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주일 · 성찬예배

공동체를 세우는 법

2026-10-04 · 에베소서 4장 21~29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어 우리가 어제 두 번의 온수 예배를 드여서 하나님의 가족이 무엇인지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아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그 믿음이 우리에게도 이어져 가야 얘기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어 사황수 캠프의 말씀으로는 우리가 그런 그런 원리만이 아니라 아 실제적으로 우리가 좋은 공통체에 어떻게 이루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 그 말씀 한번 다뤄보려고 합니다. 에베소 4장이 바로 그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핵심

말씀이 4장 29절인데 한번 같이 한 구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을 바람이 있으면서 믿는 사람에게 가라시고네 뭐에 대해 다루 말입니다. 여러분 공동체 생활해 보시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아시게 될 거예요. 저는 교회를 세관에 있어서 말이 너무나 중요하게 사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교회 안에 있는 갈등은 한 뭐 2분의 이상은 대부분 다 말에 대한 것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좋은 교회, 좋은 공통치는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좋은 방식으로 대하고 좋은 방식으로 서로를 세워가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서로를 잘못 대하고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께 좋은 신앙이어도 서로에 대해서 잘못 말하기 시작하면 얼마든지 공동체는 병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우리 사임의 교회가 좋은 교회 좋은 공동체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언제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경계해야 합니다. 좋은 공동체로 성장해 갈 것인가 아니면 나쁜 공동체로 병들어갈 것인가? 어 그것을 위한 실제적인 우리의 행함의 두부가 말입니다. 나쁜 공동체의 근원에는 나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이 말씀만다 보면 굉장히 도덕적인 교훈이 느껴질 거예요. 그냥 나쁜 말 하지 마. 좋은 말 해야 돼. 이런 얘기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말씀은 그보다 깊습니다. 문맥을 살펴봐야 되는데 21절부터

한번 내용을 천천히 한번 보겠습니다. 한번 같이 한번 읽어 볼까요? 시작. 여러분이 예수 안에 있는 시대로 그분에 관해서 듣고 또 그분 안에서 가르치를 받았으면 여러분은 지난날에 생활 방속대로 황하는 자가 나서 그 사람을 서버리고 마음의 하나님의 상을 따라 자로과의 충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이 에베소서예요. 여러분이 말씀을 바울 선데 누구에게 쓴 겁니까?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쓴 성도들에게 편지를 교회 공동체에 보낸 겁니다. 무릇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서 일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뭐 사기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같은 그런 것이죠. 이제 회심하여 변화된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럼 그렇게 살아간다는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또 이곳에 예배하고 아마이 영상을 오늘 온라인으로 드리는 분들도이 영상 보게 될 텐데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하나님께서는 성도라고 이름하셨습니다. 성도라면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오늘이 말씀의 첫 번째 기초인 거예요. 옛사람에게는 이전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도가 되기 전에 여러분의 습관들이 있고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제가 말한 성도는 교회에 들록한 걸 말한게 아니라 내가 진짜 하나님에서 얻을 새로운 정치성을 말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판단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그런 때의 삶의 방식도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교회와서 단순히 천국과 신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식이

이제는 새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어요.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너는 건 자기 어 참된 말하십시오. 우리는 저와 몸의 지체입니다. 우리가 뭐라고 말하냐면 한 몸 안에 있는 지체예요. 누구의 몸이죠? 그리스도의 몸 안에 속한 거예요. 여러분이 성도가 되고 여러분이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있었던 것은 여러분 한 사람을 모여서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교회 공동체 이루고 있으니까 이제 여러분이 서로 안에서 거짓해 버리고 함께

참된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님이 우리 묶어오셨으니 우리가이 안에서 이런 것을 기억해야 된다. 왜냐면 우리의 정체성이 바뀌게 되면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먼저이 말에 대한 교훈이 한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회심을 다루고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이 말입니다. 그러므이 구절은 개인의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는 거예요. 앞서 것처럼 우리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예요.이어서 26절부터

그 기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바로 외더라도 죄의 내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지도록 여물을 풀고 있지 마십시오. 마에게 등을 주지 마십시오. 무질라는 사람 다시는 하지 말고 하여 이제 ყვე하게 버려 하십시오. 그하여 것이 하십시오. 네. 정체성을 말하고 말에 대한 교훈을 말하고 뒤어서 화를 다루는 문제,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되는 문제, 누군가 돕고 나누는 문제를 말합니다. 왜냐면 이것이 다 새로운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를 따라 닮아갈 때 나타나는

