜냐면 어 뭐 짧게 지나가던 것도 아니고 48장씩이나 되니까 설교를 여러 번 해야 되는데 너무 낯설고 어려운 것도 많아서 근데 그 과정을 이렇게 아면은 그 안에서도 주신 은혜를 사모함을 나아갔을 때 또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도 이사야서 24장 말씀에 그런 마음에서 조금 어려웠던 구절도 있었지만 같이 오늘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주일에 잠시 배경 설명을 좀 드렸는데 어 이사야서 13장부터 23장까지는 열방에 대한 심판 메시지가 기록됩니다. 인상적인 것은이 열방에 유다를 뺀 나머지가 아니라 유다를 포함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24장이이 뒤에 이어지는데 24장에 들어오면 갑자기 이제 특정 국가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후대에서는 후대학자들은이 24장부터 27장을 별도로 구분해서 이사야서 안에 있는 소묵시록이다. 이렇게 부릅니다. 묵시 들어보셨죠? 몫시는 계시록할 때 뭐 비슷한 단어인데 아포칼리스 감춰진 것이 드러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어쩌면 그 미래에 대한 우주적인 어떤 종말론적 전망이 여기에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이사야에서서 하는이 부분은 어떤 특정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실 모든 일에 대한 것을 어 다루는 장면이다.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 우선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이사야는 말하기 원하는가라고 한다면 아주 쉽게 말하면 큰 하나님입니다. 뭐라고요? 예. 크신 하나님이에요. 한 지역, 한 민족을 주관하는 토속신이 아니라 열방을 주관하는 하나님이신데이 24장부터는 우주적 통치를 행하시는 현재와 미래의 그런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24장 앞부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께서 땅을 하시며 하시며 얻으시고 그 주민을 치리니 땅이 온전히 보호하게 되고

전히 허망하게 된다. 여호와께서이 말씀을 하시니라. 네. 이런 부분의 표현에 보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뭐냐면 결국은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거예요. 하나의 주권적 표현이 드러나는 장면이죠. 24장은 매우 중요한 특징인 가운데 하나가 16 번이나 땅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 공허함 이런 표현을 들으면 우리는 어떤 말씀이 떠오르냐면 창조가 떠오르죠. 공허한 땅에서 어 생명과 질서를 세운 것이 창조였으니까요. 그러니까 여기 나타난 것은 어쩌면

창조 세계가 역창조로서 무너지듯한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다시 공허하고 다시 황폐하고 항무하게 되는 것을이 24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하고 기가 제약하고 세상 백성의 높은 자가 제약하며 땅이 또한 그 주인 안에서게 되었으니이는 그들이 율법을 하며 은혜를 어며 영원한 언를 깨뜨렸습니다. 그러므 저주가 땅을 삼겼고 그중에 사는 자들이 정지함을 당하였고 땅의 주민이 사과 자가네 결국 지금이 모든 심판의 근원이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5절이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어 성경에서 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잖아요. 24장이 말하고 있는이 모든 우주적 심판의 원인은 사람이 언약을 파괴한 곳에 있다. 그래서 땅이 더럽혀지고 창조 질서가 무너졌다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 보면 그 결과 땅의 주민이 불탔다. 심판당했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저주와 하나님의 심판에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죠. 선지자는 분명하게 여기서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분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이 심판은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나 빈부격차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나 백성, 상전이나 종 파는 자나 사는 자를 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여 외적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고 모두에게 하나님의 질서와 공의를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6절은 그래서이 심판 이후에 남은 자가 적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남은 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고 어 다시 뒤에서 한 번 더 쭉 얘기하다음에 13절에 다시 한번 남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13절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어 13절 없네요.네 13절 제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들어보세요.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난무 흔든 같고 포두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음 같은 것이니라. 그래서 6절에 남은 자가 나오고 13절에 이제 남은 수학하고 남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심판과 남음이라는 것이 반복되어 드러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14절에서 심판 가운데 여호와를 찬양하는이 남은 자들의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14절부터 16절. 아, 이들이 심판이 있지만 그 안에 남은 자들의 어떤 모습이구나라고 생각하시면서 한번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4절. 네. 지금 네. 네. 됐죠?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소리를 높 것이며 여호와의 위험으로 말미암아 가에서부터 게이니 그러므 여호와를 하며 바다 모든 성에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여다부터 소리가 우리에게 신에게 영광을 하다네 창조 세계가 무너진 거 같은 황폐하게 되고 공허하게 되고 이런 것을 막 보고 있는데

근데 거기서 남은 자들이 보여지고 그 남은 자들이 외치는 모습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심판으로 온 땅이 황폐해진 것처럼 보이는데 어디선가 노래가 이렇게 들리는 거예요. 바다에서도 들리고 동방에서도 들리고 바다 모든 섬에서도 들리고 땅끝에서도 노래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의로오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라는 찬송입니다. 일부 학자들은이 소리를 이방 민족들 땅끝이나 바다섬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방 민족들이 여호와의 의로우심을 깨닫고 부르는 그 노래로 어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즉 이스라엘 안에 심판을 피하여 남은 자뿐만 아니라 온 세상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결국 찬양받게 될 것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니까 우리가 봤던 계시록에서 결국 그 하나님의 마지막 날에 모든 열방이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할 것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지금 심판에 막 바라보면서 그 안에 또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공적 승리와 그것을 찬송하는 사람들인 거예요. 심판이 모든 것을 다 뒤집어 삼키고 있는 거 같이

