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여러분, 우리가 최근에 주일 설교를 통해서 신앙의 기초 시리즈를 살펴보고 있는데요. 신앙의 출발점,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죠.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네, 바로 회심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회심은 무엇일까요? 어, 이제 조금 배워서 여러 가지 답이 나오는데요. 네. 회심을 다양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지만 오늘 저는 특별히 그중에서 삶의 방향 전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 이전에는 하나님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던 삶이 방향을 틀어서 전환해서
하나님 쪽으로 나아가는 삶이 되는 것이 바로 회심이다라고 할 수 있죠. 누구나이 회심은 주님 이제 제가 주님과 함께 주님 쪽으로 걷겠습니다라고 하는 그 진실한 마음과 그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도이 진실한 마음이 고백에서부터 시작되죠. 여러분 그런데 시작이 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또 무엇이 있다는 걸까요? 네. 끝과 그 완성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의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제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아야 합니다. 아멘. 네. 성경은 우리에게 회심했다고 그게 다 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심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자라가야 한다라고
가르치고 있죠. 모든 면에서 온전하게 자라가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끝이 어디라고 말하고 있죠? 네.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대체 그리스도에게까지 우리가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나중 문제예요. 적어도 성경이 오늘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목표, 우리 신앙의 지향점은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르는 것, 그리스도만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그리스도와 최대한 똑같아질 때까지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는 모든
면에서 자라가야 한다라고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죠.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성장은 이곳뿐만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성장하지 않고 계속해서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꾸짖습니다. 시간으로 보면 여러분은 이미 교사가 되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점먹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왜 여전히 성장하지 않습니까라고 책망하고 있죠.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도 끊임없이 성도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과 그의 은혜 안에서 자라가십시오 하고 말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회심은 신앙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경제 이르기까지 계속 자라가야 하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곧 우리의 영적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회심했다면 그 뒤로는 회심한 사람 답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한다면 그리스도인 답게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우리 모두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는 어 그동안 교회에서
많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이 잘 알고 계실 것 같아요. 그래 회심이 끝이 아니지. 계속 변화하고 자라가야지라고 우리는 어 마음 먹고 또 애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린 이렇게 계속해서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자라가고 싶어 해요. 여러분 그런데 우리의 성장이 이렇게 올곱게 자라가던가요? 실수도 없고 넘어짐도 없이 저렇게 일직선으로 올게만 나아가던가요? 모두가 느끼시겠지만 우리의 신앙은 저렇게 직선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저렇게 잘 자라가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어 그렇지 못해요. 어이 중에서 풍삼기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실 텐데요. 풍삼계에는 여러 챕터 중에 말씀을 어 말씀으로 자녀의 특권 누리기라는 파트가 있습니다. 어, 거기에 보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자라갈 수 있습니다라고 가르치고 있는데요. 그런데 그 자라가는 과정을 이렇게 직선으로 표현하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선형으로 표현합니다. 이렇게 말이죠. 어, 왜냐하면 우리가 잘 가다가도 때로는 길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가다가 벗어났을 때 하나님이 그런 우리의 걸음을 다시금 교정시키셔서 또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은 직선으로 가보다는 이렇게 나선형으로 계속해서 성장하며 나아간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달리 우리에는 어 우리는 때로 약하고 또 여전히 다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어리석은 악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이 야곱이라고 하는 인물도 그런
성장을 이뤘던 사람 중에 한 명인데요.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이 누구를 피해서 라반에게로 도망가죠? 네. 형 애설을 피해서 도망갑니다. 그 길에서 브엘세바라고 하는 곳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라고 하는 언약이 주어졌습니다. 쉽게 말하면 야곱의 인생에서 어 영적 여정이 시작되었다는 거예요. 그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쳐 그것을 몰랐구나.
