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화 있을진저

2026-07-22 (올린 날짜) · 이사야 5장 18~30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은 내일 묵상 본문이죠. 우리 5장 18절부터 30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함께 같이 잠깐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제 어 다뤘던 오늘 묵상 본문이었던 5장 앞부분에 대해서는 앞에 포도원의 노래가 나왔던 것을 기억할 겁니다. 오늘 그 배경이 지금 오자 후반부까지 계속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기서이 포도원을 가꾸시는 분이 누구죠? 네. 하나님으로 나오죠. 그리고 포도원이 누굽니까? 그 안에 있는 포도원이 또 포도나무가 누구예요?

예. 유대 백성이고 오늘날 말하면 누굽니까? 네. 납니다. 네. 나예요. 주님께서 오늘날이 교회라는 또 포도원을 갖꾸시고 그 안에 또 여러분을 하나하나 여러분의 극상품 최상품 포도나무로 이렇게 다 모든 것 하셨는데 그리고 이렇게 기대하시는 거죠.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여기로부터 그런 포도나무 열매가 열리길 바라고 있는데 어제 들포도 악취가 가득한 가득한 이런 것들 열린 이야기를 쭉 살펴봤습니다. 분명히 이사야서 5장의 내용들은 전반적으로 봤을 때 사실은 여기에는

가장 많이 강조되는게 뭐냐면화에 대한 거예요. 하나님이 어떻게 화나셨다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께서 어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심판 예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5장 8절부터 23절까지 그 사이에 화 있을진저라는 표현이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 설교에서 나왔던게 두 개였는데 경제적인 탐욕. 가혹과 가혹을 전토와 전토를 계속 욕심내는 그 삶에 대해서 그리고 방탕한 삶 어 술에 빠져 있고 이런 삶에 대해서 화 있을진저라고 외치는 하나님 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18절도 첫 구절이이화에 대한 외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개혁 계정에는 화 있을 진저요. 세 번역에서는 재앙이 닥친다라는 경고로 나와 있는데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아를 당시에 하시다라를 하라 아를 많이 이루시고 하라이 사되네 거짓말로 악을 을 행하고 죄를 수레와 같이 끌어당기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근데이 19절에 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체 뭐 하고 계시냐? 우리가

볼수에게 좀 움직여 보시라고 해보라. 이스라엘을 거룩하신 분이는 그가 대체 뭘 하려는지 알고 싶다. 제가 지금 읽은이 내용이 어 19절에 대한 메시지 성경 권역이에요. 한마디로 하나님 지금 뭐 하시고 계신데? 하나님 악을 심판하는 분이라며 뭐 좀 하는지 보자. 이런 내용이죠. 즉 그들은 죄를 행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도 하나님이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분 혹은 아무것도 하시지 못하는 분이라는 조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풍삼초라는 우리 과정에 다루지만

죄는 나쁜 행동 이전에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예요.이 태도가 무엇이냐 따라서 거기에 걸맞는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은 어떤 행동이 나와요? 하나님을 무시하 무시 무시하는 마음인 사람은 무시하는 행동이 나오는 거죠.이 태도가 행동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순간 하나님도 더해서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죠. 20절도 한번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하고 네. 하나님이 지금 또한 보고 계시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만한 모습은 무엇이냐면 죄의 모습은 선악의 기준을 바꾸고 무너뜨리는 태도입니다. 악을 선하다라고 행동하는 것이 어떤 의미겠습니까? 이런 거죠. 야, 그것이 악하다는 걸 누가 정했어? 그 난 내 마음대로 살 거야. 왜 그걸 함부로 악하다 그래? 내가 선한다고 믿고 살면 되는 거지. 이런 태도예요. 선악의 기준을 자신의 기준대로 삼는 태도는 사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지적하는 죄예요. 오죽하면 첫 번째 죄의 그 모델로 나오는게 선악과입니다. 선악의 기준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무시하고 왜 그걸 하나님 뭐 먹으면 안 되는게 하나님 법이지. 난 내 마음대로 먹을 거야. 이게 첫 번째 죄거든요. 하나님에 대한 불신종과 불신앙과 불신종의 모습이죠. 그런데 더나가 지금 이사 고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죄를 헷갈리는게 아니라 합리화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죄를 먼저 짓고 나중에 기준을 바꾸는 주제예요. 뭘 먼저 한다고요? 죄를 먼저 져요. 그리고 나중에 뭘 바꿔요? 기준을 바꿉니다. 내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가 대체로

