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우리 오늘 회개 행동의 변화라는 제목으로 우리 묵상에 대한 말씀을 잠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아,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미 아는 내용이지만 아, 그래도 간단하게 스토리를 어 정리해 보면 요셉은 17살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에게는 요셉이 짐승에게 죽은 것처럼 어속이죠. 아버지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이잃은 것이고 요셉은 형들의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고 형들은 죄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이 가족은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며 어쩌면 깊은 비밀을 간직하며 깨워진 상태로 살아갑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이집트에서 종사리 하다가 억울하게 또 감옥에 가게 되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는 것을 우리가 지난주에 나눴습니다. 어느날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 파라오에게 미래에 관한 꿈을 주셨고 그 꿈을 해석하는 역할을 요셉이 하게 되면서 그는 하나님의 때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놀라운 반전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진짜 그 꿈대로 찾아온 7년의 풍년과
7년의 흥연 주변을 모두 휩쓴 그 7년의 기근으로 인해서 가나안 땅에 있던 야곱의 가족도 먹을 것이 떨어지게 되죠. 요셉에 의해서 애굽만이 주변에서 유일하게 7년의 기근을 단단하게 준비해 왔기 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양식이 있다는 애굽으로 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요셉을 잃은 후부터는 막내의 베냐민만은 더욱 위험한 곳에 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트라우마죠. 사랑하는 아내 라엘도 죽었고 그에게서 낳은 아들 요셉도 죽었기 때문에 베냐민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형들만 애굽으로 가게 됐고 그곳에서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만납니다. 요셉은 단번의 형제들을 알아보지만 형들은 당연히 모르죠. 어이 요셉이 정체를 숨기채 시험을 막 던집니다. 너희들은 정탄꾼이다. 형들은 억울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막 꺼내게 되고 그러자 막내 그럼 베냐민 데려와라고 하면서 시무훈을 볼모로 잡아둡니다. 양식은 얻었지만 다 풀리지 않은 또 형제를 두고 와야 되는 이런 상황이 된 거죠. 시간이 흘러서 다시 양식이 떨어지고 이번에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만 하는 두 번째 그 순간이 찾아옵니다. 야곱은 왕강히 거부하지만 유다가 그러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제가 제 목숨을 담보로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설하고 결국 베냐민과 함께 다시 애굽으로 향합니다. 애굽에 도착한 형제들은 예상 밖에 환대를 받습니다. 요셉은 친동생 베냐민을 보고 복받치는 감정에 몰래 울기도 하죠. 아멘. 이때 식사 자리에서 요셉은 베냐민에게 다른 형제들보다 다섯 배나 많은 음식을 줍니다. 어 모르겠어요.이 요셉이 시험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예전 같았으면 시기와 질투로 눈이 뒤집혔을 형들이었지만 성경을 보면 그들은 그 자리에서 함께 즐거워합니다. 형들의 마음이 예전과 같지는 않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짜 내가 형제들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 연합을 위해서 마지막 가장 강력한 테스트를 준비합니다. 바로 베냐민의 자료에 자신의 은잔을 숨겨서 누명을 씌우는 것이었죠. 베냐민을 데리고 집으로 기분 좋게 올라가는데 요셉이 보낸 추격자들이
붙잡고 추궁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내 주인이 그렇게 선대했는데 선을 악으로 갚느냐? 어째서 주인의 은자는 훔쳐가느냐? 형제들은 황당해하면서 항변합니다. 소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에게서라도 그것이 나오면 그를 죽여도 좋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소리 왜 하는 거예요? 그죠? 네. 네. 그리고 나머지는 나머지 우리는 주인의 종이 되겠습니다. 네. 아, 그리고 자료를 풀어봤는데 베냐민의 자료에서 은잔이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형제들은 놀랍고 슬픈 마음에 옷을 찢고 울면서
다시 요셉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중요한 곳은 베냐민만 돌려보내는게 아니라 형제들이 같이 돌아왔다는 것도 다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거죠. 그들이 요셉 앞에 나아가서 엎드리니까 요셉이 호통칩니다. 당신들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어. 유다가 형제들을 대표해서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소인들의 죄를 들추어내셨으니 우리와이 잔을 가지고 한 아이가 모두 주인 언론의 종이 되겠습니다. 그때 요셉이 말하죠. 아니다.이 잔에 가지고 갔던
그만 그이 사람만 베냐민만 나의 종이 되고 나머지 노인는 죄가 없다. 돌아가라. 이에 유다가 간창하며 말하는 장면이 오늘 묵상 본문입니다. 즉 요셉이 의도한 바는 명확하죠. 어쩌면 형제들에게는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어요. 22년 전과 같은 상황입니다. 아버지가 특별히 사랑했던 한 아들이 한 사람만 포기하면 자기들은 오히려 모두 편해질 수 있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던져 줍니다.이 상황 속에서 과연 형들은 정말 바뀌었는가? 이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오늘 창세기 44장입니다.
