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무엇을 기대하시겠습니까?

2026-04-23 (올린 날짜) · 창세기 29장 1~30절 · 박예진 전도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네. 오늘의 설교 제목은 무엇을 기대하시겠습니까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어, 여러분 혹시 지난주 수요 기도의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네. 조용해졌네요. 네. 에서가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을 어 받고 장자가 받을 수 있는 축복이었던 장자권을 파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이 둘의 거래는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 일어났던 형제 간의 거래였어요. 어 그래서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삭은 시간이 흘러 자신이 늙게 되자 어 형이었던 애설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애야 내가 이제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그러니 너는 사냥을 해서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라. 그러면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음껏 축복하겠다. 이삭은 장자권의 명분으로 맞아들였던 에서를 마음껏 축복하고 싶었습니다.이 이야기를들은 에서가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서 사냥을 하러 나가죠. 그런데이 이야기를에서만들은 건 아니었어요. 누가 들었을까요? 네. 그의 어머니였던 리브가가 들었습니다. 리브가가이 이야기를

듣고에서 사냥을 떠나자 둘째 야곱을 불러요. 그리고 야곱을 에서처럼 변장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평소 남편이 좋아했던 음식을 대신 만들어서 야곱을 애서인 것처럼 이삭에게 보내죠. 성경에 보니까 당시 이삭은 나이가 많아서 눈이 많이 어두워졌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삭은 야곱이 에서로 변장한 것을 잠시 의심은 하지만 결국 끝내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래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에서 대신 야곱을 마음껏 축복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이삭의 축복이 끝나자마자

정말 드라마처럼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죠.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성경은 에서에게 줄 축복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소식을들은에서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자신에게 돌아올 축복이 하나도 남지 않은 형에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어, 제가이에서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을 하다가 어, 이런 기억이 하나 떠올랐는데요. 어, 여러분 혹시 동생이 있으시면 이런 경험이 있으실 수도 있어요. 아, 이따 집에 가면 그거 먹어야지 하고 왔는데 누가

다 먹어 버렸을까요? 네, 저는 동생 있거든요. 동생이 다 먹어 버린 거예요. 저는 집에 오는 길 내내 아, 그거 먹어야지. 집에 가면 그거 뭐가지? 하는 생각으로 왔는데 집에 왔더니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때 그 상실감은네 경험해 본 첫째들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락 같은 해망을 품고 엄마한테 묻는 거예요. 엄마 진짜 내 거 하나도 없어. 다 먹었어. 그랬더니 엄마의 대답이 하나도 안 남았대요. 이미 다 먹어 버렸다고 하는 거죠. 그러면

그때는 미안하다고 해도 그 상실감이 절망감으로 바뀌어서 잘 달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음식이야 다시 만들어 먹으면 되고 다시 사서 먹으면 되죠. 그러나 장자권은 그런 음식과 같은 것이 아니었어요. 기회는 딱 한 번뿐입니다. 그러니 에서가 느꼈던 마음은 저와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의 큰 상실과 절망감이었겠죠. 그의 상실감이 절망감이 되고 곧 그 절망감은 동생을 향한 배신감이 되어서 결국에서의 마음에 살리를 불러일으킵니다. 어 우리 성경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버지 아들 복을 야곱에게 깨야곱에게 거 같아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들는 야을 죽이겠다고네 여기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멀지 않았으니라는 말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날이 멀지 않았다라는 뜻이에요.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죽으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라고 마음을 먹습니다. 이번에도이에서의 마음을 누가 먼저 눈치 챌까요? 네. 엄마 리브가가 눈치를 챕니다. 그래서 야곱을 자신의 오빠였던 라반의 집으로 피신시키려 하죠. 그런데 그때 아버지 이삭도 야곱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형 에서처럼 이방 여인과 결혼하지 말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서 그 딸들 중에 너의 아내를 찾아 결혼하라라고 말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그렇게 길을 나섭니다. 야곱에게이 길은에서의 분노로부터 도망가는 피난 길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자신의 아내를 찾아 떠나는 결혼의 여정이기도 했죠. 그렇게 길을 나선 야곱이 드디어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그 이야기가 오늘 창세기 29장의 이야기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의 아들는 말을서 그를 만나 장하와 그를 보자마자 입을 마치고 데갔다 야곱은 있었던 그를 나에게 다였다 나를 구원한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와 함께 라반이 조카가 왔다는 소식이 아주 기뻐하며 한 다림에 달려 야곱을 환대하죠 너는 나와 피부치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안타깝게도이 기쁨은 딱 한 달짜리에 불과했어요. 한 달이 지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요. 첫째가 누구였죠? 레아였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라헬이라고 하는 딸이었어요. 그런데 야곱이이 둘째 딸 라엘에게 반했나 봐요. 라엘을 너무 사랑한 야곱이 라반에게 말합니다. 제가 7년 동안 외삼촌을 위해 일을 해 드릴 테니 그때가 되면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제가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라반이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여요. 그리고 야곱이 진짜 7년 동안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합니다.이 야곱이 얼마나 라엘을 사랑했는지 성경에는요. 그 7년이나 시간이 마치 며칠과 같이 느껴졌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렇게 7년이

