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사경의 준비 기도의 기간 이사야 말씀을 가지고 함께 말씀을 보고 있는데요. 어 오늘도 함께 이사야 말씀 그 두 번째 메일 성경 본문으로 어 말씀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우시아 왕이 다스리던이 시기에는 어, 블레셋을 포함한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이 남유다의 영토는 넓어지고 또 암몬에게 조공을 받는 등 국가의 안보는 완벽하게 다져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한마디로이 시기에 남유다는 엄청난 나라였습니다. 어 이뿐만이 아니라 홍해로 이어지는 엘이라는
한구를 재건해서 무역을 장악하면서 나라에는 은과 금이 넘쳐났고요. 농업과 토목 또한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즉이 본문이 쓰여진이 시기는 외교적으로 봤을 때는 전쟁 걱정이 없었고 나라 안에서 봤을 때는 나라의 경제가 활성화되었으며 왕의 리더십은 굳건했던 남유다 최고의시기 전성기였습니다.이 이 당시 남유다를 향한 세상의 평가가 어땠는지 역대하 26장 말씀에 나와 있는데요. 우리 역대하 26장 8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모 사람들이 우시아에게 말씀에 우시아가
매우 강성하여 유의 애국 변방까지 더라. 네. 우시아 이름이 매우 강성했고 그의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고 어 세상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이 같은 시기의 남유다를 본 하나님의 시선은 어땠는지 볼 건데요. 과연 하나님의 시선 평가 또한 세상의 평가와 같을지 아니면 다를지 이렇게 장성한 남유다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셨는지 오늘 본문 말씀인 이사야서를 통해서 한 번 더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실하더 성에 어찌하여 장비가 되었고 성가 거기에 천만하였고
공가 불 가운데 거하였더니 이제는 살자를 보이로다 내 눈은 거기가 되었고 내포도에는 물이 섞다네 하나님은 남유다를 바라보면서 이전에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고 정의와 공의가 거하던 그곳에는 살인자들만 남았다고 분노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남유다를 향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들이 과연 어떤 죄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향해 이런 평가를 하셨을까요?이 이 시기에 남유다 백성들이 지었던 가장 대표적이자 뿌리깊은 죄는 바로 영적 간음입니다.
남편이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의지해야 했지만 세상의 풍요를 바라면서 순전했던 그 은혜는 탐욕이라는 찌꺼기를 섞어놓고요. 향기로웠던 그 포도주에는 물을 섞으면서 타협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만을 순종하면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고 또 세상에 하나님의 향기를 나타내면서 살아야 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동시에 이들은 세상의 풍요까지 잡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근데 또 다른 이성을 제가 만나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제 제가 여러분들한테 아 그래도 저는 제 여자 친구랑 데이트를 더 많이 해요. 그리고 집도 데려다 주고요. 영화 나오면 영화도 봅니다. 이러면 여러분들은 저한테 뭐라고 하시겠어요? 다음 말을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까먹었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남유다가 딱 요런 저 같은 행동을 뭐 이거보다 물론 더 큰 영적 간음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요거 저만 봐도 나쁜 사람인데 이런 행동을 남유다가 짓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도 말했던 것처럼 이들이 하나님도
섬겼어요. 하나님도 섬겼다 보니까 그들의 신앙생활은 유지가 됐고요. 예배 또한 유지됐습니다. 어쩌면 나라가 아까 말한 것처럼 더 부요해졌고 잘 잘 사라졌기 때문에 예배의 환경 소리 이런 것들은 더 화려해지고 풍성해졌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들의 중심이 온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분명하게 부패해지고 망가져 갔습니다. 어 여러분 하나님은 정자이십니다.네 창조주이십니다. 믿으시죠? 아멘. 그래서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우리의
마음을 가장 먼저 보시는 분입니다. 그들의 예배가 부유해진 그들의 예배가 겉에서 볼 때는 눈부신 형식의 짜임새 있고 풍성한 예배였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마음다에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정성다에서 결단하지도 않았고요. 목숨다에서 순종하겠노라 다짐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확신하며 그들의 예배가 변질되고 부패되었다고 말씀드리는지이어서 이사야 1장 23절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고들은 대악하여 모두가 착하며 다 내를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순하지 아니하며과의 사를 수하지 아니하는도다.네이 말씀을 얼핏히 보면네 고관들이 폐역했다. 그래서 고관들의 죄를 고발하는 거 같지만이 본문은 사실 사회 전체가 죄로 가득해져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에 목사님께서 예수님의 언약 또 아담의 언약을 설명하시면서 대표성의 원리를 설명해 주셨는데 기억하시나요? 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왕과 고관들은 그 백성들의 대표였고 백성들은 이들을 바라보며 롤모델로 살았고 이들처럼 살아야 내가 올바르게 사는
거야. 잘 사는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이 고관들과 똑같이 살았습니다.이 말은 나라 전체가 폐역하고 도둑질을 하며 뇌물을 사랑하고 이득을 뒤쫓아 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지만 당대 모든 약자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에 그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날 어 우리도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하고 그 믿음을 고백하지만 삶에 가서는 또 내 직장에 가서는 아 나라 정책이 이런데 내가 어떡해 어쩔