우리의 변화된 삶의 방식,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이전까지는 이렇게 살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이렇게 살지 않은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삶의 정체성을 배신하고 살아가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왜 해야 되냐 모르냐면 이것을 누가 원하시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에요.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을 구속하셨고 여러분의 삶을 바꿔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내가 주인되어 살던 상태에서는 내 방식대로 살아도

되지만 이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29절이 주어지는 거예요. 한 번 더 29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부르 더러운 말은 너희 입학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해라. 아까 세 번역에서는 나쁜 말로 나왔던게 개혁 계성인데 뭐라고 나왔어요? 더러운 더러운 말. 말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거예요. 하나는 더러운 말이고 하나 뭡니까? 여기 선한 말이에요. 뭐가 있어? 더러운 말이고 뭐가 있어요? 선한

말이. 선한 말이 있어요. 그럼 내가 더러운 말이 내 입밖으로 나오려고 하면 내가 그리스도만 어떻게 해야 돼요? 네. 입을 차죠. 네. 네. 내 안에서 그게 나오고 있으면 내가 지금 그리스도가 기뻐하지 않는 하고 있구나라고 반응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회심했다고 하면 회심했다고 하면 그럼 여러분 무엇이 변해야 된다고 말하면 우리가 제가 기본적으로 쓰는 말이에요. 회심하면 시간과 에너지와 물질을 쓰는 나의 주인이 달라는 곳이 말을 하잖아요. 근데 여러분 엄밀히 말하면

시간과 에너지와 물질은 형편에 따라서 완전하게 똑같이 주어져 있지 않은 부분들도 분명히 있어요. 각 상황에 따라서 그것의 주권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값이 다를 수도 있다는 거예요. 특히 물질은 그럴 수도 있고 건강에 따라서 내 에너지 쓰는 것도 누구나 애 더 많이 쓸 수 있고 누구는 에너지를 조금 쓸 수 있는게 최선이고 다를 수 있어요. 근데 여러분 말은 어떻습니까? 말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고 말은 누구나 그 안에 똑같은 책임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심했다면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드러나는 자리여야 합니다. 사랑 여러분 여러분은 회심한 이후에 말이 달라셨습니까? 회심한 이후에 내가 말할 때마다 지금 내가 그리스도인밖에 말하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이게 다른 욕을 안 하고 뭐 분어 우리가 더 고민해야 될 부분이이 말씀 안에 있는 거예요. 말은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말을 합니다. 가족에게도 말을 하고 교회 안에서도 말을 하고 사역하 말하고 직장에서도 말하고 누구가에 대해서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근데 우리의 입술을 우리가 점검았을 때 복음이 정말 내상을 다스리고 있는가? 하나님 나라가 내 정말 일상 안에 통치로 임하고 있는가? 내 말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말이 달라지고 있는가? 내 입술에 파수꾼이 세워져야. 입술에 파수꾼이 세워졌다는게 뭐예요? 근데 그게 그리스도께서 내 입술의 주인이 되어 있어서 내 입술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을 하지 않도록 파수꾼이 세워져 있는 그래서 내가 단순히 아까 욕을 하느냐 안 하느냐이

넘었어. 내가 하는 말이 사람을 살리고 있는 내가 하고 있는 말이 사람을 죽이고 있는가? 내가 하고 있는 사람이 힘을 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마음 상경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는가? 공동체가 힘들게 하고 있는가? 이런 복음들이 있어야 된다는 복음이 내 삶을 다스린지 없는 말에 있어요. 오늘 본문의 말씀이 간주히 야 나쁜 걸 하지 마라는 부정 명령만 있는게 아니에요. 무엇 하지 말라라는 것은 부정 명령 소극적인 명령이죠. 여기에는

적극적인 긍정 명령이 있어요. 뭐라고 나왔냐면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이 네가 말로서 공동체 안에서 관계 안에서 덕을 세운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선한 말을 하라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일에 우리의 말이 사용된다는 거예요. 말이 무언가를 세울 수 있다는 거예요. 무엇을 세울 수면 한 사람을 세울 수 있고 관계를 세울 수 있고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은 무너뜨리기 바랍니다.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관계를 무너뜨리고 공동체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가끔 말에 대해서는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통치를 받는 건 통치를 받는 거고 말은 뭐 레플한 대로 내 원래대로 하는 거지. 말의 책임감이 약한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아, 그냥 한 마리야. 아, 사실이잖아. 뭐 내 생각도 말하면 풀린데. 아, 난 틀린만 안 했어. 여러분, 이거는 지금 성경이 원하는 걸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네가 하고 있는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게 아니에요. 성경은