지나갔습니다. 야곱과 라반이 약속했던 그 디데이가 되었어요. 그날 밤에 야곱과 라헬의 결혼 잔치가 열렸습니다. 여러분, 야곱이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7년을 정말 열심히 일을 하면서 라엘과 결혼할 그날을 기다렸겠죠.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었던 외삼촌 라반이 약속을 어깁니다. 라헬 대신 레아를 라헬인 것처럼 꾸며서 야곱에게 보내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 이것은 그 당시에 신부들은 얼굴을 면사포로 가리고 있었고 또 지금처럼 전기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밤이 깊으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학자들은 라반이 잔치를 핑계로 야곱을 포도주에 잔뜩 취하게 했을 것이다라고 어 추측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욱더이 야곱이 레와 라헬이 누구인지 잘 구분하기 어려웠겠죠. 야곱은이 사실을 아침이 되어서야 알아니다. 그리고 매우 억울해하면서 라반에게 따지죠.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어요. 야곱은 이미 첫째 딸 레아와 동침했고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 포인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이 이야기가 앞서 일어났던 에서와 야곱의 에피소드와 매우 유사하다는 거예요. 매우 닮아 있어요. 리브가가 야곱을 에서인 것처럼 꾸며서 이삭을 속였던 것처럼 이번에는 라반이 레아를 라헬인 것처럼 꾸며서 야곱을 속입니다. 그로 인해에서의 기대가 상실감, 억울함으로 얼룩졌던 것처럼 야곱도 지난 7년 동안 성실히 쌓아왔던 그의 기대가 라반에 의해 절망과 억울함으로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해야 했죠. 야곱이 7년 전에는 속이는

자의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속은 자의 입장이 된 거예요. 그것도 자신이 사용했던 같은 위장이라는 방법으로 말이죠. 저는 하나님이 일부러 야곱에게 이런 일을 당하게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명 여기에는 외삼이었던 라반의 이기적이고 음흉한 생각과 의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이 사건과 라반이라고 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야곱을 다뤄가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영역들을 다뤄 가시기 때문이죠. 아마 야곱은이 사건을 통해서 자신이 형에게 행했던 그 7년 전에 속임수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어 정당하지 않았음을 느끼고 깨달았겠죠. 어쩌면 형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그 분노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로 억울하고 힘든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또 그 일들에는 대부분 여러 가지 일들과 입장들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단순하게 이것이 잘못이야. 누구

때문이야? 말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그 질문에 집중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지금이 일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시는 걸까? 나의 어떤 부분을 다뤄가기 원하시는 걸까? 하는 것들을 더 고민해 봐야 합니다.이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두 번째 포인트는 리브가와 야곱이 기대했던 모습과 어긋나 있는 외삼촌 라반의 모습입니다. 리브가는 자신의 오빠인 라반이

야곱을 잘 보살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라반에게 야곱을 보냈겠죠. 아, 그래도 족한데 내 아들인데 잘 챙겨 주겠지 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라반이 그랬나요? 그렇지 않아요. 말로는 어, 야고아, 너와 나는 한 피부치야. 우린 한 가족이야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의 모습을 잘 들여다 보면 조카를 이용해 먹기 바쁩니다. 먼저는 야곱과 약속을 어겼죠.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대가로 지불한 약속이었음에도 말입니다. 게다가 야곱이 라헬를

너무 사랑하는 그 마음을 악용해서요. 또다시 7년의 노동을 요구해요. 우리 그 이야기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나를서는 자에게 그 여러분 그 당시에 그 근동의 관래대로 하자면요 라바는 마땅히 야곱의 가까운 친족으로서 야곱을 잘 보살피고 또 그가 가정을 잘 꾸려서 독립하게 도와줘 했습니다. 그가 고향으로 다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할 책임이 그 라반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그 관리를 지킬 생각이 없어 보여요. 둘째보다 첫째가 먼저