많아요.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그렇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그 죄를 이겨내지 못할 거 같으면 그때부터 뭘 하냐면 기준을 바꿔서 합류하기 시작해요.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되기 시작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유 되려면 이유 될 수 있어요? 없어요? 네. 그럼요. 우리 모든 이유 될 수 있어. 내가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 될 수 있어요. 이유가 없는 일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 이유는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린 죄를 먼저 져놓고 귀신을

바꿔요. 세상에서도 악의 선으로 포장한 행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어, 세상에서는 제가 봤을 때는 악한 행동을 지혜로운 삶이라고 바꾸기도 합니다. 그게 지혜로운 거야. 너무 선하게 살지 마. 그 바보 같은 거야. 이기주의적인 삶을 자신의 권리를 잘 챙기는 것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말과 태도를 솔직한 모습으로 바꿔 놓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래서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을 교회에서 배워도 세상에 나가면 그 기준이 함께

흔들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런 이들을 일컬어 스스로 지혜롭다고 스스로 슬기롭다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화가 있을진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가 있죠. 하면 너 망할 거야. 너 그렇게 살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거야. 이런 얘기입니다. 저는 세상을 바라보면 어 가끔은 정말 아 하나님의 공의가 진짜 드러나기를 바랄 때가 있어요. 저에게도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기 바랄도 있고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 하나님의 공의가 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반대로 끝까지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인 답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하나님의 복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하나님 어 저들이 저렇게 어쩌면 세상 다 이렇게 살아서 하는데 하나님 때문에 이렇게 살고자 저렇게 애쓰고 있는데 하나님 저들에게 하나님 함께 해 주십시오. 저들의 삶을 하나님 개입하셔서 좀 지켜서 하나님 저들이 삶이 꺾이지 않고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질 때가 진짜 많습니다. 근데 오늘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개입하는 분이 것을 계속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은 지풀하기가 불길에 휩사이듯 마른 풀이 불꽃에 찾들어가듯 그들은 심판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어서 주어지는 심판의 말씀을 한 더 읽겠습니다. 시작. 를 심하고 나의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루실 거야.이 이 얘기가 이사야서에 계속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심판의 대상은 어 크게 이런 겁니다. 여호와의 법과 말씀을 버리고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여기 사용되는 버리다 그리고 멸시하다라는이 두 가지 동사는 민수기 14장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인데 누구에게 사용됐던 표현이냐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실패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때 그들이 하나님을 버렸고 하나님을 멸시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들어와서 하나님 뜻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멸시하여서 결국 광야에서 심판받은 자들에 대한 모습이었습니다.

근데 여러분, 지금이 남유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그 가나안 땅에 나중에 믿음으로 들어와서 살게 했던 사람들의 후회들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들은 이들의 모습은 가나안 땅에 그전에 들어가지 못하고 심판받았던 그 1세대 백성들 그 조상들처럼 지금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이에 여호와 하나님은 친히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뒤로 읽어보면 이방 나라가 유다를 침공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깨어진

세상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시고 보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잘 안 느낄 수 있겠지만 잘 안 보일 수 있겠고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없는 느낄 수 있겠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는 보이지 않지만 보호도 있고 세우심도 있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고백하는 어 그런 삶을 우리 살고 있는 것입니다. 환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붙드시며 악이 우리를 삼키지 못하게 보호하시고 건져내시고

