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함께 같이 보려고 하는 말씀은 창세기 36장에 있는 내용입니다. 어제 조금 나와긴 하지만 오늘의 주된 본문, 묵상 본문이기도 한데요. 우리 야곱의 이야기가 35장까지 이어졌고 이제 한 장 넘기면 37장부터 요셉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됩니다. 그 사이에 오늘에서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 사실 그 권하가 묵상을 열심히 하는 편이거든요. 예. 방금 전에 예배 전에 저를 찾으러 와서 오늘 저한테 설교 본문이 뭐예요? 그거 36장 한다고 했더니 오늘 본문
한다고 했더니 오늘 본문은 나코나코 얘기밖에 없잖아. 어 거기서 무슨 설교를 하냐 아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따 잘 들어봐. 네. 어 35장까지의 내용이나 37장 이후의 내용은 사실 여러분들이 보기만 해도 충분히 스스로 묵상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내용인데 조금 묵상하기 어려운 본문이 36장이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본문을 읽으면 때로는 그냥 빨리 넘어가고 싶습니다. 이게 도대체 나 무슨 상관이지라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여기에는 계속
이름이 나옵니다. 특별히이 족보가 더 무의미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이 족보는 성경에서 언약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요.에서의 후에 후에 에돔이라고 불리는 그 족속의 개보입니다. 그런데 성경은이 이야기에 무려 43절의 분량을 할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는 뭐냐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다고 보기 어려운에서의 가문이 어떤 면에서는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가문이 커지고 족장들이 세워지고 더나가 왕들이 세워지며 영향력이
확장됩니다. 특별히 흥미로운 곳이 31절인데요. 31절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스라엘의 왕이 아직 없을 때에 다음과 같은 왕들이 이로 온땅을 지금이 이야기 뭐라고 있냐면 무슨 이야기냐면 야곱의 후손 이스라엘이 아직 제대로 된 나라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는데 그때 이미 에돔에는 왕들이 있어서 왕들이 다스리는 더 어쩌면 발전된 국가의 모습을 띄었다라고 비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누가 더 잘된 거예요?
에서예요. 세상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에서가 야곱보다 훨씬 더 빨리 안정된 모습을 갖추고 세력도 강해졌고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그러한 형국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우리 각자에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안에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느 정도는 다 잘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하다 못해 그게 꼭 나를 위해서 아니더라도 예수를 믿는 내 삶의 모습에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고 싶어서라도 잘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근데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의 본문은 시험을 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과 그렇게 막 깊이가 있지 않은에서의 후손들이 더 잘되었더라. 어, 제가 이번 주 묵상하다가 그런 생각을 해 봤는데요. 아, 에서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까? 그 제가 봤을 때는 에서가 장자권을 빼앗긴 빼앗긴 거지. 것이 나중에이 정도 시점에는 하나도 억울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나도 이미 잘 살고 뭐 야곱도 괜찮으면 나도 괜찮은데 뭐이 정도면 그냥 장자권 축복은 미신이나 신하 같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래서 야곱을 용서하는 일이 더 쉬웠을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다고 스스로 여겼을 테니까요. 그래서 예전에는 오히려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보려고 아버지의 신앙의 기준에 맞춰 살아보려고 그런 애쓰는 마음이라도 에서에게도 있었는데 잘 나가는에서는 더 이상 그런 마음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그가 가나안 여인들의 아내로 맞이하며 자기 뜻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갔다라는 것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종종 불편하게 합니다.
무언가 예수를 믿는 사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오히려 더 뭔가 안 되고 어렵고 이래만 하는 것인가? 뭔가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저렇게 그냥 잘돼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한이 삶이 정말 더 좋은 삶인가? 우린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우리의 실존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서도 이런 질문과 고민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36자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마구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맞아.에서 정말 잘됐어. 그의 집안은 번성했고 안정화됐고 부족사를 넘어서
왕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언약의 개보는 아시다시피 이삭에게서 야곱으로 그리고 야곱에게서 12 아들로 이어집니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요셉은 몇 번째 아들이죠? 11 번째 아들인데 그가 훗날 장자가 됩니다. 성경의 기록이죠.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이스라엘의 로벤의 아들 이하니라 루벤은 장자도 그 아버지의 심상을 벌었으므로 장자의 이스라엘의 아들의 자손에게로 돌아가서라네 우리가이 전에 봤잖아요. 르벤이 원래 장자예요. 근데 장자권에 상실하게
된 그 이야기가 35장 후반부에 나왔습니다. 그 35장까지 야곱의 이야기를 하면서 거기까지 비춰주고 그 이후에 언약의 후손인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를 37장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바로 그 사이에 의도적으로에서의 흥함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의 개보에 그 가운데에 껴 있는에서 이야기. 그러므로 상세계 독자들은 상세계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죠. 당신은 어떤 성공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근데 성경은 이런 패턴이 자주 보입니다. 아브라함과 롯 이야기
기억하시죠? 아브라함과 롯이 둘 다 잘 살게 되니까 떨어져 나가게 됐습니다. 분가를 하게 됐어요. 롯이 택합니다. 어디 택하냐면 소돔을 택하죠. 세상의 가치로 더 좋은 곳을 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선택이 어떤 거 가져옵니까? 롯의 삶은 결국 하나님의 충만함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여러분 주목해서 보자면 놓칠 수 있겠지만 이삭과 이스마엘 약속의 아들은 누굽니까? 이삭이죠. 근데 이스마엘 잘 번성합니다. 어쩌면 이삭보다 더 번영합니다. 이스라엘보다 오늘
야곱 이스라엘보다 에돔이 먼저 번영해요. 언약에 계승하는 것과 실제로 잘 사는 건 다른 문제로 창세기는 계속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데이 이스마엘의 후손과에서의 호손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과 결국에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이방 나라들의 대표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스라엘을 나중에는 끝없이 괴롭히는 어떤 대표주들이 됩니다. 그들의 어쩌면 세상적인 성공이 어쩌면 그들의 후손 대대로 하나님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삶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에서 이야기 앞뒤에 있는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를 기억해 보세요. 그들에게는 인간적으로 못난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거를 성경 보여주고 있냐면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못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훈련시키기도 해요. 언약의 계승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들에게 인생의 굴곡이 없었나요? 많습니다. 어쩌면 정말 하나님께서 혹독하게 훈련시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처절하게 깨어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대 삶에는 그런
의미에 보자면 당대의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세상의 성공 성공이라는 것에는 조금 더 뒤쳐지는 듯 보일 때가 많습니다. 또한 그들 옆에는 하나님을 따라 살려고 할 때마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으며 그들조차도 세상의 힘을 의존하고 거기 기대어 보려고 할 때 예를 들어 야곱은 좀 라번에게 힘을 좀 기대해서 뭔가 자기 어떤 걸 쌓아가려고 할 때 또 요셉은 애굽의 실권자들에게 좀 뭔가 기대어서 삶을 풀어 보려고 할 때 하나님은 가없이 그들에게 배신을 겪게 하셨습니다.