결혼해야 한다는 그 고장의 법을 그 관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야곱을 속였다라고 말하면서도 모순에게도 야곱을 위한 법은 지킬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철저히 야곱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려는 모습이죠.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라반의 이러한 모습을 당시에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한 것이다라고까지 표현하기도 합니다. 라반은 리브가가 야곱을 지키기 위해 생각해 냈던 대안이었습니다. 또 야곱에게는 자신이 보살펴 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피난처였겠죠. 여러분, 그러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리브가처럼 어떤 일들을 해결해 가기 위해서 최선의 대안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곱처럼 그 대안이 나를 지켜 줄 거야. 최소한이 정도는 해 줄 거야라고 하는 기대감을 갖기도 합니다. 여러분, 그러나 언제나 삶이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가던가요? 그렇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대한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것이 나의 상황에서 가장 최선이야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기도 하고요. 나를 지켜주고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들이 때때로 우리를 배신하기도 합니다. 리브가와 야곱처럼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믿는 도끼에 발등 지키며 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뻔한 답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서 언약을 이어가고자 하셨던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주어진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보면 리 리브가와 야곱은 하나님이 일하실 틈을 조금도 주지 않아요. 하나님이 배제된 계획, 하나님이

배제된 어떤 대안, 하나님이 배제된 해결책만을 계속 생각하고 쫓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손놓고 지켜만 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 삶을 위한 선택도 해야 하고 계획도 세워야 하며 때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발빠르게 대안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우리는 과연 그 과정 속에서 얼마나 주님이 일하실 공간을

내어들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시간표를 기다릴 인내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어리석은 방법으로 언약을 성취하려 했었죠. 그 결과로 자신의 사랑하는 둘째 아들과 그녀는 헤어짐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거야라는 그 믿음보다 자신의 혈육인 오빠 라반이 야곱을 지켜줄 것이라 믿음이 더 컸습니다. 야곱도 리브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쫓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그 언약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어,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여러분의 계획과 선택, 그 수많은 최선에 대한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십니까? 어, 저도 이런 실수를 참 많이 하는 거 같아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또 내 삶에 어떤 변수가 생기면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머리를 재빠르게 굴려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를 먼저 찾을 때가 많습니다. 어떤 선택의 갈림길에서 주님께 묻기보다

어떤 것이 지금 더 유리할까 그것을 먼저 계산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라고 말하고 주님을 신뢰한다고 말하고 말씀을 따라간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내가 또 주인이 되어서 나의 시간표대로 나의 계획과 나의 대안을 신뢰하는 모습일 때가 저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신가요? 여러분,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다급할수록 하나님께 먼저 묻는 사람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일들도 주님께 물으며 맡기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내 삶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을 언제나내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이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서 두 가지를 살펴보았는데요. 위장로 형 에서를 속였던 야곱이 이제는 똑같은 방법으로 라반에게 속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라반이 오히려 그를 이용하고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약속을 어기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쩌면이 말씀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인과 왕보라 생각할 수 있고 뿌린 대로 거뒀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네.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성경이이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어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야곱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그를 더 온전하게 빚어가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라반을 거울삼아서 야곱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을 것입니다.이 이 사건과 그의 아픈 그 경험을 스승삼아서 야곱이 앞으로는 자신의 방법보다

하나님의 방법을 먼저 묻는 그런 사람으로 가르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이 말씀을 읽는 우리에게도 주님의 마음이 같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일들을 통해서 우리를 다뤄가고 빚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마주하는 그 일들 앞에서 아,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묻기보다 아 주님 지금 제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십니까? 질문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물으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고 빚어가실 수 있기 때문이죠. 또 야곱은 라반을 기대했습니다. 그래도 외삼촌인데. 그래도 가족인데. 하지만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우리는 보았죠. 그리고이 모습은 오늘 우리 삶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이 사람은이 선택은이 계획은 나를 지켜 줄 거야라고 기대했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는 크고 작은 경험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에게도 다급할 때 찾게 되는

라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급할수록 쉽게 떠오르는 그 라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오늘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것에는 그 어떤 안전함도 그 어떤 선함도 없다는 것이죠.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라반을 의지하며 기대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정말 여러분을 지키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그 주님을 기대하며 의지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분명한 것은 라반은 야곱을 배신했지만 하나님은 야곱을 끝까지

붙들고 비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실수하고 그가 아무리 그릇된 선택을 할지라도 주님은 야곱을 버리지 않습니다. 라반은 약속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야곱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오늘의 설교를 끝으로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