수 없어 다 이러고 사는 걸 이라며 합리화와 타협을 하고 또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매주 배우고 또 여러 가지 양육이나 교재를 통해 잘 알고 또 우리가 함께 공동체가 모여서 그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그 여호와를 높여드리지만 나의 삶에 돌아가서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세, 이미 변해버린 나라 탓세, 나라의 정책 탓에 이미 변질되어 버린 나의 직장과 나의 주변 사람들을 탓에 세 가난한 자를 돌보야 되는 것을 우린 알지만 정의롭게 살아가야 되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내가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온 마음을 집중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 이처럼 남유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남유다 백성들에게 영적 간음이라는 죄에 그 뿌리가 깊어졌고 예배는 있었지만 그 본질이 부패되었으며 가득하던 그 정의와 어 공의가 사라진 불리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즉이 당시 남유다는 앞서 봤던 그 세간의 평가처럼 위대하고 멋진 널리널리 퍼진 나라가 아니라 가장 불쌍하고 가장 생명력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역시나 그대로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들을 대하시는지 다음 말씀을 통해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스라엘의는 자가 말씀하시되 투수가 내가 장사 너희 대적에게 보하여 내 마음을 하겠고 내게 보호하리라 내가 또 내 손을 내게 들려 내거기를 불로 짓이 청년하게 하며 내 혼자 다 제하여 버리고 내가 내 집들을 처음과 같이 내려와 같이 회복할 것이다. 한 후에 내가 그의 신한 도이라 불리라 하셨나니 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고백한 것처럼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이십니다. 그럼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이런 앞서 남유다를 바라보며 분노하십니다. 우리가 읽은 24절에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는 하나님께서 분풀이를 하여 죄를 끝장내 버리겠다는 무서운 선언입니다. 저는 24절 말씀을 계속해서 보면서 순간 저도 속으로 와 이스라엘 진짜 큰일 났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에게 보흥하고 원수에게 보복한다는 것이 당연히 그들을 공격하고 잘못된 것들을 없애서 소멸시켜 버리겠지라고 저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제가 살고 있는이 세상에서는 약한 자들이 강대국을 선지 타격하면 강대국이 보복하고 그 나라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 본 하나님의 보음과 보복은이 세상의 것들과는 달랐습니다. 25절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손으로 그들의 찌꺼기를 ઝ물로 씻듯 녹여 청결하게 하고 혼잣들을 다 제거하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부패하고 망가진이 남유다 백성들을 내쳐야 할 자들, 버려야 할 자들, 없애야 할 것들로 보신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고쳐야
할 나의 아들, 딸들로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우상숭배하고 영적 간음을 저지른 그들을 보면서 분노하셨죠. 하지만 그들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고쳐 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처음과 같이 회복시키셔서 창기가 되었다고 말하신 그 성읍을 다시 한번 의의 성읍 신실한 마을로 돌이키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는 변함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갑없는 그분의 크신 은혜입니다. [콧방귀]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여러 환경과 상황 탓에 어쩌면 핑계 탓에 타협을 하면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죠. 우리는 주일에도 또 이렇게 수요일에도 각종 기도회에도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의 이름을 수없이 높여 드리지만 세상을 갔을 때는 다시 한번 그곳에서 타협하며 살 때가 많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나와 함께할 수 없다. 너희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후에야 그때 비로소 나와 함께 할 수 있다. [콧방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을 밟고 디디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는 구별되며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수님만을 따라 살아가며 그 하나님의 향기를 드러내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원하시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정화시키려고 불 가운데로 때로는 던지기도 하고 꺾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의 가치관, 나의 생각들이 불타고 꺾이면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고 온다의 그분을 찬양하고 결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아프고 눈물나는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우리를 자신에게로 돌이키시려는 우리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려는 그 하나님의 수술 때 하나님의 수술 시간이라는 것을 믿으며 우리는 나의 몸과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 모두 꺼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공동체가 하나님도 좋고요. 다른 것도
좋아요.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아니라 어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당신 한 분이면 됩니다.이 이 고백이 예배 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주일뿐만이 아니라 월요일 날도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되기를 어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