어, 성도님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가 회심과 죄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회심을 내가 한 것 같다가도 여전히 죄를 짓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 나는 회심하지 않았나, 나는 회심하지 못했나라는 마음이 찾아올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보님 저는 회심한 거 같습니다. 당당하게 얘기했다가도 또 그 한 주간의 삶이 너무 자기가 받아도 개판이었으면 이제 나는 회심하지 않았나 봐. 아라는 이제 그 밑바닥에 떨어진 그 영적 자존감을 갖고 저에게 이제
오는 거죠. 그러면 제가 늘 들어 예가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를 진짜로 사랑하겠다고 진심 어린 고백을 나눕니다. 제가 오늘 예비 부부와 또 이제 신혼 기초를 시작하게 되는데 규성이와 태이랑 하거든요. 아마 저들도 그런 마음을 이제 가지니까 그런 고백을 나누면 결혼을 준비하겠죠. 그것은 분명히 거짓이 아닐 겁니다. 교정 그렇지. 예. 어 거짓이 아닐 겁니다. 네. 협박당에서 결혼할 거 이런 거 아니잖아. 그렇지? 어. 어 그런데 어 내가 배우자를 진짜로
사랑하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에 대한 고백을 하고 결혼식날도 그런 고백을 하겠지만 그게 진심이거든요. 그런데 그 고백만큼 한치에 부끄러움 없이 내가 그렇게 행동으로 보여주면 살고 있냐고 옆에 있는 우리 형님들한테 물으면네 그 물음에 내라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네. 우리 시험에 될까 봐 제가 묻지 않겠습니다. 네. 그러면 내가 사랑하겠다고 했던 마음이 다 거짓이고 지금은 그 마음이 전혀 없는 거냐? 그것도 아닐 거예요. 그니까 내가 회심을 했다는 것과 내가
온전한 삶을 살고 있느냐를 바로 이렇게 연결해서 보면 이와 동일한 오해 속에 우리는 계속 맴들게 됩니다. 내 회전 마음이 가짜는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온전한 삶에 살고 있냐? 그렇지 않은 거 같으니까요. 어, 성경 말하는 회심한 자에게 주님께서 가르치는 너희가 온전케들라고 하는 온전한 삶은 우리가 그리스도 살아가게 되는 영원한 목표입니다. 부부이기 때문에 내가 배우자를 내가 사랑하면 평생 살겠다라고 하는 거지. 부부가 아니면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온전한 삶을 꿈꾸 이유가 없어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아겠다는 내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게 영원한 목표로 갖는 거예요. 그 목표가 생겼다는 과체가 회심의 증거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 목표를 향해서 늘 애쓰는 나의 진실함이 온전한 삶을 그래도 내가 안 되지만 살아보겠다는 그 나의 진실한 결단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나는 부족할 때도 있지만 남편과 또 아내로서 내 배우자를 사랑하며 살아가고자 배우자를 위해서 뭐라도
하고자 그 지자 마음 가운데 애쓰고 있다면 그 진실한 애음이 나의 그 진실한 고백, 진실한 마음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애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애 가운데 조금씩이라도 변화해 갑니다. 그래서 회심한 이후에 내 회심의 고백이 진짜 그로 인해서 내가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서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주님이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변해 가요. 백점으로 살지 않으면 영점이 영점인 것이 아닙니다.이 이 변해 간다는 것은
작년보다 내가 조금 더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고 있고 작년보다 조금 더 죄와 싸워가고 있고 작년보다 조금 더 순종하려고 하고 있고 하다 못해 작년보다 내가 주님께 예배하는 시간이 늘어가고 있고 작년보다 내가 주님께 뭔가 말씀을 읽고 뭔가 매달린 시간이 늘어가고 있고 누군가라도 더 챙기고자 하는 마음이 늘어가고 있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근데 주님은 회심한 순간부터 우리 안에 일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고집스럽게 거부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주님께서 내 안에 뭔가 말씀하시면 고집스럽게 외면하고 거부하고 있다면 주님이 내 안에서 일으키시는 그 변화의 열매를 내 삶에서 맛볼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이 원하시 살아가고자 나도 원하고 하나님께 안 돼도 도움을 구하고 순종하며 살아가고자 나아간다면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주님께서 우리 안에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반대로 말만 할뿐 주님이 내가 당신 나의 삶의 주인입니다. 말만 할뿐 사실상 주님이 내 삶에 일하시는 것을 거부하고 있고 싫은데요.