이러는 일을 지금도 하나님은 하고 계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거부하고 끝까지 하나님 무시하고 멸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데 성경의 표현으로는 그 방식이 이방의 침공을 당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아수르가 와서 들포도를 맺고 있는 들포도 열매를 맺고 있는 포도원에 짓밟을 것이라고 그렇게 짓밟히는 것으로 이방의 침공이 역사상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깨어진 상에서 수많은 악이 우리 주변에 있지만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 건지시고 이런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그 삶을 지속한다면 우리도 우리가 선택한 삶의 열매를 맺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를 떠나버렸던 탕자 두째 아들 삶도 그와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공인은 죄를 가까이 두고도 무감각하며 성과 악의 경계를 흐린 자들에게 반드시 나타납니다. 저는 우리가 매일같이 심판 당할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갖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은 없다고 생각하고 어 살아가는 것은 무지이고 교만일 수도 있어요. 기독교는 하나님이 좀만 잘못 하나님 심판하실 거 이렇게 하는 것도 아에요. 좀 너무 그건 과해요. 제가 봤을 때. 아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뭘 하든지 괜찮을 거야. 이것도 과해요. 성경은 그걸 말하고 있지도 않거든요. 둘째 아들이 자기 멋대로 살았어요. 아버지를 떠났고 나쁘게 어떻게 보면은 무감각하게 무방향하게 살았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지혜 세상은 그에 맞는 대가를 맛보에

공의가 돌아가고 있어요. 둘째 아들이 환난을 당합니다. 그래서 근데 그가 그 당했던 환난이 그가 돌이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제도 말씀드렸죠. 가장 불쌍한 인생은 내만 내가 아무렇게나 살아도 나를 꾸짖어 주는 자가 없는 인생이 누군가가 나를 꾸짖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그와 내가 관계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서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를 뭐 한다고 말씀인지 아세요? 징계하신다고 꾸짖음은 내가 버림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 저는 꾸짖음 당하는 은혜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는 저와 여러분에게 우리가 잘못 나갈 때 꾸짖음 당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말 소망하시죠? 네. 소망하십 소망합니다. 전사 이스라엘을 향해 화를 외치는 그런 하나님 마음은 어땠을까요? 여러분 여기 대부분 부모님들이 많이 있으니까 우리 아직이 어린 것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모님들 많이 있으니까 예 자녀를 우리가 혼낼 때가 있잖아요. 자녀 혼낼 때 있으시죠?네

한 번도 안니시는 분 그런 분도 안 계실 거였죠. 네. 근데 자녀로 혼내면서 속이 편한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아, 나 우리 자녀에게 한번 윽박지르고 속 화냈더니 막 속이 시원하네. 이런 부분은 없어요. 네. 저희 아내도 여기 있지만 저희 아내도 이렇게 가장 힘들는게 엄마이기 때문에 이런 자녀에게 뭐라고 딱 했을 때 제가 벌써 자녀에게 요만큼 해놓고 이만큼 힘들어 하더라고요. 제가 목사잖아요. 저도 목회를 하다 보면 목회적으로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사랑하면 해야죠. 근데 아무리 사랑해서 해도 제가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한번 하면 사실 그보다 몇 배는 제가 더 속아리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뭘 배우냐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는 거예요. 아 위사여서 여기다 보니까 왜 이렇게 무거워 막 이사 왜 이렇게 맨날 혼낸다고 말해? 이렇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아직 너무 어린 자녀와 같이 하나님 마음을 보는 거예요. 근데 내가 조금 더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 알아가다 보면 이걸 읽을 때도 하나님 마음을 느끼는 거예요.

고죽하면 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있는 것, 표정을 있는 것에 대해 말했다면 오늘은 우리가이 말씀 넘어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을 향한 주님의 마음, 우리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마음, 우리가 그 마음을 알아가고 그 마음을 읽어 가는 것이 우리가 주님과 더욱더 심해지고 성숙해지고 있다는 그런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에게 날선 예언을 주시고 또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며 그 말씀 속에서 진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주고 싶은 마음은 무엇인지 우리가 그 마음을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다면 그것이 말씀을 읽어갈 수 있는 참된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마음과 뜻을 버리거나 멸시하거나 세상의 기준대로 선과 악을 마음대로 바꾸고 혼돈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아무리 사 뭐라 그래도 이게 오르면 난이 길을 가려고 애쓰고이 길을 가지 못한

나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와달라고 하고 이게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계속해서 악그의 선이라고 말하고 빛의 어둠이라고 말할 거예요. 점점 더 그럴 거예요. 그 하나님 백성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그 기준을 끝까지 붙드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주님 마음을 알고 그 길을 알고 그것을 삶으로 따라갈 수 있는 따라가기 위해서 주님을 더욱더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