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가장 비싼 한 그릇

2026-04-16 (올린 날짜) · 창세기 25장 19~34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눌 말씀은 오늘 메일 성경 본문입니다. 묵상을 하신 분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어 에서와 야곱에 대한 에피소스를 갖고 우리 여러분과 잠깐 메시지를 나누고 싶습니다. 어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제사장 나라 하나님의 구원에 사용되 제사장에 역할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프로젝트 그 시작점이 되는 인물이 아브라함부터였습니다. 그리고 정장이 아브라함에게는 자녀가 없어요. 아브라함에게 주시는 약속은 내가 너를 통해 민족을 이룰 거였는데 정작 아브라함은 자녀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부부 사이 고민은 부림이었어요. 현재 어페는 부림입니다. 근데 아브라함이 부림의 원인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왜냐면 아브라함은 하가를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어 말련에는 그두라를 통해서 또 자녀를 낳잖아요. 이삭 이후에도. 그러니까 아브라함보다는 사라에게 부림 증상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 부부에게 약속하셨고 약속하신 대로 테여셔서 약속의 아들 이삭을 주었습니다. 그래서이 약속이 아브라함에게서 이삭에게로 이어집니다.

그 이삭이 이제 40세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근데 또 문제가 있어요. 무슨 문제죠? 여기도 부림인 겁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아이런이죠. 어 하나님께서이 가정을 통해서이 어떻게 보면이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의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는데 어 정작이 약속의 아들이 이삭도 아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삭이이 일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네 한번 넘겨 주시겠습니까?네 네 한번 한번 읽어 봅시다. 시작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안에 이가니네 우리가이 말씀 묵상을 할 때 이런 말씀을 봤을 때 우리가 자칫하면 놓치기 쉬운 포인트가 있는데 왜냐면 아브라함은 그 부림의 기간 동안 굉장히 많은 일이 기록되기 때문에 아이 불림의 시간이 굉장히 길구나라는 것을 아브라함에 쉽게 이해합니다. 근데 여러분 이삭에게서는 이렇게 한 줄로 나와 있으니까 우리가 놓치기 쉬운했는데 이삭이 지금이 어 자녀를 달라는 기도를 얼마 정도 하신지 아십니까? 네이에요. 40세부터 기도하는데이 부부에게 아이가

생긴 응답이 온게 60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25년 걸렸죠. 75세. 어 어떤 그 약속을 받고 100세니까. 근데 이삭에게는 뭐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없어요. 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이삭은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20년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뭐 꼭이 기도 제목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 여러 가지 기도하는 제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뭐 기도해 보시면 우리가 많이 알겠지만 어떤 부분은 한 달에만 어떤 기도 응답이

없어도 우리는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20년 동안 어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어쩌면 나에 대해서 끊어지는게 아닌가? 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나? 이런 어 공포 어떤 불안을 20년간 기도로서 이겨낸 것입니다. 어쩌면이 시간이 이삭의 에피소 성경 많지 않지만 이삭을 향한 훈련과 연단의 시간이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20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이 가정에게 드디어 아이를 주십니다. 리브가가 임신을 합니다. 근데 두 배로 주시죠. 네.

그래서 쌍둥이를 주십니다.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에서와 야곱이죠. 그리고이 임신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어 그런 시작이 됩니다. 바로 두 형제의 갈등입니다. 22절 말씀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데 는 상를는데 그들이 피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드가는 이렇게 괴로운 자야 내가 어떻게 겠는가 하면서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님께로 알았다.네 네. 하나 넘어갔는데 아 아이 없어서 고민했는데 아이가 생각 너무 좋았는데 이번에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함께 어쩌면 이것이 리브정에서는 20년 만에 힘들게 얻은 쌍둥이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혼란함으로 어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때 리브가는이 문제에 대해서 주님께 나아가서 내가 기도하자라는 믿음을 보입니다. 리브가 또한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죠. 아, 그러면서 이제 이후의 이야기에 보면이 에서와 야고보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들이 드러납니다. 특별히이 부분은 하나님의 주권적 관점에서이 기록이 강하게 나타나는데요. 23절 말씀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주님께서 그에게 하셨다.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을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망할 것이다. 형이 인생을 섬길 것이다. 네. 우리는 성경에서 종종 이런 기록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면은 시작도 안 된 일인데 하나님은 그 끝을 알고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 이후에 일어나 이들의 삶의 어 결과가 정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 이미 다 정해진 건가? 우리는 그냥 그거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이 이 질문이 어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면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왜냐면 잘못 해석하면 우리는 아무런 선택도 할 수 없고 우리의 운명은 다 정해져 있으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믿음조차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어 천국과 지옥에 갈 사람을 다 결정해 놓았다라고 한다면 그거 잘못 해석하게 되면 그럼 우리의