싫은데요. 내가 내 삶에 주인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말로는 회심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면 그거밖에 없다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 그러한 변화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 속해 보면 열매로 그 나무를 알지라는 말씀이 주어지는 거예요. 그에게 나오는 변화의 열매가 정말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어 살했던 풍성한 삶의 첫걸음에
보면 내가 회심했는가를 스스로 점검하잖아요. 그때 점검 가운데 behav버 행동의 변화가 나에게 있는가 이거를 우리가 점검하는 물음 가운데 아 그 가이 한 가지로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회심한 이후에 변화들이 있는가? 회심한 이후에 내 삶에 오랜 시간을 두고 보더라도 조그만한 변화도 없다면 회심을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회심을 전인격적으로 하지 않은 걸 수도 있어요. 전인격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지적인 동의만 돼 있는 거죠. 정말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나의 진실한 마음 의지 어떤 이런 것이 없는 경우고 지적으로만 동의한 경우. 근데 회심을 진짜 했더라도 안 변하는 경우나 안 변한 것처럼 느껴진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나의 삶에 회심 전의 습관이 강력해서 가득해서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 안에 진짜 있지만 그 나의 예습관 때문에 그걸 못 뛰어넘어서 실천까지 못 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너무 약한 상태라고 말하는 거죠. 이때는 내가 하신 말하면 진짠데 내가 나의 삶에 끊어내고 싶거나 받고
싶은 걸 전혀 못 바꾸고 있다면 이때는 뭐 하셔야 되냐면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돼요. 나 좀 도와줘. 나 이렇게 살고 싶은데 진짜 나 이렇게 살고 싶거든 안 돼. 도와줘. 그러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진짜 도와줘야 되는 거예요. 그럼 너 이렇게 하고 싶으면 이렇게 나랑 해 보자. 예를 여러분 단순하지 않습니까? 어, 내가 살을 빼고 싶은데 마음은 가득해요. 근데 나는 맨날 먹기만 하고 나갈 마음이 전혀 없어. 안 돼. 마음이 없는게 아니에요. 근데 안 돼요. 그럼
주변에 도움을 청해하죠. 야, 밤 9시에 날 좀 불러서 나랑 한 시간만 걸어 줘. 걸어 주면 바뀌어요. 똑같습니다. 멀리가. 네. 우리가 마음이 없거나 직접 동기만 돼 있어요. 난 살 빼야 돼. 난 살 빼야 되는게 맞아. 마음은 없어. 진짜 도움이 있으면 안 된 거예요. 근데 진짜 나는 마음도 있어요. 근데 안 돼. 그러면 도움을 청해야 되는 거예요. 어떤 시스템에 널 집어넣어야 됩니다. 나 안 되니까 나는 어 이래도 뭐라도 끈자 아니면 뭐 어디라도 등록하자. 어
이렇게 해야 되는 것처럼 방법을 찾아야 되는 거. 그때는 우리가 공동체로서 교회 안에서 존재하면서 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걸 돕기 위한 거예요. 회심하지 않은 사람이 회심할 수도 돕고 회심한 사람이 회심한 대로 못 살아갈 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거 습관 될 수 있는 건 돕는 거예요. 우리가 말씀 읽기를 하거나 말씀 묵상을 하거나 혼자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에클레시아로 살아가는 것이나 더나가 함께 살기조차도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가 서로 지켜내고자 애쓰는 도전입니다. 회심한 이후에도 우리를 회심한 자로 살지 못하도록 다시 유혹하고 우리를 위협하는 세상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에요. 요셉은 형들이 변했다는 것을 어려운 느끼지만 그래서 진짜 변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요셉이 형들을 진짜 이제 마음으로 품고 어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요셉은 형들이 형들의 마음이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거죠. 자기의 권위로 베냐민이 다 돌아가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요? 형들에게 충분히이 결정에 대한 회피의 길을 열어 주는 거예요. 형들 가도 할 말 있잖아요. 우리 남고 싶었는데 그 총리가 우리는 다 가라고 했다. 이래야 진짜 형대 마음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유다가 나서 자신의 가족이 있던 사연을 구구 절로 설명합니다. 물론 한 명의 동생은 짐승에게 죽은 것으로 말합니다. 아버지가 그로 인해 베냐민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과 베냐민을 대구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상실감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한번 말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어른의 종이 제가 소인의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안전하게 다시 데리고 오겠다는 책임을지고 나섰습니다. 만일이 아이를 아버지에게 다시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면 소인이 아버지 앞에서 평생 그 죄를 달게 받겠다고 다짐하고 왔습니다. 그러니 저 아이 대신에 소인을 주인 어른의 종으로 삼아 여기에 머물러 있게 해주시고 저 아이는 그의 형들과 함께 돌려보내 주기를 바랍니다. 유다가 대포해야 말하지만 우린 창세기 읽으면서 형제들의 모습이