우리가 신앙의 기초 시리즈에서 회심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끊어져 있던 그 관계가 다시금 연결되는 것이다라고 배웠었는데요. 지금이 야곱의 고백을 보면 자기 삶에 계신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가 브엘세바에서 비로서 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가 그동안 미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죠. 야곱이 드디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 여러분 어쩌면 우리의
회심도 어 이와 같이 야곱의 이런 고백에서 시작되는 거 같습니다. 내 삶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내가 알게 되는 것. 그 주님이 내 삶에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고 이렇게 가는 것만이이 방법만이 전부야. 이게 유일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미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의 방식, 또 다른 길이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정말 깨달은 사람은 우리가 앞에서 말했던 그 삶의 방향 전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마 야곱도이 시점이 그랬던 거 같아요. 어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이 매일 성경을 계속 해오셨으면 느끼셨겠지만 야곱의이 고백 뒤로 곧바로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이 나타나던가요? 야곱이 정말 바뀌었다라는 반응이 어울리나요? 아니면 이게 아직도 이러네. 이런 반응이 더 어울리나요? 어, 저는 묵상하면서 개인적으로 후자라고 느꼈어요. 아, 얘 아직도 이러네. 언제까지 이러는 거야? 막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뭔가 우리가 배우고 싶고 닮아가고 싶은 그런
어떤 성숙한 어 그런 그리스도인의 모습보다는 아직은 미흡하고 어리석은 모습들이 꽤 자주 보입니다. 창세기 31장에서 하나님은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았던 야곱에게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세요. 그러면서 브엘세바에서 주셨던 그 약속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라는 약속을 다시 언급해 주시죠. 야곱이 말씀을 듣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 그 이야기를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뿐만 아니라 야곱은 도망칠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아람사람
라반을 속이고 있다가 모든 재산을 거두어 가지고 도망하였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어 라반의 집을 잘 떠난 것 같았는데 성경의 그 모습을 보고 순종했다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가 도망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왜 이렇게 기록했을까요? 분명히 말씀을 따라간 것 같은데 말이죠. 어, 저는 어쩌면 성경이 야곱의 숨은 그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던 야곱의 마음을 드러내고 어 보여 주는 것이죠. 사실이 앞에 이야기를 읽어보면 야곱은이 전부터
계속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라반이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가지 말라고 말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야곱이 떠나지 못하고 라반의 집에서 조금 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이 과정에서 야곱의 재산이 매우 많이 불어나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흐르자 라반과 라반의 아들들은 자신들보다 더 부자가 되어가는 야곱을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누가 느꼈을까요? 야곱 본인이 느꼈어요. 어, 삼촌이 옛날 같지 않아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그렇다면 그 야곱이 그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또 들었을까요? 다시금이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죠. 자신이 힘들게 모은 그 재산을 지키고 싶었을 수 있고 자신에게 눈치를 주고 탐탁치 않게 여기는 그 괴롭게 하는 라바노로부터 아 이제는 그만 벗어나야겠다. 더 이상 못 해 먹겠다라고 하는 그 마음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는 내 조상의 땅 너의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이 말을들은 야곱이 곧장
자신의 아내들에게 가서이 사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레아와 라일도 이제 이곳을 떠나자는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 레와 라일이 하나님께서 야곱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십시오라고 말은 하는데요. 그 이면에는 이제는 아버지 라반으로부터 더 이상 받을 것도 없고 오히려 빼앗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게다가 야곱도 이후의 기록을 보면 라반에게 빼앗길까 봐 두려워 도망쳤다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볼 때 야곱과 그 가정이 라반의 집을 떠난
것은 순수하고 진실한 순종의 마음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마침 그들의 니즈와 하나님의 말씀이 딱 맞아 떨어졌던 거였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그들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자고 말은 하고 있는데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재산을 챙겨서 도망가기 급급한 모양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 여러분이 말씀을 읽으실 때이 이야기를 읽으실 때 어떤 이야기가 하나 같이 오버업되지 않으신가요? 우리가 어떤 이야기가 하나 떠오르죠? 야곱이 과거에 형 에서설을 속이고 형의