뭘 묻고 있는 거냐면 그거보다 더 깊은 질문이에요. 한번 띄워시겠습니까? 한번 읽어 보세요. 시작. 너의 말은 사람을 세우고 있느냐? 너의 말이 나에게 네. 사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에 말하는 너의 어떤 표현이 그것을 듣는 사람을 세워가고 있느냐? 너의 말이 다른 사람 은혜가 되고 있느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은혜를 누리냐는 말이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예요. 여러분의 말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말에도 회심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역사님에게 한번 이렇게 말해 주세요. 우리의 말에 회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나는 원래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는 핑계예요. 왜냐면 원래 나를 주장하는 것은 내가 예수님에서 변하게 새로운 사람이 되었던 것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어서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이 회심을 다른 말로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거듭남이 뭐예요? 다시 태어난 거예요. 여러분, 아기가 부모로부터

말을 배워 가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회심했으면 다시 태어났으면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말하는 법을 어떻게 해야 돼요? 배워 가는 거예요. 그래야 다시 태어난 겁니다. 아니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 그 옛사람대로 살아가겠다는 거예요. 우리 다시 태어났다면 내가 이제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지 그래서 우리가 말해 보면 아이 사람은 안 태어났구나. 아이 아직이 사람 아기구나 아이 사람은 그래서 닮아가고 알 수도 있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오래했다고 성숙한

것입니까? 신앙생활을 연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 우리는 어떤 말을 배어가야 될까요? 오늘 말씀은 말하고 있죠. 당신의 말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당신의 말은 누군가를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의 말은 누군가를 일어나도록 합니까? 당신의 마음은 누군가를 사랑나도록 합니까? 아니면 당신만이 누군가를 돌이킬을 도와주고 있습니까? 반대로 누군가 당신의 말 때문에 마음 아프고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저 아무렇게나 내가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공동체를 세우는 법이 오늘 죄송했는데 공동체 세우는 일이 거창한게 아니에요. 교회의 어떤 직분을 맡아야만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배운 대로 내가 공동체를 향해서 누군한마디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한번 따라해 볼까? 고마워요. 고마워요. 잘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어요. 힘들었겠네요. 힘들었겠네요. 함께 기도할게요. 함께 기도할게요. 당신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당신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씩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로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술에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의 분위기는 건물이 만드는게 아니에요. 프로그램이 만드는게 아닙니다. 결국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해하고 어떻게 이야기하고 우리가 아무리 에클레시아라는 어떤 것을 만들어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세워가고 있느냐 이것이 공동체의 분명 교회를 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말이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들 수도 있고 한 사람의 말이 공동체를 힘입하지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자원은 여러분 뭐라고 말하냐면 이렇게 말해요. 따라볼까? 죽고 사는 것이 죽고 사는 것이 힘에 관련된다. 힘에 관련다. 다시 한번 29절 깨우시겠습니다. 29절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가 되는 말을 하라고 명령하는 거예요. 내 말이 분명히 뭐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은혜가 될 수 있다는 거. 내가 거의 한 마디가 그만큼 힘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말한 한 마디 통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이 은혜를 그 안에 노릴 수도

있어요. 당신에 있어서 우리 공동체가 든든합니다. 하나님 당신께 일하고 계신 거 같습니다. 이런 한 마디가 누군가를 다시 앞에 하나님께 세워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이 예배 안에서 우리의 입술의 주인이 누구인지 다시 기억합시다. 우선 우리 예수의 주인이 내가 아닌 고백합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하는 것이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방법이 아니라 것을 우리가 고백합시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기뻐하시는 말에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멘.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예요.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뭐라고요? 순종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행하셨던 것처럼 나의 말도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살릴 수 있는 말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부터 해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계 가족 여러분, 좋은 공동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로를 세우는 말, 서로를 살리는 말, 서로에게 은혜가 되는 말이 쌓일 때 만들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마음에 담고 내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돌이힘이 있다면 회개도 하시고 우리 모두가 내가 더욱더 그리스도의 말하는 법을 배워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대하는 방송에 배워가서 내가 회심했다고 말하고 거듭다 말하는 내가 말뿐이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입술부터 내가 바꿔 나갈 수 있고 그렇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이 될 수 있기 원합니다. 내가 있는 곳마다 사람이

살아나고 내가 있는 곳마다 공동체 함께 세워져 가는 그런 새로운 삶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구합니다.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