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깊은예배

오라, 나와 교제하자

2026-07-16 (올린 날짜) · 이사야 1장 1~20절 · 강정규 목사

아래 글은 유튜브가 자동으로 받아쓴 자막입니다. 사람이 옮겨 적은 것이 아니라 기계가 들은 것이라 잘못 적힌 낱말이 섞여 있습니다. 설교를 찾고 되짚어 보는 데 쓰시고, 정확한 내용은 위 영상으로 확인해 주세요.

제가 잘한 교회는 이제 아버지가 목회하셨던 그 교회는 어 부흥회가 있었어요. 근데 부흥회가 교회에 가장 큰 행사였어요. 매월 2월 달 정도에 했었는데 아 큰 행사였는데 그 큰 행사 앞들고 참 이것저것 많이 했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제 기억에 남는 거는 대청소를 꼭 했었죠. 이렇게. 그래서 대청소로 그냥 이게 대충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교인이 나와서 진짜 수세미도 있고 벽까지 막 이렇게 다 닦고 막 그렇게 모토가 땅바닥에 떡이 떨어져도 주어 먹을 수 있 정도로 하자

막 이렇게 하면서 했었는데 저는 그때 그게 뭔지도 모르고 맨날 가서 이렇게 같이 하고 이렇게 했었는데 아 지금지나 보니까 아 그게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렇게이 잔치를 우리가 함께 준비하는 거구나라는 것들을 좀 어 생각나게 됐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또 그것을 위한 준비를 가장 통해서 어렸을 때는 시키는 대로 가서 전단지 뿌려 그러면 전단지 뿌리고 뭐 하고 이렇게 했지만 우리가 오늘 이번에 뭐 우리는 이제는 좀 시대가 변해서 그렇게 하지 않지만 우리가이 5일간의

준비 기도를 통해서 이곳에 있는 분들이 먼저 같이 준비가 되고 또이 안에 우리가 기도를 쌓고 그래서 혹시 우리만큼 먼저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쌓이 기도의 터 위에서 함께이 말씀에 충만함을 누릴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가 기대하면서 함께 나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우리가 뭐 특별한 말씀을 따로 준비한 건 아니고요. 어 매일 성경 본문을 같이 또 나누려고 합니다. 아 그러나 내일 본문을 오늘 하루 앞당겨서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우리가 이사야

말씀을 보기 시작하는데 그 첫 번째 말씀을 함께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어 이사야서는 굉장히 긴 이제 여정이기 때문에 아마 매일 성경으로 여러분 한동안 계속 이사를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이사야는 솔로몬 이후에 남과북이 분열된 상황 속에서 남유다에서 이제네 명의 왕들을 거쳐가면서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말씀을 전할 때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그때 그 청중은 남유다에 있는 왕과 백성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이 말씀이 이렇게 시작을 하거든요. 한번이

2절 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여들 땅이 없기를 기우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파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저는 그 인자를 알고 나의 그 주인의 부유를 알것만에 이스라엘을 알지 못하고 나의 성은하지 못하는 하지라. 네. 어, 저는 선지자 역할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 마음을 알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하나님 마음을 이사야 나눠셨고 이사야가 그것 듣고 하나님 마음으로 또 전하고 선포하는 건데 아까 얘기했듯이 원래이 말씀의 청중은 누구여야

돼요? 남유다 백성되어야 됩니다. 근데 여기서이 예언이 하늘과 땅의 대상으로 선포된 이유는 원래이 말씀을 들어갈되 이스라엘이 선지자의 외침에 하나님의 외침에 귀를 닫고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을들을 수 있는 귀가 있으십니까? 네. 부디 아멘이기 바라고네 우리는 종종 살다 보면은 하나님이 [콧방귀] 침묵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 성경은 하나님은 부제하신 분이 아니라 어디나

계신 분이라고 항상 계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실은 듣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기 3절 보면 소도 주인은 아니고 나귀도 주인은 압니다. 근데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라고 그렇게 이사야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이 얘기를 나눴지만 여기서 나오는 앎은 단순한 정보적 앎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없겠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 모르겠어요. 하나님

알죠. 근데 이스라엘이 나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인격적인 암 소통 연결이 없다라는 지금 의미입니다. 이사야서 1장은 사실 내일 아침에 이제 묵상해 보시면 알겠지만 조금 아픈 내용이에요. 굉장히 세게 꼬집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지금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 매우 많이 슬프시고 실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어 그런데 여기 나오는 가장 좀 빼 아픈 그말은 뭐냐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뭐를 싫어하냐면 예배를 싫어해요.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하는

것을 어쩌면 좀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 이사야 백성이 예배를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안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안 하고 있다는 거 같아요. 네. 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 예배를 거부하고 계신다니까요. 네. 이들은 예배를 하고 있어요. 자기 예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예배했다는게 말씀에 나오고 있습니다. 한번이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엇이 하며 나는 신앙의 죄와 자신의

진의 길을고 나는 어린이나를 하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오니 너를 너희에게 하느냐 리라를 다시 내가 여기과 지과 내 것도 하니 성와 아 내가 지하다.네 아까 제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결이 끊어졌다라고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이들이 예배해 주지 않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들은 예배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예배의 행위를 이들은 잘했어요. 재물을 동반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것도 살찐

짐승이에요. 오늘날로 말하면 헌금도 아끼지 않았고 예배도 빠지지 않았다라고 뭐서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예배를 불편해 하십니다. 그들의 예배를 싫어하십니다. 여러분 왜 그런지 아십니까? 여러분 행위가 있고 마음이 있어요. 행위는 마음을 표현한 도구가 될 수 있어요. 그렇죠? 우리 마음이 있으면 행위를 통해서 그걸 드러내는 거잖아요. 근데 마음이 빠진 행위 자체가 그 마음을 대신할 순 없어요. 예배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예배를 향은 예배의