전과 같지 않고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제 자신의 희생하고 서라도 베냐민은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다시는 아버지에게 슬픔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을 먼저 희생하려 마음도 느껴집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진짜 그 죄를 통해 배웠고 회개했다면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들을 이렇게 해 나가야 되는 거죠. 물론 그래도 여러분 또 같은 자리 넘어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사탄은 내가 넘어지고 넘어질 때마다 내 귀에 와서 어김없이 속삭일 겁니다. 너는 안 돼. 그리고 사실 나에게 그런 안 된다, 나는 못한다는 마음이 지배적으로 찾아오는 그 순간 바로 우리가 진짜 누구를 믿고 의지하고 있는지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회심했다는 건 뭐예요? 내가 하나님이 주인하는 거예요. 사탄의 소리에 순종하는 자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가고 계시는 하나님 마음에 집중하면서 사탄의 소리에 예하는게 아니라 주님의 소리에 예하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기 위해 힘써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회심한 자다운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의 삶에 내 힘으로 때론하지 수 없지만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내 안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회개는 이러한 과정이에요. 그렇게 돌이키는 거예요. 삶을 돌이킴 없이 일단 내 방향을 바꾼 거고 그리고 삶이 따라가는 거거든요. 말로만 하는 회개는 너무 가볍습니다. 우리가 회개 기도를 얼마나 열심했냐 안 했냐보다 그 마음으로 진짜 내 삶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저 주님이 원하신 삶을 살기 위해서 내가 진짜 애쓰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회개는 그러므로 나의 삶의 어떤 잘못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후회가 아니라 방향 전환이라고 말합죠. 삶이 바뀌지 않으면 나의 회개는 완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창세기 44장은 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고 생각해요. 복음으로 당신은 정말 달라지고 있습니까? 옆에 있는 분 물어볼까요? 복음으로 복음으로 당신은 당신은 정말 정말 달라지고 있습니까? 달라지고
있습니까? 네. 네. 완벽해지지 않아도 분명한 것은 방향이 달라져야 합니다. 아멘. 예전에는 그냥 버렸던 사람이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도 있어야 되고 회피했던 사람이 그 안에 끌어앉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될 수도 있어야 되고 자기만 살려고 했던 사람이 이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내어 놓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변화해 주시면 언제나 은혜가 있어요. 내 안에 계신 회심은 내 안에 주님이 계신 것이니까 내 안에 주님이 주인되어서 머무시는 거니까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나에게 힘을 주시고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도우실 것을 믿으면서 나아가는 거예요. 내 힘으로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 힘으로 안 됩니다. 근데 내 힘이 아니라 걸 인정하고 나면 됩니다. 사 여러분, 여러분이 스스로 나의 1년, 나의 5년후를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래요. 내가 주님과 이렇게 함께 동행하면 아, 내 1년 후에 더 이만큼 성장이 있겠다. 내가 이렇게 방향으로 가면 지금 나는 아직 연약하지만 내가이 방향으로 쭉 가면 5년
후에는 내가 더 이런 사람이 되어 있겠다. 나는 나에게 기대할 것이 없지만 내 안에 계신 주님은 기대할 뿐이니 우리가 그분을 기대하면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좋습니까? 세상은 나에게 기대할 거 없으면 끝이라고 말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기대할 것이 없어도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있잖아요. 우리는 그 진리가 있잖아요. 왜냐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우리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말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특별히 회심을 했어도 성장하지 않는 경우가 명백하게 한 가지가 성경에 있어요. 그것은 죄 가운데 묶여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회심을 했어도 아무리 찐으로 했어도 지금 내가 죄 가운데 있다면 그 사람 성장하지 못합니다.이 죄가 큰 걸 수도 있고 오히려 내가 지금 바람을 피고 있다면 내가 지금 명백하게 잘못된 것을 동조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절대 성장하지 않아요. 근데 꼭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위협이 됩니다. 끊임없이 옆사람과 비교하고 끊임없이 질투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것은 다 감정을 우상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성장하지 않아요. 다른 것을 우상는 것을 끊어내고 내가 정말 내 삶의 주인 어 그분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모두가 하나님이 원하신 방향으로 한걸음없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유다처럼 우리도 내 옆에 지켜야 될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 목양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내 형제를 죄로부터 지켜내는 것입니다. 회심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린 서로서로를
그걸 지켜가는 그런 공동체입니다. 사의 교회 공동체가 함께 서로를 복음으로 세워주며 죄로부터 지켜내며 주님의 나라를 더 깊이 누리고 전할 수 있는 그런 진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