믿음이 뭐가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거에 대해 다루려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야 되기 때문에 아주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어제가 있고 우리 오늘 살고 그다음에 내일 이렇게 한 방향으로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시간을 만드신 분입니다. 조금 쉽게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게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씩 보면서 따라가고 이해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미 다 보고 계신 분과 같습니다. 우리의 시공간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그것 상조하고 운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 성경에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내가 억지로 그렇게 만들어겠다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이 삶에서 선택하며 나아갈지 그것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강적은 하나님의 주권은 우리의 삶을 조종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성경상 위배되잖아요. 우리의 모든 선택과 흐름을 아시면서도 그 가운데 일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사실 성경이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강제로 만드시는 분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주님께 속한 어 역사가 된다라는 것이 우리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과 어 우리 사이의 이야기입니다. 에서와 야곱 이야기 안을 보면 하나님은 태중에서 미리 말씀하셨고이 이후의 이야기를 보면 결국 에서와 야곱은 그러나 자기의 삶에서 각자의 선택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모여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가 됩니다. 그 내용이 이제

뒤에 나온 내용들입니다. 27절 28절을 한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이 되어서 그고 야 성령이 사람이 되어서 집에서 살았다 사전에서 사장의 을더니를 사랑하였고이를 사랑하네이 두 아들이 캐릭터가 확연하게 달았습니다. 아 요즘에 마침 이것을 이해하기 너무 좋은 언어가 있잖아요.에서는 에서는 태토남, 야곱은 에겐남의 전형입니다. 네. 딱 그 전형이었어요. 네. 그 아버지는이 테토남스러운 에서를 사랑했고 리브가는 좀 애남스러운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던 이제 어느

날의 일입니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이날은 이들의 운명을 바꿔 놓은 날이었습니다. 야곱이 죽을 끓립니다. 야곱이 죽을 끓리는데에서는들에서 돌아와서 마침 너무 피곤하고 굶주인 것입니다. 에서가 마치 당연하듯이 야곱에게 팥죽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됐뜸 아 그럼 형이 만약에 장자의 명분을 나에게 팔면 내가 팥줄 형한테 줄게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갑자기 왜 이해가 튀어나왔다고 생각하세요? 왜 갑자기 팥죽 먹고 싶다는 얘기에 장자의

명분에 대해서 말한 일이 생겼을까요? 제가 봤을 때는 어 야곱에게는 항상 이것에 대한 어떤 갈망함 혹은 서운함 이게 자리잡고 있었던 거 같아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지금 집에 있는데 어떤 어 아들이 둘이 있는데 둘째가 집에서 첫째가 아니어서 겪는 서러움이 늘 있다고 해 봅시다. 예를 들어서 뭐 아버지나 할아버지 만나도 항상 기도해줘도 형 먼저 해야 돼. 막 이렇게 하거나 이런 상황에서 이제 해 보세요. 우리 둘째는 항상 내가 동생이라서 뭔가 억울하다라는 마음이 어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정작 둘째는 그런 마음을 가질지 모르지만 첫째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면 나면서부터 첫째의 권리를 누리고 있으니까 거기 그게 없는 상황에 대한 서러움을 전혀 모르니까 그 가치를 모르는 거죠. 에서에게는 장자의 명분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명분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왜냐면 자신은 그냥 날 때부터 장자니까요. 장자니까 내가 설령 너한테어야 그래 네가 형해라고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겠어라는 마음이 있었겠죠. 굳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적 권리 따이를 추구하는 것은 태토나지 않죠. 나는 영적인 어떤 권보다 지금 당장 맛있는 팥죽. 이게 에서였다는 것입니다. 야곱도 의도적으로 애설를 꼬셔서 장자의 명분을 얻어내려고 뭐 판을 짜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야곱 안에 있던 장자가 아니라서 갖고 있던 아쉬움이 당연하듯 자기에게 팥죽을 요구하는 애소 앞에서 튀어나온 거죠. 그런데 정말 에서가 너무 가볍게 여기면서 이것을 팔아넘길게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쩌면 그런 모습 속에서 야곱은 더

화가 나을지 몰라요. 그래서 아예 쇠기를 받습니다. 그 내용이 33절부터입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야곱이 말하였다 나에게 구하시고 그러자 여호수와 야곱에게 받아들의 리를 하다 야곱이 과을에 주니 에서가시고 일어나서 나갔다에서는 이와 같이 바다들의 권리를네 우리는 알고 있지만이 이야기는 둘만의 은밀한 에피소드입니다. 어쩌면 에서에게는이 이후의 사건이 벌어지기까지는 기억도 잘 안 나는 장난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이 일은 하나님께서 모두 보고 계신 일이었고 이들의