모든 축복을 가지고 도망갔던 20년 전에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직 야곱이 예습관을 못 버렸어요. 야어 여러분 야곱이 레어와 라엘에게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한다라고 말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껏 나와 함께 계셨어. 여러분, 야곱이 알고 있었어요. 자신을 이용해 먹기 바빴던 그 라반에게서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 주셨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이토록 많은 재산을 허락하여 주신 것도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속 자신과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야곱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가 아직 주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라반에게 빼앗길 것 같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야곱 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서에게 두려워서 도망쳤던 바로 그때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라반에게서 도망치고 있죠. 하나님이 이제껏 나와 함께 계셨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번에도 나와 함께 하실 거라는 신뢰는 아직 부족했던 거 같습니다. 어, 여러분, 순종과 나의 욕심은 한끝 차이일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내가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고 말씀을 따라가는 것처럼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때로는이 야곱처럼 어떤 나의 니즈, 나의 필요, 내 욕심을 따라갈 때가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진짜 순종, 진짜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그 방법까지도 주님의 사람 다워야 합니다. 그냥 아, 저기 목표점이니까 저기만 가면 돼가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 주님의 자녀다운 방법으로 정직하고 올겁게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회심이 그저 방향만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 길을 걸어가는 모든 삶의 방식, 그 걸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서이 회심에 대해서 이야기하실 때 단순히 마음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삶을 고쳐라라고 말씀하시는데요.이 말씀을 메시지 성경으로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때가 다 되었다. 하나님 나라가 여기 있다. 너희 삶을 고치고 메시지를 믿어라. 우리가 방금 읽은이 말씀처럼 삶을 고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그 모든 방식을 바꾸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바꿔 나가고 고쳐가는 것이 신앙의 성장이고 성숙함이죠. 그런데 아직 야곱에게는이 변화가 미흡했어요. 여전히 옛날에 그 습관대로 자신이 살아왔던 그 방식대로 반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 이렇게 도망치듯 라반을 떠난 야곱 일행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가던 도중에 라반이이를 눈치채고 야곱을 뒤쫓아서 붙잡죠. 야곱과 라반 사이의 갈등이 더 심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하나님께서 그 사건 가운데 개입하셔서 야곱을 라반으로부터 지켜주세요.
라반이 내가 지금 당장 너를 해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다라고 말합니다. 라반과의 갈등이 그렇게 해결되고 이번에는 라반의 축복을 받으며 야곱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렇게 이제 드디어 라반노로부터 벗어나 한 숨 돌리는 줄 알았는데 야곱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쓱하고 스쳐 지나가죠. 누구였을까요? 네. 그렇죠.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할만큼 화가 잔뜩 나 있던 그 형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는 거예요. 아,
이제 라반이란 산을 겨우 넘었는데 또 다른 산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서가 그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분노가 가득찬 상태로 야곱을 치러오고 있다는 신부름꾼의 소식도 듣게 되었어요. 야곱이 또다시 불안해집니다. 또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자기 나은 대로 머리를 막 굴려서 또 다른 해결책을 생각해 냅니다. 우리 말씀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야곱이 길을 떠나서 가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났다. 야곱이 그들을
알아보고 이곳은 하나님의 진이구나 하면서 그곳 이름을 마하나이라고 하였다.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자기 일행과 양떼와 소와 낙타를 두패로 나누었다. 에서가 와서 한 패를 치면 나머지 한 패라도 피하게 해야겠다는 속셈이었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자신 곁에 계신다는 것을 전혀 몰랐던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보내신 하나님의 천사들을 야곱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야곱도 느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야곱이 너무 두려운 거예요. 너무 걱정이 되니까 하나님의 군대인 그 마하나님의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주님을 의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자신의 방법대로 해결해 보려고 어 시도하죠. 성경이 이것을 속셈이라고 기록하는데요. 속셈은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어떤 계산이나 꿍꿍이를 의미합니다. 야곱을 지켜 주시겠다고 친히 찾아오신 하나님을 바로 곁에 두고도 야곱은 또다시 자식 자신의 방식대로 계산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형의
손으로부터 최소한의 어 피해를 입을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여러분,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곱이 이렇게 속셈을 부리지만 또 하나님께 기도도 해요. 하나님 저에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야곱이 아예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있었고 또 여러 관계와 상황 속에서 자신을 도우셨던 그 하나님을 경험한 행적들이 그에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직 야곱의 마음이 약합니다.
하나님만 믿고 온전하게 갈만큼 단단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도도 하지만 불안하니까 자꾸 머리로 다른 수를 계산합니다. 어 이번에는 야곱이 자신의 재산 중에서 에서에게 줄 선물들을 고릅니다. 그리고 이것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눠요. 그리고 한 그룹씩 텀을 두고 에서에게 보냅니다. 야곱이 생각한 거야.이 선물을 하나씩 하나씩 받다 보면 아 형의 마음이 좀 풀리지 않을까? 그래서 내가 마지막에 나타나면 날 반겨 줄지도 몰라. 여러분, 그런데 과연 이걸로에서의 화가 풀릴까요?