우리가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여긴다면 우리 또한 그것을 위한 몇 가지 거래를 하게 됩니다. 내 양심을 조금 더 내려놓다도 나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하는 방법도 그 방법이 될 수 있고 사랑과의 신일을 조금 가볍게 여기더라도 도움이 될 만한 선택들만 하는 것이 내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로 인해서 나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내가 원했던 눈에 보이는 실제 열매들이 주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는 동안 반드시 잃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이 땅에서의 현재적인 심판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어쩌면이 땅에 해한 성공의 어떤 거를 매일 선택하고 나아갈 때마다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더 큰 허무와 또 그 안에 관계의 깨어짐과 결국 내 옆에는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심판은 하나님과 멀어짐 하나님과의 단절이죠. 세상의 성공을 맛보면서 아 이게 성공 가져오는구나 하고 열심히 그리러 가면서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지며 어쩌면 동일한 삶의 방식과 태도를 자녀 세대에게도 물려 주기 때문에 그렇게 가문이 이탈하는 경우도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다시 한번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하나님 없이도 세상의 관점에서 세상의 기준에서 더 잘되는 삶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강해질 수도 있고 번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 예는 눈을 들면 우리 세상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물론 성경은 그런 성공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성공 안에서
우리에게 배우는 학습의 결과 하나님 없어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마음들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 가치에 따른 선택들이 모여서 나의 철학이 되고 인생의 방향이 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을 넘어서 그와 마주하고 있는 그의 자녀들 또 그의 가문의 방향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인생 그것이 나의 선택이 되고 그것이 나의 삶의 방향이 됐을 때 그것이 어떻습니까? 어떤 부분은 그걸로 내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성공하지 못하는데 보일 때도 있습니다. 약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느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생에 주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잘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단순히 다 잃고 하나님만 얻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만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기준이 우리에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이 우리에게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욕망대로 살아가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절제할 수 있는 삶을 배우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실패와 고난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성공만에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것이 흔들릴 때 함께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붙은 사람은 우리가 붙은 하나님이 무너지지 않는 분이기 때문에 때론 내 인생에 많은 것이 흔들려도 다시 일어설 이유와 힘이 있는 삶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관계를 다르게 만듭니다.
세상의 방식을 따라 살다 보면 결국은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만들고 이용할 사람과 필요 없는 사람을 나누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신의와 책임을 배우게 하십니다. 당장 것이 힘들고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그런 삶이 주변에 사람을 남깁니다. 가정을 남깁니다. 공동체를 남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삶을 통해서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참여시키고 만들어 가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세상은 결과로 우리 어떤 것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빚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의 사람들은 느려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느린 시간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고 계십니다. 여러분 36장 전체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있지만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 있다는 거 아십니까? 바로 여호와 혹은 하나님입니다. 에소의 속부는 길게 이어지는데 그들의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어떤 장면이나 묻는 장면이나 없습니다. 에소의 삶 그리고 그의 삶에는 하나님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후대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민족이 됩니다. 우리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내면은 자꾸 싸우기 때문이에요. 두 가지를 모두 잡고 싶은 욕심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삶은 에서처럼 되고 싶습니다. 빨리 뭔가 이루고 싶고 성공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는 야곱이고 싶습니다. 근데 신앙은 많은 경우 둘 중에 하나를 계속 선택해 가게 됩니다. 에서처럼 살아가기 선택하면 거기서 얻는 것이 있겠으나 그 삶에서 가장 깊게 이루어가는
것은 결국 하나님입니다.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성같이 쓰면 된다는 말은 성경의 방식이 아니다. 왜냐 하나님은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를 빚어가기 때문이다. 잘되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없어도 살아가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하나님 때문에 삶의 작은 것이 달라지는 달라지기 시작하는 그런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오늘 이렇게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에서는
봐라 잘됐다.에서는 왕국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하나님은 야곱과의 언약을 통해서 그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36장을 언뜻 보면에서의 성공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를 계속 읽어가다 보면 이상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에서의 그 왕국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고 애굽의 종사를 지나고 수많은 실패와 눈물을 지나는 과정도 야곱에게 맺었던 언약은 끝내 이어집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이 그 언약을 붙들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세상의 성공은 한 세대를 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 삶은 한 세대를 넘어서 생명을 남기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이 이 시간 우리가이 말씀 앞에서 나는 그럼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이루면 살아갈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또 하나님께 내 삶을 고백하고 또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서 우리가 찬양하고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보일 수 있는 그런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