태도는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이 모든 에피소의 결론으로 에서가이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라는 것으로 방점을 찍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서에가 보면이 사건을 두고 에서서를 평가하는 기록이 하나 있어요. 이렇게 평가하는데요. 12장 히브리 12장 한번 읽어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한 사나 신기 상을 파랑의 저와 같은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네. 여러분 주목할 것이 뭐냐면 음식 한 그릇의 장자권에 팔아넘긴 에서데요 앞뒤에 있는 내용이에요. 뒤에서는

그래 속된 사람 혹은 개혁계정 망령된 사람이라고 읽었고 있고 앞에는 그와 상응하는 병렬적 표현으로 뭘 말하고 있냐면 음행하는 자를 말하고 있어요. 그럼 왜 음행과 애소 행동이 나란히 나오는지 아십니까?이 이 두 가지 행동은 모두 거룩한 것을 갑싸게 바꾸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고 중요한 것을 순간적인 욕망과 바꿔 버리는 태도의 의미에서 둘은 같습니다. 세 번째 속된 사람이라고 번역한 단어 개혁계정 망령된 자인데이 뜻은 거룩함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에요.

음행하는 자가 그렇죠. 거룩함의 가치를 모르고 자기 뜻대로 망령대히 사용합니다. 에서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행하는 자가 망령된 자이고 에서가 망령된 자입니다. 물론 야곱의이 행동을 성경이 지지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야곱은 어쨌든 형을 사랑하는 일에 미흡한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 안에서도 다뤄야 될이 부분을 야곱의 인생 내내 다루십니다. 아시겠지만 그 뒤에 이제 묵상하겠지만 이런 야곱을 인생 가운데서 계속 거울 치료하십니다. 속이고

빼앗고 계산하는 그의 모습을 속이고 빼앗고 계산하는 자를 통해서 계속 다루어 가십니다. 야곱을 사용하시기 사용하시되 깨뜨리고 바꾸어 가신 내용이 이제 우리가이 이후에 묵상할 내용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 정리하면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원했지만 하나님의 어떤 축복을 원했지만 하나님 안에서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어떤 그 역할을 원했지만 하나님의 방식으로 얻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다라고 우리가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에서는 에서는 또한

당장의 욕구를 선택하면서 하나님의 축복 부르신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버렸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너무 가벼웠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어쩌면 우선순위에 없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좀 봅시다.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에서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었나? 어쩌면 여기서는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저 생각합니다. 수많은 교회 안에 있는 모습입니다. 당장 하나님 안에서 예배하였다고 말을 하지만 아주 사소한 모든 것에서는 현실이 더 중요한

사람. 현실이 더 현실을 추구하는게 더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니 조금 뒤로 밀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말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이 사실상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고 삶에서 그렇게까지 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 그보다는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현실의 문제가 훨씬 크고 다급하고 우선된 사람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매일매일 선택을 합니다. 아침에 묵상을 하거나 묵상

안 하거나도 선택이죠. 묵상하더라도 말씀을 붙잡을 것인가? 그냥 오늘 말씀은 좀 모른 척 넘어갈 것인가? 예배를 우선할 것인가? 다른 것을 먼저 할 것인가? 어떤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마음대로 내가 행할 것인가? 아니면 내 감정대로 행할 것인가? 그 선택 하나하나가 겉으로 보기에는 어쩌면 팥죽 한 그릇처럼 사소해 보입니다. 하지만 오늘 에서와 야곱을 하나님께서이 은밀한 에피스토 가운데 주목하고 바라보고 계셨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그 모습을 보고 계신다고 저 생각합니다.

우리의 선들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애설를 바라보시며에서는이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몸을 바라보면서 우리 가운데도 아, 아직 너는 아직이 친구는 내가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구나라고 얘기할지도 모른다고 저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 대하는 태도 내 삶의 하나님과의 관계성, 연결성은 어떻습니까? 한 장 넘겨 주시면 여러분은 지금 혹시 무엇을 가볍게 여기고 무엇을 놓치고 무엇을 무시하며 덮고 지나가고 있습니까? 다시 질문하자면 여러분의

팥죽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자꾸 나에게 너무 중요하고 나에게 너무 시급해서 자꾸 이걸 놓 이걸 잡느라 하나님을 혹시 뒤로 미루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억지로 끌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선택을 아시는 분이고 모든 선택을 통하여 일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뭘 선택하느냐? 내일의 삶 뭘 선택하냐?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이 시간 우리 다시 한번 주님께 내 마음을

정렬하고 하나님 하나님을 위한 선택 하나님의 마음을 드리면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