최소 20년이 지나지 않 어 지나도 풀리지 않던 분노가 선물 몇 번 받으면 풀릴까요? 저는 아닐 거 같아요.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일상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봐도 그렇죠. 여러분,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합의금 필요 없습니다. 보상금 달라는게 아닙니다. 나는 진실한 사과를 원합니다. 제발 진정성 있는 사과를 나에게 해 주십시오라고 피해자들이 말하죠. 그러면 어쩌면 에서가 원하는 것은 많은 선물이 아니라 동생의 진실한 사과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이 야곱에게 원하셨던 모습도 이런 정직한 모습 아니었을까요? 야곱이 어쩌면 이걸 모르지 않았을 수 있어요. 그런데 두려웠겠죠.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고 하지만 나 진짜 괜찮을까? 나 안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믿고 갔다가 형님 손에 죽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답게 책임지고 영소를 구하지 않습니다. 외면하고 회피하고 다른 꿍꿍이를 내세우며 자신은 도망가 버립니다. 어 여러분 그런데 저는 오늘이 야곱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너무
저의 모습 또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라고 느꼈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우리가 믿지 않나요? 우리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시나요? 알고 있습니다. 입만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선한 목자심이 나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이 고백도 합니다. 그런데 야곱처럼 주님의 은혜를 여기까지 왔다고 고백하면서도 주님이 나를 도우셔야 한다고 간절히 간구하고 기도하면서도 어쩌면 우리도 야곱처럼 뒤돌아서는 갈등할 때가
많이 있죠. 진짜 정직하게 살아도 괜찮나? 내가 먼저 용서하고 다 내어주다가 그렇게 살다가 호고되는 거 아닐까? 지금 이거 준비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거 아닐까? 그때 가면 늦은 거 아닐까?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야곱처럼 주님을 모르지 않지만 두렵고 불안 어떤 삶의 문제, 어떤 갈등이 찾아오면 주님을 먼저 의지하기보다 나만의 다른 속셈, 다른 꿍꿍이를 계산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싫어서도 아닙니다. 방향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주하는 그 현실 앞에서 우리가 여전히 너무 약하고 두렵고 불안하기 때문이죠. 그 문제가 너무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주 놓치곤 하는 거 같습니다. 야곱이 보여주는 모습처럼 때로는 예배하면서도 놓치고 기도하면서도 놓칠 때가 있습니다. 어 누군가는이 야곱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 겨우 생각해는게 선물 몇 번 주는 거야. 진짜 찌질하네. 볼품 없네. 여러분, 그런데 우리의 삶을 잘 돌아보십시오. 우리도 그 문제 앞에 섰을
때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우리도 하나님 보지 못하고 붙들지 못하면 그 문제에만 집중하기 시작하면 밤낮주로 머리를 굴려서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주님이 보셨을 때 네가 나 대신 붙든게 겨우 그거니? 너 정말 그걸로 괜찮겠니?라고 라고 말씀하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서 조금도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라고 단원하기 때문입니다. 어 이렇게 야곱이 두려움에 휩싸여서 어리석은 꿍꿍이만 막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 야곱을 찾아와요. 갑자기 나타나서는
혼자 있던 야곱에게 씨름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한밤 중에 시작된 시름이 동이 틀 때까지 계속 이어졌어요. 야곱이 처음에는 자신에게 실름을 건 그 사람이 누군지 몰랐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다는 것이죠. 어 그런데 여러분 이씨름이 사건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이 사건 이후에 야곱의 모습이 조금 바뀌었다는 거예요.이 씨름 이후의 모습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야곱이 고개를 들어보니 에서가 장정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야곱은 맨 앞으로 나가서 형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끊어 안았다.에서는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앉고서 입을 맞추고 둘은 함께 울었다. 그러면 그동안은 야곱이 맨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거든요. 자기 형 손에 잡혀 죽을까 봐 무서워서 맨 뒤에 숨어서 오고 있었어요. 그런데이 사건 이후에 야곱이 어디에 서서 가죠? 맨 앞에
서서 형 에서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여러분 상황이 바뀌지 않았어. 여전히에서는 400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어요. 야곱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무서워서 어떻게든 피하고 숨으려고 온갖 속셈을 다 부리던 그 야곱이 이번에는 의연하게 맨 앞에 서서 나아가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주님과 실름했던 그 사건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우리가 알 수 있죠. 그렇다면 대체이 사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 다시 한번 성경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될 때까지 실름을 하였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그가 날이 세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때를 썼다. 여러분이 사건에서 일어난 첫 번째 이야기는 야곱이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는 것입니다. 어 개혁 계정에서는 이것을 환도뼈라고