보여도 그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이 있고 그 찬양이 땅 끝까지 퍼진다라는 그러한 어 이미지입니다. 예언서에 보면 예언서는 지금 잘못한 것들에 대해서 많이 지적하다 보니까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얘기가 아 많이 등장하지만 예언서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곳이 남은 자예요. 그래서 렘런트라고 하죠. 남은 자상입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 치른 다음에 근데 이세벨이 끄덕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두려움에 빠져서 절망하게 되죠.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도 말했던게 남은 자가 있다. 우리 눈에는 악이 가득하고 내가 아무리어도 세상은 안 변하는 거 같고 모든 것이 끝날 거 같고 세상의 기류에 따라가지 않으면 나는 안 될 거 같고 이런 상황에 있지만 그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은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이 이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잘 버트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더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고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따른 자들을 보존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어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이곳에 있는 자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돌보심과 보호하신 보호하심 안에 있는 그 남은 자와 같기를 원합니다.이 이 부분을 미래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심판 지금 어 언생하고 있는 심판 가운데 남아 있는 자들 즉 수많은 시대와 수많은 시대마다 박해와 고난이 있지만 그 안에도 늘 있었던 찬양하기 멈추지 않았던 성도들의 모습으로

그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사야 24장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16절이었어요. 왜냐면 16절은 앞부분은 이렇게 등장하고 갑자기 후반부에 전혀 다른 이미지의 얘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6조 후반부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나는 제사였고 나는 제가 신자들이 신하고 신자들이 네. 갑자기 찬송을 하면서 영광을 놀리세갖고 찬송을 듣던 이사야가 다시 눈앞에 현실을 바라보던 바라보고 그 입에서 갑작스러운 탄식이 커져 나옵니다. 저도 그래서 오늘이 묵상을 하다가이

16절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굉장히 오래 머물러 있었어요. 이사야는 분명 땅 끝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찬송을 듣기도 하고 또 하나님 보여주신 비정관데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또한 현실은 여전히 배신자들은 배신하고 있는 악의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이사야는 영광을 바라보고 있다가 현실을 바라봤을 때 뭐라고 고백하냐면 나는 쇠잔합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이 좋으면 현실을 긍정적으로 다 바라볼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의로우신에게 영광을 일하는 찬양을 듣고 있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바로이어서 나는 쇠잔합니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이 두 고백을 같이 보여주고 있어요. 하나를 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십니다. 여러분 믿으시죠? 근데 나는 힘들 수 있어요. 하나님은 승리하십니다. 믿으시죠? 내 현실은 여전히 난 아플 수도 있습니다. 신앙은이 둘 중에 하나를 부정하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왕이시니까 괜찮나라고 하면서 악의 악과 고통을 내가 외면하는 것도 아니고

배신자들이 지금 판치는구나라고 하면서 절망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현재 악한 모습, 악의 그런 어떤 모습 가운데 탄식하면서도 결국 여호와께서 왕이 되실 것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오늘 이사야서가 가지고 있는 고백의 특징입니다. 그래서이 뒤에 보면 17절부터 20절까지는 여전히 그 악한 모습 거기에 행해진 심판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21절부터 23절까지는 그러나 끝내 승리하실 그분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다시 붙드는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이 모든 것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왕권이기 때문입니다. 21절부터 23절 24장이 부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에서 들를 바라시며 땅에서 땅의를 바라시니 그에게 고가를 것이라 그때 말이하고 가러워하니이는 만에 서상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서 여호와를 실 것이니라. 네. 21절에 보면 높은데 높은 군데라는 칭위가 있고 땅에서 또 땅의 왕들이라는 칭위가 있습니다. 높은 군대가 하늘의 권세를 의미한다면 땅의 이야기는 땅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즉 어 위에 권세나 아래의 권세나 또 앞선 13장부터 23장은 바벨론, 모압 뭐 애굽, 두루 두 것이 있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24장에는 더 넓혀서 땅의 모든 왕이나 높은 곳의 모든 권세도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잊어서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이 23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고라는 것입니다. 아까 했듯이 이사야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크신 하나님이 우주적인 하나님입니다. 이사야서는

이사야가 느끼는 쇠잔함의 감정 속에서도이 진리만큼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23절은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한다고 표현합니다.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온 세상에 비추던면 사람들에게 영광과 우상숭배의 어떤 대상이 되었던 해와 다루차 빛이 잃어버린 것처럼 뭐처럼 보일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지만 그럼에도 이사야는 쇠잔합니다. 그가 보기에 땅도 흔들립니다. 왕들도 무너집니다. 심지어 해활들도

빛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왕이시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 그 모든 걸 끌고 가신다. 이것이 이사야서가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이 신앙이란 것은 신앙의 목표는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사야도 나는 쇠잔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끄덕이 없고 낙심하지 않고 두렵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쇠잔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눈앞에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거 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탄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흔들리냐 흔들리지 않냐 이것보다는 내가 흔들리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인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의 쇠네요. 땅이 흔들리고 왕들 무너지고 해와 달도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늘 변함없이이 곳곳에서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여전하시고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통치하시고 결국에도 통치할

겁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왕이 되시고라는 고백이 거기에 있습니다. 신앙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에 있지 않아요. 어쩌면 세상이 우리에게 늘 요구하는 것은 내가 강해야 돼. 내가 지혜로워야 돼.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관점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여기에서 더 자유로운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흔들리지 않을 만한 대비를 갖고 있는가 이것보다는 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나는 누구를 바라보고 있고 누구와 함께하고 있고 누구를 붙들고 있는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강해서 하나님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붙들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왕이신 것도 아닙니다. 상관없이 내가 세상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왕이십니다. 그러면 땅이 흔들려도 세상이 흔들려도 내 마음이 흔들려도 그 왕이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그분의 통치 아래 내가 아들 머물러 있고 내가 흔들 때마다 더욱더 주를 붙잡고 의지한다면 내가 흔들려도 왕은 흔들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분에 붙들고 이분께 다시 한번 내

삶을 붙들고 걸며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