우리 마음이 예배의 행위를 통해서 담겨서 전달될 때는 너무 기뻐하시는 거예요. 근데 그 행위 자체 마음이 없는 행위 자체로는 그 마음을 대신할 수 없어요. 이거는 모든 것에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누군가가 좋으면 그 사람에게 저 행위로 막 뭘 할 수 있어요. 뭘 위해 해 주고 선물을 보내주고. 근데 마음이 없이 하는 어떤 행위가 마음을 대신할 순 없어요. 우리 예배가 딱 그렇습니다. 이들은 안식일을 지켰어요. 잘 지켰습니다. 주의 성소했다는 거예요. 월상

예배도 드렸어요. 우리 깊은 예배처럼 한 달에 한 번 그 예배도 잘 드렸어요. 근데 이들은 예배하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자로 살았습니다. 예배하고 헌금도 하고 다 하는데 삶에서는 하나님과 전혀 좋 어 사김이 없고 하나님을 오히려 두려워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 성애가 나오는데 우리는 이번 사경을 하지만 옛날에는 부흥성애 이렇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집회 말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집회도 합니다. 근데

집회를 해도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이것을 알기보다는 그냥 했다라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찬양을 하고 있는데도 마음을 들려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예배의 의무만 채우고 있는 거예요. 나 예배했으니까요. 나 예배하고 있다니까요. 이런 거예요. 그러니까 이들이 예배를 아무리 해도 이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답게 살아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예배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개도 안 해요. 왜냐면 자기들은 예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14절 15절도이어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시작. 마음이 너희 과한 설기를 처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워 내가 주에게 하이라 너희가 성령들께 내가을 너희에게 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우리가 믿지 아니하니이는 너희의 손에 하네 이들이 예배하고 월싹하고 절기를 지킵니다. 근데 하나님이 싫어해요. 왜냐면 아까 얘는 의무로 드려지는 예배임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의무로 드려진 예배가 하나님께 뭐가 된대요? 짐이 된대요. 여러분, 여러분이 마음을 다해서 예배하면 하나님 그

예배를 너무 기뻐하세요. 여러분이 의무로 예배하면 하나님이 그 예배가 하나님께 지이 돼서 하나님을 지치게 한 돼요. 여러분, 우리가 뭐 풍상기나 이런데 해 보면 그런 표지만 예배를 뭐라고 표현합니까?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다. 이렇게 표현한단 말이에요. 왜 특권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뭐라고? 우리가 뭐라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면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 예배 함께 하셔야 되겠어요. 근데 그럴 이유가 전 없으거든요. 근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어요. 예배하는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 두 세 사람이 예배하는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 그게 가능하니까 그게 가능한 것이 예배니까 예배가 우리의 특권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의 예배가 있어서 와봤자 예배의 의무와 형식만 있고 마음은 없으니 도리어 그 예배가 하나님께 짐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도 아시죠? 나와 뭔가 마음을 나눌 생각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억제로 지금 나하고 이렇게 1대 붙어서 막 교재하고 있으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시간대역이잖아요. 의무적의

시간대역이 얼마나 소모적입니까? 서로 하나님이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를 보면서 그런 마음으로 계신다는 거예요. 기도하여도 하나님이 일도 듣지 않겠다고 말아요. 왜냐면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다.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것은 죄를 지었다 정도가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외면하며 어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거예요. 그런 삶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냥 와서 기도의 행위를 하는 그 기도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정말 많은 걸 고발하세요. 근데이 1장에 오늘 본문의이 마지막 분이 어떻게 끝나냐면 주님이 마지막 하시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라고 말하면서이 내용이 반전되고 있어요.이 얘기 뭐냐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이얘기 꺼내는 것은 너희 이제 끝이야가 아니라 다시 잘하자.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이 얘기예요. 이스라엘이 지금이라도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회개하고 나아오면 너희의 죄가 주 같을지라도 희계하겠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지금 하나님께서 하나님 입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너무 원하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듣는 귀가 있으십니까? 네. 듣는 길. 여러분의 예배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습니까? 네. 여러분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까? 적어도 오늘 말씀은이 세 가지 지문 앞에 우리가 답해야 되는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나에게 잘 듣는 기가 있나? 나는 마음 다해서 예배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가? 주님이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 만나게 주시는 것은 우리를 혼내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까이 때로는 우리가 잘못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함께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사경에 임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그냥 너무 수동적으로 아 그냥 강사님 통해서

좋은 말씀 듣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아니라 저는 하나님 혹시 강사님이 뭐 내가 원하는 원하지 않는 말씀 혹 내가 기준에 미치든 미치지 않는 말씀인다 하든간에 주님 저에게 그 안에서 듣는 마음십시오. 나 그냥 가면은 감동받게 해주십시오. 이게 아니라 하나님 내가 하나님 주신 말씀에 순종하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이런 마음으로 바뀌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스라엘 여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이 사회를 사용하셔서 말씀하여 주고 계십니다.

이번 사경회를 통해서도 저는 하나님께서 어 송태근 목사님을 통해서 또이 예배이 공동체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각 사람에게 말씀하여 줄 것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오느냐 또 어떤 예배가 있냐보다는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사경회가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서 어 제가 오늘도 누군가 이런 표현을 썼었는데 아 이번 사경회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 있는 이번 사경회가 아 날 위해 준비되었구나 내가 고백할 수 있는 그런

귀한 시간을 하나님께 맛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입니다.