번역하는데요. 히브리어로는 야레크라고 합니다. 야레크에는 환도뼈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의 중심, 힘, 생명이란 의미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하나님께 붙들려서 그 씨름을 할 때 그의 야크 그의 중심과 그의 힘이 다 꺾였다라는 것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그동안 자신 안에 가득했던 그의 중심이 꺾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어떻게든 내 방법대로 계산해서 해결해 보려던 그의 힘이 꺾였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꺾이고 나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기
시작합니다. 죽게 살기로 주님께 매달려서 자신을 축복해 달라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야곱이 이전에도 하나님을 아예 생각하지 않거나 아예 의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어요. 약속도 때때로 기억했고 은혜가 있었음을 분명히 알고 고백하기도 했으며 어려운 순간에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온전하지는 못했죠. 주님을 붙들면서도 내 방법을 챙기는 아주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꾸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곤
했었습니다. 어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를이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야레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온전히 주님으로 채워지지 않고 내 생각과 내 욕심과 내 계산이 섞인 우리의 자기 중심성이 남아 있을 수 있어요.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라고는 하지만 뒤로는 내 힘으로 어떻게든 해 보려고 하는 나의 그 남은 힘 그 야레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야레크는 무엇입니까? 돈, 성공, 인맥 그게 무엇이든 그 레크가 꺾여야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어, 두 번째는 야곱이 자신의 민낯을 직면했다는 건데요. 그 두 번째를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과도 괴로워 이겼고 사람과도 겨로워 이겼으니 이제 내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물으십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여러분, 하나님의이 질문은 진짜 이름이 궁금한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이 아니었어요. 이건 마치 동산에 숨어 있던
아담을 다 아시고도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처럼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신 것은 야곱이라는 그 이름의 뜻처럼 속이고 빼앗는 자로 살아왔던 그의 삶을 직면하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의 낯을 직면하고 제가 야곱으로 살았습니다. 제가 속이며 빼앗으며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십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이제 새로운 정체성,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어, 우리는 하나님과 겨로워 이겼다라고
번역된 한글 성경을 읽지만 사실 히브리 성경으로 보면 조금 더 많은 의미가이 안에 담겨 있어요. 히브리어는 한 단어 안에 여러 가지 의미가 중복되어 있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란는 이름도 야곱의 입장으로 해석하면 하나님과도 사람과도 겨루어이긴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주체를 하나님으로 보고 해석하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사람 하나님과 함께 겨루워이긴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입장에서 야곱을 바라보시면서 주신 그 이스라엘
새로운 이름 새로운 이름에는 그 정체성에는 이제 내가 너를 다스릴 거야. 내가 너와 한편이 되어서 함께 겨루어 이길 거야라고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늘 불안과 두려움에 쫓겨서 속이고 빼앗으며 살아왔던 그 야곱에게 이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너에게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이 주어졌어. 내가 너와 한편이 되었어. 너를 다스리고 승리하게 할 거야. 그러니 그런 사람답게 살아가도 돼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겠죠. 어,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어, 야곱은이 한밤 중에 시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히 붙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삶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야곱이이 이후에 완벽해졌다는 건 아니에요. 여러분,이 이후의 이야기도 읽어보면 여전히 자녀들을 편해하는 등의 부족한 모습들을 보입니다. 완전해졌다라고 말하기는 조금 어렵죠. 그러나 적어도 속이며 도망치던 모습에서 정직하게 나아가는 모습으로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선택이 달라졌고 그의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두려울
수 있지만 불안한 마음이 있지만 주님을 신뢰하며 맨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전히 그의 안에 여러 한계가 있고 약함이 있지만 적어도 이전처럼 숨지는 않습니다. 오랜 시간 야곱이 헤매왔던이 나선형 고리에서 이제 드디어 한 걸음 성장하여 나아가게 된 것이죠. 이전보다는 조금 더 온전해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 여러분 그런데 야곱이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어, 제가이 설교를 준비하면서이 이야기를 정말 여러 번 읽었는데요. 야곱의
비겁하고 못난 나서년 그 고리 사이로 계속 보이는게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이 야곱을 계속해서 찾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실수했는데 또 찾아오십니다. 그 실수를 수습하시고 야곱에게 또 가르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단다. 야곱이 그렇게 잘 가는 거 왔다가 또 두려워서 숨어 버립니다. 또 도망가 버리고 말았어요. 하나님이 그 야곱을 또 쫓아가서 만나십니다. 마하나임 내 군대가 너를 지키고 있단다. 내가 너와 함께 싸울 거란다. 그렇게 야곱을 계속 찾아가고
또 만나 주신데도 야곱이 또 정신을 못 차려요. 그러니까 이번에 또 찾아오셔서 씨름을 거시고 야곱을 붙잡으시고 또 말씀하시죠. 너는 이제 야곱이 아니야. 너는 이스라엘이야. 너는 내가 다스리고 내가 함께하는 사람이야. 너는 이스라엘로 살아야 돼. 이처럼 계속 찾아오셔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시고 또 깨닫게 하시고 또다시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가 무언가 결단하고 우리가 무언가 시도해서 순종해서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맞습니다.
결단도 필요하고 끊임없는 우리 믿음의 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결단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약할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여기 있을 때는 마음을 굳게 먹은 거 같은데 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야곱처럼 두려워지고 불안해질 때가 있죠. 믿음으로 살아보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클레시아에서 나누고 매일 성경 묵상도 하지만 여전히 나의 하루가 시작될 때는 실수하고 넘어지고 나약해서 또 도망가 버리고 싶은 야곱의 모습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의 약함과 악함을
보면 답이 보이지 않아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런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우리를 끊임없이 찾아오시고 또다시 말을 거시고 마음을 만져서 새롭게 하셨던 주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주님과의 신을 마치고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마지막으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곳 이름을 부니엘이라고 하였다. 그가 분위해를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거리며 걸었다. 야곱이 고백합니다. 이곳이 브니엘이구나. 그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끝없이 자신을 찾아오셨던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그 은혜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자신은 도망가고 또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끝없이 붙드시는 그 사랑의 얼굴을 그가 보게 되었을 때 그는 비로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죠. 회심한 마음이 없지 않았고 주님을 끝까지 죽기까지 따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그들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쫓아가기엔 그 결단을 이루어 가기엔 그들이 너무 약했죠. 그래서 주님을 부인하고 배신하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두려워 숨어 있었습니다. 그럴 때 누가 찾아가시죠? 예수님이 다시 그들을 찾아가십니다. 오늘 야곱을 찾아가셨듯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또 먼저 애들아라고 말을 거십니다. 그 주님의 얼굴을 보았을 때 스승을 부인하고 떠난 배신자 같은 자신들에게
여전히 먼저 찾아와 말을 거시는 그 주님의 사랑의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그들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비로서 제자다운 삶을 살아낼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말은 어차피 주님이 다 하실 거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 아닙니다.이 말은 그렇게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얼굴을 보기 때문에 우리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내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모해 보이지만 여전히 두렵기도 하지만 주님이 함께하고
계시니 끊임없이 실수고 넘어진 나를 붙드신 주님이 계시니네 주님이 정과는 제가 바르게 걸어 보겠습니다. 바르게 살아보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용기가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 근니엘를 볼 때 용기를 얻어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 사랑하는 오늘 모든 예배자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주님이 똑같이 찾아오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람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고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나의 마음과 달리 엇나가는 실수와 배신에도
끝없이 나를 찾아 건내시는 그 주님의 얼굴을 볼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랑 앞에 항복하여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회심한 사람답게 그리스도인답게 제자답게 살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의 어떠함을 보지 마십시오. 이제 눈을 들어 브니엘 주의 얼굴을 보십시오. 그분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하시고 마침내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그러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 주님을 믿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걸어가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